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nonymoushilarious Jul 13. 2020

생의 한가운데

구병모 장편소설 '파과'를 읽고 쓰는 주절주절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나의 할머니.

나의 친할머니는 내가 태어나기 전후에 지역 사회에서 운영하던 개인 사업이 크게 성공하고, 사업의 성공으로 몇 군데 투기한 땅들이 값이 오르기도 하면서 내가 태어났을 때에는 본인 인생에서 가장 빛나던 50대를 살아가고 계셨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아빠와 결혼했을 당시에 할머니의 인생의 주가는 최고 정점이었다고 전해들었다. 하지만 사업이 성공하기까지 한 가정의 가장 노릇을 했어야 했던 지난 28년에 대한 억울함은 한 켠에 남아 인생에 한이 되어 남았던 것 같다. 우리 엄마가 결혼한 이후, 엄마는 꾸준히 할머니의 심부름을 도맡아서 하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나를 낳고, 동생을 낳은 해까지 약 6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할머니 집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밥 해놓고 하는 일을 전담했다고 한다. 그 때에는 기껏해야 내가 3살 정도였기 때문에 잘 기억나는 일은 없다. 하지만  내가 확실하게 기억나는 몇 가지 파편은 할머니 생신 때만 되면 지금보다 반절 평수였던 예전 나의 집에서 할머니와 할아버지께서 아침 8시 전에 아침을 드시러 오고, 아침 식사가 끝나면 그 다음 라운드로 할머니의 직장 동료, 할아버지의 직장 동료, 할머니의 친구 분들 그리고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를 지인 분들까지 오후 타임 식사들을 하고 가시고, 저녁에는 할머니의 자녀들의 가족들이 모여서 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하는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렇게 우리 엄마는 할머니의 생신 날만 되면 대인원을 충족시킬 아침, 점심, 저녁의 식사를 차려야 했기 때문에 내 유년 시절의 기억 속에서 나는 할머니의 다리에 끼어앉아 할머니가 친구분들과 고스톱을 치시는 구경을 하다가 엄마가 할머니 생신 날만 되면 쓰던 김밥 집에서나 쓸 법한 대용량 밥솥이 밥 다 되었다는 소리를 내자마자 밥을 휘젓고 있던 기억이 아직도 꽤나 선명하다. 그 기억이 선명할 수 밖에 없는 건 그 할머니 생신날의 관습은 갈수록 약소화되어 가긴 했지만 내가 15살인지 16살이 되던 해까지 반복되어 왔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기억 속에서 살아온 나는 할머니가 뭐가 그렇게 삶이 억울할까 싶었다. 본인이 하고 싶은 말도 필터링없이 내뱉는 편이신 것 같고,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하면 자녀들이 의기투합하여 4남매의 가족들 모두가 총출동하여 제주도도 가고, 홍천도 가고, 흑산도도 가고 다 했는데, 평소에도 그렇긴 하지만 왜 특히 술만 드시면 할머니는 항상 자식들이 본인에게 효도를 안한다고 화를 내고, 남의 집 자식은 돈을 500은 준다는데, 왜 내 자식은 100밖에 안주는 것이냐 등등의 하소연을 그렇게 울면서 하시는 것일까 진짜 궁금했다. 그리고 할머니는 나에게 꽤나 자주 엄마가 좋냐, 할머니가 좋냐, 엄마가 하는 음식이 맛있냐 할머니가 해주는 음식이 맛있냐(할머니가 해주신 음식은 한 번 먹어봤다) 등의 질문을 하시곤 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여우였다고 하기에 할머니가 좋다고 했겠지만 머리가 크고 나서부터는 그냥 솔직하게 엄마, 엄마가 해준 음식이 낫다고 해버리고, 할머니 편을 안 들어드리니 나는 어느 순간부터 할머니 눈 밖에 났다. 어느 순간부터는 나도 할머니 눈 밖에 나는 것이 너무 편했다. 틈만나면

'지 엄마만 챙기는 나쁜 년'

이라는 소리나 듣는데, 내가 좋았을리가 있나.


그런데 이 소설을 읽고나니 나름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 할머니는 돈이 주는 자신감으로 빛나는 순간을 50대에 누리고, 조각은 남이 부탁한 살인을 돈 받고 하며 살아가던 구질구질한 자신의 인생을 청산한 60대에 자신을 위한 투자를 비로소 하기 시작하며 빛나는 순간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아, 인생에서 이렇게 가진 게 많았던 할머니 같은 사람이나 인생에서 가진 것이라고 살인 기술밖에 없었던 조각이나 누구나 각기 빛나는 순간을 가지는 것은 같구나. 자신의 빛나는 순간은 죽기 직전까지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이구나. 그러니 과정이 거지같더라도 끝까지 살아내야만 하는 게 인생이구나.


처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정도 주고받지 않고, 인생에서 책임질 대상도 만들지 않으면서 외로이 살아가던 사람이었던 조각이 왜 갑자기 한 의사를 만나고 나서부터 대가없는 정을 주기 시작했을까. 조각은 인생을 사람을 어떻게 깔끔하게 죽일까 고민만 하던 사람인데, 그 능력이 사회적으로 의심받자, 비로소 남을 위한 피를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키고 싶은 것을 구하기 위해서 주체적인 희생을 시작한다. 사실 조각도  다 늙고 자신의 '방역' 커리어에서 내려올 때쯤에서야  본인 받지 못한 사랑, 본인도 남들에게 주고 싶었던 사랑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 번만이라도 사람답게 살아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렇게 한번쯤을 살아보고, 본인의 빛나는 순간을 그렇게라도 만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까지 하다보니 우리 할머니는 사실 본인의 빛나는 순간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까지 미치게 되었다. 자식들은 40대 중후반부터 50대까지 할머니의 전성기였다고 생각하지만 할머니 입장에서는 50대에 돈 좀 벌었던 것을 상당부분 자식들에게 바치셨기 때문에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당신의 욕심은 다 못 채우셨다고 생각하시는지도 모른다. 인생에서 점점 잃어가는 것이 많은 나이가 주는 우울함을 견뎌내야 하기에 조각이나 우리 할머니나 살면서 채우지 못한 것들, 받지 못한 사랑들을 더 보충하려는 욕구가 강해지는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주어진 모든 상실을 살아야 할 때.

살아있는 모든 것이 농익은 과일이나 밤하늘에 쏘아올린 불꽃처럼 부서져 사라지기 때문에 유달리 빛나는 순간을 한 번쯤은 갖게 되는지도 모른다.


난 만 23세인데, 내 인생에서 빛나는 순간을 굳이 찾으라면, 14세에서 16세까지였던 것 같은데, 그 때로 내 인생의 빛나는 순간이 끝난 것이었다면 난 더 이상 인생에서 더 기대할 것도 없지 않을까 싶은 순간들이 근래 좀 많았다. 이 소설을 읽고 조각의 인생을 보면서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아직 내 인생에도 빛나는 순간이 있을 거라는 걸. 내가 미워하던 사람도 조금은 이해가 되면서 아직 나는 좋은 순간을 맞이할 순간이 30대가 되기 전에 한 번은 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아니, 10년 주기로 한 번 정도는 좀 행복하겠지 기대를 걸어보게 되었다. 그러려면 10대에 온 행운들은 단지 운이었다고 치고, 나는 행복해지려면 조금 농익어야 할 필요가 있다. 농익어야 부서져 사라질 기회가 생길 것이니까. 그러니 지금 이 시기만 견뎌내면 뭐, 또다른 길이 보이겠지 마음도 생긴다. 결코 박수 쳐줄수만은 없는 한 여자의 일생이 나를 이렇게 일으켜 세울 줄 누가 알았으랴.

매거진의 이전글 사랑하지 않음으로 사랑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