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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Aug 10. 2021

지옥문이 열리다

홍콩, 우란절 이야기

우리 동네에는 관우를 모시는 사원이 있다. 여름철이 되면 특별한 행사를 하는지 여러 깃발이 꽂히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거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몇 년째 도교 사원이 분주해질 때면 태풍이 들이닥쳐서 깃발이 뽑히거나 테이블이 날아가는 모습들을 봐 왔다. 거친 바람과 함께 자취를 감추는 때가 많아서 날씨 때문에 지내는 제사라고 생각했다.


길 건너 도교 사원

  

   올여름은 별 다른 태풍이 없어서인지 어떤 연유로 제사를 지내는지 궁금해졌다. 찾아보니 ‘우란절’이라고 한다. 음력 7월 1일 ‘지옥문이 열리는 날’이라고 하여 이때부터 귀신들은 인간 세계에 와서 마음대로 다닐 수 있다고 한다. 저승의 문이 열려서 귀신들이 세상을 헤매고 다니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음력 7월 1일부터 보름 정도 종이돈과 종이로 만든 생필품들을 태워 방황하는 망령들에게 보낸다고 한다. 종이로 태워 보내는 생필품에는 가전제품, 핸드폰, 아이패드, 고급 외제차, 명품백, 하인 등 다양하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이로 만든 물건들을 파는 가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종이로 만든 자동차

  

   많은 사람들이 사원을 지나가며 공양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은 물론 저승에서 고통을 받는 존재들을 위해 기도를 하는 것이다. 인간은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함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낀다. 인간의 열심으로 죽은 사람의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정성을 다한다.



   지옥문이 열리는 기간이 어디 이때뿐이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막연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함이 찾아올 때, 누군가가 지나치게 미워질 때, 답 없는 생각들이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내가 한 실수가 하루 종일 마음에 걸릴 때 등 마음의 문을 잘 지키지 못하면 내 마음이 지옥 같아지는 건 순식간이다. 사람들은 귀신을 달랜다고 하지만 사실은 시끄러운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우란절’을 지내는 홍콩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내게 주어진 오늘의 삶의 자리가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내가 다독이고 싶은 것은 저승에서 온 귀신들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부정적인 감정들이다. 내가 정성을 쏟고 싶은 대상은 종이돈으로 달래야 하는 망령들이 아닌 오늘도 당연한 것처럼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다. 후회와 두려움으로 점철된 삶이 아닌 사랑과 기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삶에 지옥문이 열릴지 천국 문이 열릴지는 내 마음의 문에 달린 것은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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