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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Feb 10. 2024

홍콩, 향항의 차향

홍콩에서 차를 즐기는 N가지 방법

 22° 23' 47.1372'' N114° 6' 34.1892'' E.


왜 홍콩이었는지는 모르겠다. 혼자서 처음 간 외국은 홍콩이었는데, 당시 대학을 졸업한 나는 기묘한 충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바쁘게 일하기 전에 혼자 놀러 가기도 하여 생존력 같은 무언가를 더 기르고 싶었던 이유도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취업하고 일하다 가는 것이 더 즐거운 법이니 아무것도 몰랐던 순진한 생각이기도 하였고, 막상 일을 시작한 후 여행보다 출장을 더 많이 가게 될 줄은 더더욱 모르는 일이었다. 이것이 사람이 제 앞날은 모른다는 증명이기도 하다. 그래서 왜 홍콩이었나... 따지면 그전에 가족이나 친구와 갔던 곳이 아닌 낯설고 모호한 나라를 고려했나 싶다. 당시 여행비용이 적당한 나라라는 점도 한몫하였다.

홍콩의 흔한 야경

어릴 때의 낯선 여행은 거리와 공기에서 느껴지던 온도와 냄새로 남는다. 밀도 높은 향신료와 육포의 냄새, 그리고 붉은 조명과 웃통을 벗고 걷던 남자들의 모습들. 처음에는 지금까지도 매번 느끼지만 지상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그곳에서 신혼을 차린 지인 부부와 식사를 하고 홍콩섬에서 구룡을 바라보는 방향에서 바다를 보았다. 칠색 조명이 파도에 으스러져 유화 물감처럼 개개의 색을 유지한 채 뒤섞였다. 번화하지만 정돈되지 않은 도시는 홍콩 영화를 보던 사람들에게 친숙한 그대로였다. 그런 밤들이 홍콩에서 내가 기억하는 가장 강한 장면이다. 하지만 낮의 홍콩은 또 다른 풍경이었다. 섬 가장자리로 가면 절벽 위에 부유한 사람들의 저택이 자리한 해변 등이 있는데, 해운대와 닮았으면서도 유럽 해변을 불어넣은 듯한 고층 빌딩과 고운 모래가 특징이다. 돌아오는 길에 해변과 사찰을 거쳐 웬 찻집과 차 박물관에 들렀다. 당시엔 그곳의 주소를 모르고 발견한 곳이지만, 열대성 식물이 가득한 홍콩 공원 안에 자리한 곳이다. 어둡고 노란 티셔츠를 입은 주인 여사님과 서툰 북경어로 차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나누었는데, 그녀는 내 말을 한 단어씩 광둥어로 바꿔서 가르쳐주었다. 가장 먼저 알려준 말은 '아름답다'였는데, 이름 모를 자사호 전시 앞에서였다.

아주 대충 먹는 찻상, 대강 이런 느낌

스무 살 적 대학교 앞에 있던 중국식 찻집 사장님으로부터 다도를 곁눈질로 익힌 후, 취미로 다도구를 사용하는지라 차에 대한 설명은 익숙하였으나 광둥어는 북경어하고는 어감이나 사용하는 단어 등이 아주 다른 언어였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적당한 녹차 등을 구해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량차(일종의 한방약 같은 전통차)를 구해오고 싶었으나 찾지 못하고 돌아온 기억이다.


홍콩에 다시 가게 된 건 공교롭게도 출장 때문이었다. 단순히 업무를 보고 돌아오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기억과 그대로인 홍콩에 정감을 느꼈다. 여행하기 무척 재미있는 도시인데, 한 번쯤 가 보는 걸 추천한다. 간 김에 더운 나라들에 가면 꼭 마시는 밀크티를 먹어보려 했더니 팀원이 어딘가 찾아서 따라갔다. 

장미 밀크티... 같은 무언가

중국어를 읽을 수 있어도 헷갈릴 정도로 주문법이 복잡한 가게였는데, 대표 메뉴라고 쓰여 있는 것 중 신기하게 생긴 것을 택하였더니 장미 꽃잎이 얹어진 밀크티가 나왔다. 헝거게임 신작 영화의 여주인공인 루시 그레이가 장미 꽃잎을 입에 물고 '잠자리에 드는 맛'이라고 표현하였는데, 감수성이 부족한지 버들잎 띄운 물을 마시는 선비의 기분이었다. 꽃은 볼 때만 고운 법이었다.


업무를 마치고 업체와의 저녁 자리가 있었는데, 차와 함께 술을 마시는 나이답게 차 마시는 취미를 악용하여 보석 같은 바 하나를 찾아내었다. 차를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파는 곳이었는데, 아래 사진 근처에 조용히 자리한 바이다. 밋밋한 우롱하이를 좋아하지만 당시 부상을 입어 술을 못 마시던 나는 홍차를 베이스로 한 목테일을 주문하여 아쉬웠다. 일행 중 하나는 정산소종을 베이스로 한 칵테일을 고민하였는데, 정산소종이 들어가는 이상 스모키한 맛이 예상되어 미리 리스크를 고지해 주었다. 그러나 그 메뉴에 한 명이 도전하였고, 그는 결국 그 음료를 남긴 채 오렌지색이 도는 다른 메뉴를 시켰는데 다들 즐거워했다.

홍콩 골목 풍경. 이 근처에 차로 만든 칵테일 바가 있다.

홍콩은 나에게는 그 지역의 한자(향항)가 어울릴 정도로 차향이 깊은 도시이다. 차 취미를 깊게 만든 것도, 흥미로운 차를 만난 것도 홍콩이었다. 차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우유나 술과 함께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데, 다른 나라에도 비슷한 음료가 있지만 유난히 이 도시의 분위기가 '어떻게 즐겨도 괜찮다'는 말을 하는 듯하다. 경사진 길과 복잡한 골목,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조명이 칠해진 이 나라는 한잔만으로도 이야기를 나누기 완벽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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