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레인 카스켓의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 를 읽고
죽음이라는 단어는 묵직하다. 무거워서 잘 돌아보고 싶어지지 않는다.
나는 과거 어느날 밤에 갑자기 두려움이
마음에 밀려왔었던 때가 있었다.
갑자기 '나도 언젠가 죽는다' 라는 문장이
마음속에 들어왔었기 때문인데,
이는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없어진다.' 라는
의미로 마음에 다가왔었다.
그런 극심한 두려움은 처음이었고,
두려움이 내가 만들어 낸 상상, 감정임에도
마음에 그렇게 세게 닿았던게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그때 당시 죽는다 라는 의미가
세상에 내가 없어진다는 의미와
같은 뜻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에서는 앞으로 우리가 죽는다고해서
세상에서도 완전히 없어지기
힘들꺼라는 것을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가 자의든 타의든 평생 사회생활을 하면서 남기는
엄청나게 많은 디지털 족적들, 데이터, 사진들이
우리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남아서 인터넷이라는
무한한 공간을 떠다닐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위안일까,
불편함일까를
알아보는 이 책은 충분히 내용이 흥미로웠다.
'죽음'이라는 의미가 '사라짐'이라는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이라면
이제 지금 시대를 사는 사람들,
특히 밀레니얼 세대들
이후의 사람들이 가지는
죽음의 의미는 조금 달라지는 것 같다.
육체적으로 죽었지만 디지털로 살아있는
상태에서 연대감이 끊기지 않고
끊임없이 상대를 추모할수 있는 상태가
새로운 죽음의 상태로 정의 될수 있지 않을까.
어린 나이에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故 설리 의 인스타 계정에도
전세계 사람들이 여전히 찾아온다.
마지막 게시글의 댓글에는 보고싶어요,
그립다 라는 말들이
팬들로 부터 끊임없이 올라온다.
그녀를 팔로잉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계정에 여전히 그대로 있다.
어쩌면 그녀의 슬픈 죽음 이후 아이러니 하게도
더 늘었을지도 모르겠다.
영혼과 연대되어 있는 상태 그대로,
디지털 시대의 사후세계는 계속 네트워크가
이어진다.
우리의 삶을 너머서 말이다.
나는 예전에 나의 아이가 내가 젊었을 때
어떻게 생각해서 어떻게 살려고 노력했고,
어떻게 지냈는지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다.
그것은 나는 내가 어릴때 엄마의 모습을
아주 단편적으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젊었을때 엄마가 어떻게 생각하면서
나를 길렀는지, 어떻게 삶을 이겨냈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막연하게 지금 나이 들어버린
엄마를 보면서 추측할 뿐이다.
젊은 시절 엄마는 어떤 꿈을 꾸고 나를 길러냈는지,
뭐가 힘들었을지 궁금했지만 알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스타를 한다.
매일 조금씩 일상을 기록하고 있는 SNS가 아이에게
내가 어떤 사람인지 좀더 명확하게
알려줄수 있을 거라는 것이 좋았다.
내가 늙고 죽은 이후에도 나의 아이가
내가 젊었을 때 어떤 취향과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 알려줄수 있는 기록이 있다는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나의 Legacy, 정신적 유산이 될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물론 이 책에서 처럼 사후 계정 관리에 있어
프라이버시 문제, 해킹 이슈 등이 얽혀있긴 하지만
가족과 주변사람들이 나를 어떤 사람인지
기억해주는 매체로 활용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계정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사이트는 탈퇴하고,
중요한 사이트만 남기며,
비밀번호도 어딘가 문서화 해서
저장해놔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떠난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울려면
이제는 디지털 세계에서도 정리가 필요하다는
새로운 죽음이 존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PS. 참 아래 행안부에서 운영하는
e프라이버시 클린서비스 사이트에서
내가 가입한 사이트를 찾아서
탈퇴를 요청 할수 있었다.
모든 사이트가 다 찾아지는것 같진 않지만
일단 몇개 탈퇴 신청을 해놨다.
https://www.eprivacy.go.kr/mainList.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