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낭만직딩 Dec 18. 2020

가슴에 품은 사직서와 2,000원

직장인들 중 가슴속에 사직서 하나 품지 않고 직장 생활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조직의 비전이 보이지 않을 때

상사로부터 갑질을 당할 때

업무 구조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때

업무가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업무량이 지속적으로 과도하게 주어질 때 

그로 인해 개인의 삶이 보장이 되지 않을 때

그로 인해 건강이 안 좋아질 때

사내 정치를 당할 때

동료와 커뮤니케이션이 안되고, 불화가 생길 때

조직문화가 나와 맞지 않을 때

다른 일이 하고 싶을 때


품고 있던 사직서를 당당하게 꺼내어 던지고 싶을 때가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기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대출금과 이자가, 가족들의 얼굴이, 카드값이 떠올라, 또다시 존버의 길을 걷습니다.

 

실제로 가슴에 품은 사직서를 꺼내는 직장인은 10명 중 3명 꼴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걱정 때문이죠. 당장 이번 달의 소비를 책임져 줄 다음 달의 내가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막막합니다. 장기적으로는 직장 밖은 지옥이라는데 전쟁터에서 좀 더 몸값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기도 하겠죠. 


나를 지키기 위한 사직서


저 또한 직장인이고, 예외 없이 마음속에 사직서 한 장을 늘 품고 출근길에 나섭니다. 그런데 제가 품고 다니는 사직서는 결정적인 순간 내던지기 위한 사직서가 아닙니다. 나를 지키기 위한 사직서죠.  


직장생활은 매일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입니다. 연차가 쌓일수록 더욱 그러하네요. 


조직에 변동이 생겨서 소속 팀과 하는 업무가 수시로 바뀌기도 하고, 일하는 만큼 성과가 나지 않아서 위축되기도 합니다.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추어야 합니다. 


언제 녹아 없어지고 깨질지 모르는 살얼음판에서 살금살금 걸으면서도 빠르게 발을 움직여야 하죠. 


아이를 낳고나서부터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과 급여를 받기 위해 회사에서 일하는 시간을 맞바꾸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끊이지 않네요. ‘아이가 느끼는 엄마의 온기가 부족한 건 아닐까’, ‘다른 아이들처럼 엄마와 함께 하는 다양한 활동이 부족해서 한 발 늦게 자라는 건 아닐까’ 하고 말입니다. 


그럴 때마다 품 속의 사직서를 만지작 거리며 생각합니다. 


‘스스로 나를 지켜보자고.’

‘이 사직서를 자의로 던질 수 있는 게 오히려 감사한 일이 될 수도 있다고’

‘단순히 이 살얼음판 위를 잘 걷기 위해서만 매일 아침 지옥철을 타고 사무실로 향하진 말자고.’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족에게 자랑스럽고 떳떳한 엄마와 아내가 되자고’

‘내 삶을 위해 직장생활을 잘 활용해보자고’

‘그리고 때가 될 때까지 잘 버텨보자고’

‘마지막으로 정말 필요할 때 앞날에 대한 불안함 없이 사직서를 던질 수 있게 준비하자고’ 

말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동안 직업인으로 변화한다는 점에서 보면 직장은 우리에게 종착역이 아닌 환승역에 가깝다. 직장인으로서 ‘유통기한’이 길지 않다는 점도, 생각보다 변화를 위해 내게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을 수 있다. 가장 좋은 삶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그 방향으로 노력하며 살아가야 한다. 나는 지금 그 방향으로 가고 있을까?
<직장인에서 직업인으로>, 김호


직장에서의 하루가 힘들고 고단한 날이면 다른 한쪽 가슴에 품고 있는 2,000원을 만지작 거립니다.


저는 밀가루 반죽에 단팥이 들어있는 붕어빵보다 찹쌀이 섞인 반죽에 좀 더 기름지고 단팥이 꼬리까지 들어있는 잉어빵을 조금 더 좋아합니다. 잉어빵을 먹기 위해 한 정류장 전에 내리는 수고를 기꺼이 감수하기도 하죠.  


쉽게 꺼내지 못하는 사직서 대신 망설이지 않고 꺼낼 수 있는 2,000원으로 겨울바람만큼 차갑고 시린 마음을 따뜻한 잉어빵으로 달래 봅니다.


요즘에는 잉어빵이나 붕어빵을 파는 곳을 쉽게 발견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어렵게 발견한 잉어빵을 먹고 싶은데 현금이 없는 상황은 너무 서운할 것 같습니다. 


주머니 속 2,000원을 꺼내어 잉어빵을 사 먹으며 혀끝에서 기쁨을, 하루의 끝에서 소소한 행복을 느껴봅니다. 

품 속에 있는 2,000원 또한 나를 지켜주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투명인간으로 직장생활 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