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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May 26. 2018

여행의 의미

저는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습니다만

나는 지금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 있다. 집을 떠나온지 18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 목적지에 다다르지도 못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11시간을 이동해 4시간 경유 후 다시 7시간을 더 날아야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내게 여행이란?


나는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사실 사실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적도 없거니와 여행의 목적은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며 '휴식'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굳이 멀리 해외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고, 일상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시간의 여유를 가지는 것이 내게 있어 최고의 휴식이다.


나는 그동안 여행의 장소 보다 시간에 더 의미를 두는 편이었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몇 가지 이유로 좀 더 다른 의미를 부여해보고자 한다.



가장 멀리 떠나는 여행


이번 여행은 내 인생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가장 멀리 떠나는 여행이다. 초등학교 때 가족과 함께 다녀왔던 하와이 말고는 아시아권을 벗어난 적이 없다. 약 세달 전 여행지를 유럽으로 결정하고, 설렘보다 걱정과 두려움의 감정이 더욱 컸다.  


비행기를 장시간 잘 탈 수 있을까?
9일 동안 여행을 가면 챙기고 들고다녀야 할 짐도 엄청 많을텐데...


앞서 이야기 했듯 내게 여행의 의미는 장소 보다 '시간'이며, '몸과 마음이 편안한 휴식'이다. 그런데 장시간의 이동을 감수하며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다니면 오히려 더 힘들고 피곤해지진 않을까 생각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11시간 비행, 경유지에서 4시간을 보내고 또다시 7시간을 더 비행해야 하는 막막한 일정에 좁고 답답한 공간에 극도의 불안함을 느끼는 나로썬 비행기를 타는 것부터가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러나, 막상 비행기를 타니 밀린 잠도 보충하고, 어떤 것에도 방해 받지 않으며 책을 읽고, 영화도 본다. 창 밖에는 비행기에서만 볼 수 있는,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는 절경들이 펼쳐진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이것 때문이라도 장거리 여행을 떠나도 좋겠다 싶기도 하고, 비행기에서의 시간이 좀 더 천천히 흘렀으면 할 정도로 이 시간이 너무 좋다. 와이파이까지 된다면 더 좋았을텐데


장시간의 이동 또한 장거리 여행의 또다른 선물이며,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스페인 여행 중 타게 될 두 세 차례의 장거리 버스와 비행기, 그리고 집으로 돌아올 때의 비행기 안에서의 시간 또한 기대 된다.


비행기 안에서 본 다른 비행기



여름휴가 기간이 아닌 때 떠나는 해외 여행


타고난 일복이 많은건지,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건지 직장생활을 시작한 10년간 난 대부분 회사일로 바빴고,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다. 직종을 바꾸고, 직장을 옮겨도 늘 같았다.


그러니 여행은 이래서 못가고, 저래서 못가며 늘 우선순위에 밀리게 되었고, 3일의 여름 휴가 때는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 국내나 익숙한 해외로 가서 요양 차원의 휴가를 보내곤 했다.

이번 휴가는 남편의 강력한 권유로 여름 휴가 시즌도 아닌 시기에 '에라 모르겠다 하며 지르게' 되었다.  

타고난 일복 덕인지 미리 계획되어 있던 휴가 기간에 중요한 업무 일정이 겹치게 되어 업무를 최대한 당겨서 부랴부랴 해놓고 휴가를 떠난다. 깔끔하게 마무리를 못한 터라 뒤가 굉장히 찜찜한 상태로...
공항에 도착해서도 이 찜찜함은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나, 출국 수속을 거치며 찜찜함 한덩어리를 덜어내고,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마지막 한 덩어리를 마저 던져버렸다. 아니, 던져버리게 되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여행의 참 본질은 '떠나는 것'에 있다.
일상을 떠나 이상으로 가는 것이 여행의 본질일 것이다.


나는 해외 여행의 시작은 출국 수속을 마치는 순간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떠나는 자와 떠나지 않는 자가 구분 되는 순간인 출국 수속. 출국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타기 전의 그 '공간'은 참 자유롭다. 이 곳에서 첫 번째 일(상)탈(출)을 느끼며 여행의 설렘이 극대화 된다.

두 번째 일탈은 비행기가 땅을 박차고 하늘로 오르는 순간이다. 활주로로 이동한 비행기가 속도를 내고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는 순간, 또한 힘을 다해 하늘로 날아오르는 몇 분의 짧은 순간은 묘한 해방감을 주는 순간이다.

이렇게 일상을 떠나고, 찜찜함을 내던져 버린다. 내 생활의 8할을 차지하고 있는 직장에서 잠깐 빠져나와 휴가라는 것을 간다. 그것도 휴가 시즌이 아닌 평소에. 이렇게 휴가를 갈 수 있다는 것도 생각해보면 참 감사한 일이다. 그것을 허락해 준 상사에게도 감사하고, 내 찜찜함을 책임져 줄 사무실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참 감사하다.

유독 업무가 잘 풀리지 않는 올해, 모두 비우고 떠난다.
그리고 비운 만큼 새로운 것으로 채울 수 있는 여행이 되길 기대해본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떠나는 여행


그 동안 참 익숙한 곳으로의 여행을 선호해왔다. 여행 전 준비의 수월함부터 시작해서 여행지에서의 편안함을 추구하며 말이다. 아시아권으로 여행하다보니 주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의 모습도 비슷하고, 중국어를 전공한 나로써는 아시아권에서 중국어로 소통을 할 수 있는 나라들 또한 많다는 사실에 아시아권 여행을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물론, 실력은 생존 중국어 실력이다.


그런데 유럽, 너 참 낯설다.


비행기에서부터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눈에 보이고, 다양한 언어들이 귀에 들린다. 낯선 환경과 통하지 않을 언어 때문에 여행 일정 또한 매우 열심히 준비해서 왔다. 도시를 제외한 지방에서는 영어가 거의 통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짝 두려운건 사실이다.

여행 전 미리 계획했던 것은 아니지만 '맨 오브 라만차' 뮤지컬 공연을 보게 되었다. 스페인의 영웅이자 신화의 존재인 세르반테스의 소설 <돈키호테>에 대한 이야기이다. 돈키호테는 객관적으로 보기엔 늙고 힘없고 볼품없었을 뿐 아니라 기사도 라는 이상에 갖혀 비현실적으로 살아왔다. 그는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 일쑤였고,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했지만 그에게는 꿈과 신념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자유로웠다.

이번 여행은 돈키호테의 나라에서 돈키호테 처럼 여행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여행을 떠나며 걱정도 많고, 또한 불안하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나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될까?
주위 사람들에게 여행을 간다고 말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좋겠다. 나도 가고 싶다"였다.


쉽게 얻기 힘든 이러한 여행의 기회에서 익숙하지 않은 환경으로 인해 움츠려들고,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몸과 마음에 힘을 빼고, 참 자유로움을 느끼고 싶다.




그 동안 내게 여행의 의미가 '휴식'이었다면, 이번 스페인 여행에서는 여행에 새로운 의미를 추가하고 싶다.

여행을 준비하며 설레이는 감정 보다 불안과 걱정의 감정이 더 컸는데 여행길에 오르며 오히려 불안함보다 설렘이 더 커진다.


집을 떠나온지 약 25시간 만에 보게 된 스페인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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