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유러피언>, 올랜도 파이시스 저 '를 읽고
<더 유러피언>이라는 911 페이지 (각주포함해서) 의 두꺼운 책을 일주일 동안 읽었다.
표지 색깔도 붉어서 참으로 '벽돌책' 같다는 느낌이 드니, 사실 읽기 시작할때는 약간 부담스럽기도 했다.
평소에 나의 독서 취향이 자기계발, 동기부여, 영성, 에세이, 경영서 등으로 치우쳐 있어,
<역사> 는 별로 매력적인 컨텐츠가 아니다 라는 생각에, 큰 기대를 가지지 않고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이 역사서는 매력적이지 않다는 생각이 바뀌었다. 양서는 역시 장르에 상관없이 매력적이다. 장르를 구분해서 책을 고르는 습관을 고쳐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여러 흐름들을 함께 종합적으로 유럽 대륙의 시각에서 볼수 있기 때문에, 전혀 다른 시대, 문화를 가진 한국인의 시점에서 흥미로웠다.
토종 한국인인 나는 유럽에 살아보지도(잠깐의 여행빼고), 유럽 사람과 친분/교류가 있는 사람도 아니기에 그들의 19세기가 어땠을지 상상하기 어려운 지정학적, 역사적, 문화적, 사회적 위치에서 살아왔으니 그들에 대한 이해도가 아주 낮은 상황이다.
보통 우리들은 현지 여행을 통해서 어렴풋 그들의 생활을 들여다볼수 있긴 하지만 더 깊은 견지에서 유럽인들의 평소 사상이나, 문화적인 생활 면을 모두 이해하기는 어렵다. 잠시 외부에 드러난 것들만 관찰하고 올 뿐이다. (그나마 여행의 이런 순기능도 코로나 덕분에 아예 막혀버렸다니 잠시 또 슬픔이 밀려온다. )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풍부한 유럽인의 삶의 경험을 제공한다.
"과거 유럽사람들도 이렇게 사회변화 속에서 애쓰며 적응하려 살아갔고,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고, 그들의 아름다운 문화를 지키려 노력하고, 자신이 살던 나라와 사회에 공헌하며 삶을 영위했구나."
= 크게 현재의 우리네 삶과 다를지 않다는 점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시각적으로 <미드나잇 인 파리> 영화의 낭만적인 장면을 떠올렸는데, 찾아보니 시대적으로는 시간적 차이가 있었다. <더 유러피언>의 세인물의 이야기는 한,두 세대 앞선 1840년대에서 부터 시작하는 반면에, <미드나잇 인 파리>는 1920년대의 사람들 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마 복식도, 거리의 풍경도 큰 차이가 있겠지만, 나는 당대 예술가의 삶을 비춰주는 소재라는 점에서 두 컨텐츠가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일종의 현대인이 과거를 낭만적으로 살펴 볼 수 있는 점에서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다시 <미드나잇 인 파리>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크게 1. 산업혁명 이후 철도발달에 따른 유럽대륙이 물리적으로 유럽화 되가는 과정 2. 예술산업이 유럽화에 맞추어 국제적으로 발전해 나가는지에 대한 양상과 그로 인한 문화적 연대감이 쌓이는가에 대한 과정 3. 예술 산업에 몸담았던 세명의 매력적인 사람들을 통해 국제화의 변화에 어떻게 적응해가는지 개인차원에서 들여다볼수 있게 구성 되어있다.
나는 3번째 개인적 차원에서 어떻게 이런 급진적인 사회변화에 사람들이 적응하며 자신의 무대를 넓히고, 가치를 일으키며, 개인의 자아실현(?)을 성취하는지 들여다보는 것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읽었다.
첫번째 주인공은 당대 유명한 오페라 가수이자 작곡가였던 폴린 비아드로 이다.
구글링 해서 가져온 <폴린의 초상화> , 컬러풀한 색감이 그녀의 매력이 폴폴~ 느껴진다할까 ?
출처: https://forum.artinvestment.ru/blog.php?b=347463&langid=5
그녀는 매력적인 인물이다. 19세기 시대 여성으로서 굉장히 성별의 한계에 벗어나 노력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직업인으로서 가수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 고군분투 했고, 국내 무대에서 크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포기 하지 않고 다른 나라로 가서 노래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러시아,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대륙에 놓인 새 철도를 타고, 일부는 마차를 갈아 타며 무대에 섰다. 그리고 몇년간의 노력으로 다시 파리의 무대에 재기에 성공하여 오페라 가수로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누린 인물이다.
우리나라 상황으로 치면 연예인이 글로벌 투어를 하면서 팬덤을 해외에서 먼저 만들고, 노련한 무대 경험치를 쌓고 국내 컴백을 한것과 같달까 ? (갑자기 BTS가 생각이 난다. BTS도 해외에서 유튜브라는 새로운 기회의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서, 글로벌 '아미' 팬덤을 만들고, 국내 SM, JYP, YG의 장악한 국내 연예계를 다시 재편하는 힘을 해외에서 부터 불러온 것 처럼 말이다.)
그녀는 본인의 Value를 높이기 위해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도 뛰어났다. 오페라 극장과 계약시에 본인의 몸값을 더 높일 수 있는 협상가였고, 쇼팽의 장례식에도 장례식 추모 공연 비용을 받을 정도로 본인의 퍼포먼스에 대한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람이었다. 어찌보면 정이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본인이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략적으로 뛰어난 사람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실력이 워낙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래 이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다른 나라의 무대에 가서 그 국가의 언어로도 멋지게 오페라 노래를 불러주는 멋있는 쇼맨십을 가진 가수였다. 뛰어난 노래실력과 이런 무대 태도를 가진 그녀였기에 당대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프로이센 프랑스 전쟁이 났을때 잠시 영국에 피신하여 있었을 때가 그녀 인생의 가장 우울한 시기였다. 그 때 마저도 그녀는 주위 예술가와 교류 하며 예술가들이 모이는 살롱의 주인으로서 책무를 다한다. 런던의 물가가 비쌌고, 형편이 곤궁했지만 그녀는 이미 집안의 전통이 된 비아드로 음악 야회를 계속 진행했다. 실내악 리사이틀, 스페인 노래의 밤, 폴린이 출연한 오페라의 장면들이 음악 야회에 계속 흘러 나왔다. 야회는 런던 사교계의 핵심인물이었던 사람들과 영국 총리까지 방문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었다.
그녀는 이러한 모임을 통해 새로운 예술가를 예술산업에 종사하는 비즈니스맨들에게 소개를 해줄수 있었던 역량이 있었다. 이를 통해 새로운 음악인들이 계속 발굴 될수 있었다.
유럽화에 맞추어 그녀는 다양한 외국어-러시아어, 이탈리아어, 영어-를 말할 수 있을정도로 국제적인 시대에 맞는 능력이 있었고, 유럽 각지의 많은 공연과 수많은 예술인과의 교류를 통해 유럽의 종합적인 정서를 가지고 있어서 유럽 음악을 할수 있는 인재로 거듭났으며 실제로, 그러한 음악을 보급하며 일생을 유럽인의 예술문화의 향상에 기여한 인물이다.
두번째 인물, 폴린을 짝사랑한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 이다. 그는 어린시절 화목한 가정에서 크지 못했다. 어머니는 학대를 했고, 무능한 사고치는(?) 젊은 남편을 미워하는 가정이었다. 어머니의 사랑의 부재에서 큰 그는 평생 여성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던것 같다. 투르게네프는 평생 폴린을 사랑하면서, 그녀를 (정확히 말하면 그녀의 가족) 주위에서 맴돌며 자신은 방랑자같은 삶이라고 되뇌이며 살았다.
젊은 시절 폴린의 오페라 공연을 보고 반한 투르게네프는 얼마 없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용돈을 탕진해가면서, 그녀의 월드투어 공연을 쫓아다니는 팬이었다. 그러다가 결국 그녀의 사생팬이 되었다. 젊은 시절을 막연하게 폴린을 쫓아다니며 사랑의 열병을 앓면서 청년기를 보냈다.
그런 약간 철없는 투르게네프도 작가로서 작은 성공을 하면서 점차 문학적으로 성장하는 예술인으로 거듭나게 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한량이었는데, 그런 그가 성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약간은 감격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그녀의 삶에 기생하듯이 겉으로만 사치하는 그였던 반면, 작가로서 조금씩 성장하여 자신의 밥벌이도 하고, 자신이 낳은 사생아 딸의 삶도 책임지려는 어엿한 모습(?)과 폴린의 딸들을 대신 챙기는 모습을 보며 흥미롭게 보았다.
그의 작품이 또한 러시아 농노를 해방시키는 단초의 역할을 했는데, 그 또한 그의 러시아 농가에서 자라며 큰 여리고 순수한 심성과 유럽을 누비는 국제적인 감각이 반영되어 그런 나비 효과를 가져올수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유럽의 다른국가의 예술을 향유할 줄 알고, 예술가들과의 교류를 통해서 국제적인 흐름을 잘 알았기 때문에 시대에 맞는 문학작품을 쓸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러시아 문학을 유럽에 소개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이후 러시아 작가들이 유럽 대륙에 진출하는데 전초적인 역할을 하였다. 폴린과 마찬가지로 유럽대륙이 국제화되어 유러피언의 문화를 이루는데 그도 일생을 바친것이다. 그의 장례식에 농노에서 해방된 사람들이 감사 인사를 하는 모습이 묘사되는데 숙연함 마저 느껴졌다.
세번째 인물, 폴린의 남편, 루이 비아르도 이다. 그의 일생도 나에게는 인상적이었는데 평생 폴린의 공연에 매니저처럼 함께 철도를 달리며 자신의 인생을 바친 사람이다. 그는 21살이나 그녀보다 많았는데 그런 점에서 단순한 남편이라는 관계보다는 그녀에게 매니저, 보호자, 친구, 정신적 동반자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아내를 숭배하는 여럿 남자들 사이에서 항상 평정심을 가지고 그녀를 지켜주는 성숙한 사람이었다. 그랬기에 그는 폴린과 투르게네프, 본인과의 삼각 관계를 끝까지 원만하게 유지하였다. 그도 국제주의자적인 관점에서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성향이었기에 가능했을것이라고 역자는 이야기하고 있다.
노년에는 거의 투르게네프와 함께 셋이서 한집에서 살기도 했는데, 그럴 때에도 로이와 투르게네프는 사이가 좋았다.인생의 동반자적인 관계로 함께 오랜시간 살아와서 일까.
루이는 폴린과 함께 여행하면서 공공아트 컬렉션에 대한 지식을 축적하게 되었고, 관련한 글을 신문사에 써냈으며, 나라별 아트컬렉션 안내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체계적이고 학문적인 루이의 책은 유럽의 주요 아트컬렉션을 재조직하는데 큰영향을 미쳤다. 루이의 책 덕분에 큐레이터 원칙이 확립되었다. 스페인 예술을 재발견하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하고, 루브르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스페인 갤러리를 설치하여 1838년 일반에 공개하기도 하였으며 1840~50년도에는 프라도 박물관에 조언하여 그곳 왕실 컬랙션을 재조직하도록 유도하기도 했다.
이 세 명의 실제 인생 이야기를 바탕으로 유럽 전체의 예술, 산업, 문화의 변화가 입체적으로 펼쳐지는 <더 유러피안>. 유럽이 눈에 잡히듯 입체적으로 그려져서 영화보듯 책을 읽어나갈수 있었다.
덕분에 독서를 하면서 쇼팽의 음악을 찾아 즐겁게 듣기도 했다. 쇼팽의 성격이 어떤지 전혀 몰랐는데, 이 책을 통해 쇼팽이 얼마나 소심했는지, 큰 무대 공연에 긴장하여 떨곤 했었는지 알수 있었다. 쇼팽정도 되면 무대에서 안 떨줄 알았는데, 사람 다운 이야기에 웃음이 나오고 그의 장례식에 돈이없어 겨우 치뤘다는 인생무상 초라함에 슬픈 안타까움도 생겨나기도 했다. <더 유러피언>에 나오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독서를 하면서 찾아보고 경험하면 더욱 입체적으로 유럽 이야기와 인물들이 다가옴을 느낄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오늘날의 나에게 있어 포스트 코로나의 혼돈의 시대 - 에 개인은 어떻게 살것인가? 라는 화두를 던져주는 책인 것 같다. 위의 세 인물 처럼 변화에 함께 적극적으로 맞닿뜨리며 적극적인 변화에 적응하는 삶을 살것인가, 아니면 시대 변화에 두려움에 아무것도 시작 못하고 지내다 어느덧 경계로 밀려나는 삶이 될것인가. 어떻게 하면 나를 변화의 파도에 있게끔 할수 있을까 라는 물음이었다.
이 책에 나온 인물의 비유로 이야기하면, 철도를 두려워하여 타지 못하는 '로시니' 처럼 살것인가, 아니면 철도에서 작곡하는 '마이어베어'처럼 살것인가. 에 대한 나에 대한 물음이 책을 읽고나서 묵직하게 남았다.
" 낭만주의는 이 지상에서 끝났고, 철도의 시대가 밝아오고 있다."
테오도르 폰타네, 1843년
나의 서평을 한문장으로!
'철도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태도로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본인에게 할 수 있는 책
<더 유러피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