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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랭릭Langlic Jan 20. 2024

머물지 않는 외지인

거대한 세상의 책과 좀 특이한 책벌레

37.34° N 126.59°,


이 글은 한 사람이 배운 고독에 대한 수기이자 먼 바다로 흘러다니는 표류에 대한 항해일지이다. 체코의 대문호가 말하길 책은 얼어붙은 내 안의 파도를 깨는 도끼라고 하였는데,  오히려 나는 어린 날을 온갖 책에 잠겨 보냈다. 심해에서 귀한 자원을 채굴하듯 어떤 책이든 상관없이. 책이 나에겐 파도이자 깊은 바다였고, 그 물살은 충분한 시간을 들여 조개처럼 잠겨 있는 나의 내면과 지식을 만들었다. 퇴적층 같은 잡지식과 외로움을 이기는 법만을 아는 사람으로.


어느 날 파도가 더 먼 곳으로 나를 밀어냈고, 그해 나는 처음으로 홀로 타국에 있었다. 책이 나를 침잠하게 하고 숨을 불어넣는 물살이라면, 여행은 해류를 만들고 온도를 불어넣는 거대한 에너지 같았다. 그 때 온몸의 오감이 살아나는 것처럼 내가 아는 것과 세상이 보여주는 풍경이 연결되었다. 보고 듣고 말하는 모든 낯섬을 나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받아들였고, 글자로만 보던 추상적인 이미지가 현실로 빚어졌다. 기이한 감각이었다. 그 후 대부분 출장으로, 때로는 개인 여행으로 국경 밖을 다닐 기회가 이어졌고, 나는 그 낯선 풍경을 다시 글자로 옮겨야겠다고 생각하였다. 수천수만 권을 읽은 책벌레가 아는 일은 그것뿐이었다. 책벌레의 시선으로 보는 세상을 함께하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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