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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Feb 03. 2024

평생 살아온 도시를 남의 눈으로

서울에서의 낮과 밤

37° 33' 59.5296'' N126° 58' 40.6776'' E.


이번 주는 내내 일이 많고 막내 고양이를 돌보는 중이라 짧게 끊어 본다. 고양이 상태도 보고, 다음 주 출근해서 해야 할 일과 따로 공부 중인 것들, 해야 할 청소 등을 생각하다가도 원래 삶은 고단하니 이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하며 또 날이 저문다. 이런 나날을 서울에서 몇천 일, 몇만 일 지내왔다.


외국에서 온 친구들이 서울에 처음 왔을 때 이틀 정도 서울 안내를 도운 적이 있다. 친구라기엔 사실 나이 차이가 크지만 친구에 나이가 뭐 어떠한가. 이틀, 아니 하루 반은 너무 짧은 시간이라 마음에 코엑스, 국립박물관, 남산 등을 돌며 '전형적인 서울'을 먼저 보여주려 하였다. 한국의 역사와 서울의 전망, 그리고 문명화된 도시를. 남산에 막 올라갔을 때 어떤 동호회 무리가 버스킹을 하고 있었고, 노래 실력은 서툴렀지만 고전적이고 친숙한 곡이었다. 친구는 친절하고 깨끗한 도시라 좋다며 다시 한번 오겠다고 하였고, 그 약속은 언제 이루어질지 모르지만 그때는 '내가 아는 서울'을 보여주겠다고 미리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사실 내가 아는 서울은 단순하고 소박하다. 가장 자주 보는 풍경은 야근하고 귀가하는 길에 보는 어둡고 반짝이는 한강이고, 생각나는 장면한복판에서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골목을 돌아다니어린 시절이다. 혹은 백수일 걷고 뛰던 한강과 남산, 이른 출근길의 어스름한 분홍빛인 하늘색, 도시 한복판에서 노트북과 함께 앉아 있으면 들리는 사람들의 목소리, 서촌 골목에서 친구들과 기울이는 한 잔. 그런 삶을 담은 장면들. 내가 낯선 나라의 도시에서 느끼던 외딴 생경함과 의외로 닮아 있다. 거기에 익숙함이 더해져 다른 색으로 느껴질 뿐. 다시 온 친구에게 나의 서울을 보여주겠다는 말은, 이 도시에서의 편안한 기분을 같이 느끼게 해주겠다는 약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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