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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란초 Oct 15. 2021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는 내가 외국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친해지고 싶을 때마다 꺼내 쓰던 비장의 카드였다. 국가를 불문하고 아이들의 관심과 마음을 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움직이면 안 되는 순간의 적막감과 긴장감은 고도의 집중력을 불러일으킨다. 움직임이 감지되어 술래에게 걸리면, 걸린 사람은 술래의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걸어야 한다. 이 위기의 순간이야말로 연대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시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잡힌 손을 끊으러 한 발자국씩 다가오는 친구들의 모습은 위기에 빠진 나를 구해줄 영웅으로 보인다.


   가장 용감한 친구가 술래에게 잡힌 손을 끊어주는 순간, 민첩함과 순발력이 발휘된다. 죽었던 생명은 목숨을 되찾을 기회를 다시 한번 얻게 된다. 뒤를 돌아봐서는 안된다. 끝까지 달려야 한다. 내 등짝을 호시탐탐 노리는 술래로부터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 한다.


   한창 인기 있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 덕분에 이 게임도 전 세계로 퍼진 듯하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규칙이 조금 다르다. 움직임이 감지되는 사람은 술래가 바로 총으로 쏴 죽인다. 벨기에의 한 학교에서 이 게임을 문제시했다는 기사를 보게 됐다. 드라마에 나온 규칙을 모방해 학생들이 게임에서 진 친구를 구타했다는 것이다. 학교의 한 관계자는 유해하고 위험한 게임이 중단될 수 있도록 경계해야 한다는 글을 페이스북에 게시했다.

  

    술래에게 줄줄이 잡혀있는 친구들의 손을 끊어주며 우정이 싹트는 게임인데, 움직임이 감지되면 구타하는 게임으로 전락했다는 것이 씁쓸했다. 아슬아슬하게 몸의 균형을 잃고 넘어져도 당당히 술래에게 손가락을 걸 수 있던 배짱은 친구들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 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가능했던 것인데 말이다.


   우리네 실상이 그런가 보다. 단 한번의 실수도 용납해주지 않는 게 현실이라고, 다시 한 번 기회가 주어지길 바란다면 오산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내 몸뚱이 하나 건사하기 위한 방법은 남 뒤에 몸을 숨겨 술래의 눈을 피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내가 두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현장은 어떤가 싶다. 타인의 시선에 잔뜩 긴장해 얼어붙어 있진 않은지, 남이야 어떻든 내가 살기 위해 흠 잡힐 일 만들지 않으려 숨어 있진 않은지, 세상이 정해 놓은 시간표에 조급해하며 나를 다그치고 있진 않은지 돌아보게 된다.


   살아가다 보면, 나의 작은 행동조차 자신이 없어 위축될 때가 있다. 술래 인형의 눈이 돌아가는 것 같아 경직될 때가 있다. 그러나, 내가 믿는 하나님은 이런 무자비한 규칙을 들이밀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기억할 때 당당해진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것 같아 아무런 기대가 없을 때도, 흔들리고 넘어질 때도 그분 안에 있으면 괜찮아진다. 술래에게 잡혀 손가락 걸고 있어도 언제든 나를 찾아와 잡힌 손을 끊어주실 것을 믿기에, 끝이 끝이 아닌 것을 알기에 오늘도 용기내어 당당히 한 걸음을 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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