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랭릭Langlic Feb 25. 2024

시방 위험한 오렌지, 아니 귤

대만 가기 전에 제주도 들린 사연


*23일 금요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비 오는 2월의 바다는 싸하고 어둡다.


대만을 가는 길에 제주를 들러 저녁을 먹고, 밤 비행을 기다리며 공항에서 쓰는 글이다. 굳이 제주를 들린 건 단지 서울의 항공권 가격이 한라산 정상처럼 올라갔기 때문이었다. 코로나 이전 기억하기로 30~40만 원 이하이던 대만 왕복 항공료가 어느새 2배로 올랐다. 2시간 반을 타기엔 수용하기 어려운 가격 제주를 거쳐 가는 경로를 골랐다. 그 김에 바다를 보기로 마음먹고 나니 5% 정도 기분이 좋아지더라. 물고기라고는 집 어항에서 통통하게 자라고 있는 구피밖에 모르는지라 가끔 바다를 볼 기회를 마다하지 않았다. 서울 촌놈은 이래서 문제다. 2월 지난 로 가면 인천공항 직항 편도 무난한 가격을 찾을 수 있었지만 여행 목적상 일정을 변경할 수 없었다. 와중에 회사 동료가 따라온다고 하여 흔쾌히 수락하였는데 대만의 맛있는 먹거리를 많이 소개해드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렇게 얼레벌레 떠나온 제주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봄비라기엔 어스레하니 찬 비였는데, 공항을 나오니 빗방울을 때리듯 파도가 세게 치고 있었다. 서울에 있다 온 차라 날이 춥게 느껴지진 않았지만 겨울 바다는 스산하였다. 동료가 추천한 집에서 몸국과 돔베고기 등을 먹고 바다가 보이는 카페로 들어갔는데, 문 앞에 길고양이 집과 새하얀 고양이 한 마리가 서성이고 있었다. 털이 빗물에 젖을 텐데 싶었지만 고양이 주변에 서 있는 흡연자들 때문에 가까이는 가지 못하였다.  소리를 듣고 있자니 근 공사 양면으로 피로한 일들뿐이었던지라 드디어 버텨냈다는 기분이었다. 택시 기사님의 말로는 최근 한두 달 내내 제주에 비가 내려서 도민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어쩐지 서울에는 눈과 진눈깨비가 오더라고요 기사님. 한라봉 시럽이 들어간 바움쿠헨을 조각내며 동료와 회사 이야기, 서로의 덕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대만에 덕질하러 가는 길인데, 둘이 분야가 다른지라 서로의 목적을 각각 달성하기로 합의하였다.



비는 공항에 다시 들어온 지금도 내린다. 게이트 창문 너머 빗물이 개울처럼 흘러내리는 걸 보니 잦아들 기미는 없다. 평상시 공항에서 들리는 소리는 나에게 편안하다. 약간 피로한 얼굴들의 초상과 무언가를 안내하는 방송, 캐리어가 수레처럼 굴러가는 소리. 지금은 동료가 단골 가게 사장님의 라이브방송을 보신다 하여 이어폰 한쪽을 얻어 팟캐스트처럼 듣고 있다. 사장님의 활발하고 열성적인 목소리가 들려 화면을 곁눈질로 보니 피규어 모양의 컵과 토이스토리 인형을 소개하고 있었다. 내가 모르는 애정의 분야는 언제나 흥미롭다. 그 소리를 들으며 내일 할 일을 걱정하지 않고 글을 쓰는, 근래 몇 달 중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바깥은 이제 어두워 조명에 반짝이며 흘러내리는 빗방울만 보인다. 대만에도 비가 온다고 하니 봄이 머지않음을 생각한다.


이전 05화 결막염 이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