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직딩 Dec 01. 2020

출근길 지하철에서 만난 내공 만렙인 사람들

출근길 지하철은 피할 수 있다면 당장 피하고 싶은 공간입니다.


나름 10년이 넘는 9 to 6 직장인으로 매일 아침마다 지옥철에 오르는데도 가끔씩 적응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지하철이 고장이 나거나 1-2분만 지연되어도 그 날 출근길에서 하루에 쓸 에너지를 모두 소진해버리게 되죠.


특히, 요즘엔 마스크까지 끼고 좌우로 밀착된 상태로 밀폐된 공간에 40분 이상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끔찍하기까지 합니다.


고단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가끔 내공 만렙인 사람들을 마주치게 됩니다. 때론 신기하고, 때론 존경스럽고, 때론 꼴불견인 그들의 모습을 소개해봅니다.



흔들리는 지하철 속에서 네 화장품 향이 느껴진 거야


양 팔을 자유롭게 움직이기도 힘든 지하철에서 화장품을 꺼내어 화장하는 여성분들을 보면 경이롭습니다. 본의 아니게 굉장히 밀착된 상태에서 화장하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었고, 겉으로는 표현을 할 수는 없었지만 마음속으로는 연신 박수를 쳤죠. 특히 아이라이너를 그리는 스킬은 대단했습니다. 버스보다는 덜 하겠지만 흔들리는 지하철, 앞뒤 좌우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에서 화장할 수 있는 자신감과 실력을 가진 당신, 출근길 지하철 내공 만렙자로 인정받기 충분합니다.



나무야 나무야 서서 자는 나무야


나무 한그루가 서 있는 줄 알았습니다. 분명히 눈을 감고 자고 있는데 어찌 그리 목석과 같이 서있던지요. 와중에 앞머리에 헤어롤을 감고 있었다는 사실은 내공 만렙을 찍고 보너스 레벨까지 접수하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니 오히려 빽빽한 사람들 덕에 쓰러질 리 없이 편히 잘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라떼파파


* ‘라떼파파(Lattepapa)’란 한 손엔 커피를, 한 손엔 유모차를 끄는 아빠를 가리키는 말로, 육아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아빠를 의미하는 (조금 오래된) 신조어

출근길 지하철에서는 엄마나 아빠가 아이와 함께 출근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아마 직장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경우겠죠. 이른 아침 엄마와 아빠의 손을 잡고 같이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직장 어린이집이라는 혜택을 누리며 보육에 대한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다는 사실이 부럽기도 합니다.


하루는 아빠 혼자 아이를 데리고 지하철을 타더군요. 아빠도 아이도 익숙한지 노약자 석으로 가서 마침 비어 있는 자리를 찾았고, 아이는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빠는 아이의 가방을 열어 도시락 통에 있던 과일을 꺼내어 아이에게 먹여줍니다. 아이는 그것을 또 맛있게 받아먹고요.(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기기 전의 일입니다) 아빠는 휴대폰을 꺼내어 한편으로는 게임을 하면서도 틈틈이 아이와 눈을 마주치고 대화도 하며 놀아주었습니다. 굉장히 여유로워 보이더군요.


출근길 지옥철에서 아이도 챙기고 게임도 하는 여유를 보이는 아빠, 그리고 아빠 출근길에 함께 나서서 어린이집에 가는 것이 힘들 텐데 그 시간과 공간을 즐기고 있는 아이 모두 내공 만렙자로 인정합니다.



임산부 배려석 철판가면


출근길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리기 한 정류장 전이라도 자리가 나면 잠깐이나마 엉덩이를 붙이고 싶죠. 그런데 임산부 배려석에 떡하니 앉아있는 사람들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제가 임신했을 때에는 임산부 배려석에서 너무 곤하게 주무시는 남성분 앞에서 서있기 오히려 민망할 때도 있었고요. 핑크빛 의자에 앉아서 배가 불룩 나온 임산부를 앞에 두고 철판을 깔고 계신 분들, 대단하십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모든 직장인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매일 아침 지옥철에 발을 딛는 모든 직장인들, 진정한 내공 만렙자로 인정합니다.

힘내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비판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3가지 습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