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이 될만큼 여행이 좋은 이유 3가지
우리는 여행이 유행인 시대에 살고 있다
퇴사 후 여행, 혼자 훌쩍 떠나는 여행, 가족티를 맞춰 입고 떠나는 여행, 맛집을 찾아 나서는 여행, 세계일주 등...
그만큼 삶의 질도 나아지고, 먹고사는 문제에 얽매이기 보다 삶의 즐거움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아가고자 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행을 따르기 위함은 아니었으나 삶에 쉼표를 찍기 위해, 일상을 벗어나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났고, 꿈 같은 여행은 끝났다.
지난 9일간 그동안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 이를테면 눈 앞에 펼쳐진 풍경들, 다양한 사람들, 새로운 음식들 등으로 순간순간 신기했고 즐거웠다. 책이나 사진으로 보던 것들이 눈 앞에 3D 입체 영상으로 펼쳐지고 있었다. 꿈같은 실화였다.
꿈에서 깨어나 현실로 돌아온 현재, 일주일 넘게 비웠던 집의 무거운 공기를 공기청정기가 온 힘을 다해 정화하고 있으며, 여행 중 차곡차곡 모아 온 빨래거리들로 세탁기와 건조기는 바쁘게 돌아간다.
당장 내일 아침이면 밥벌이를 위해 지옥철에 몸을 실어야 하며, 사무실 좁은 책상 앞에 앉아 하루 종일 모니터를 쳐다보며 해야하는 일들을 하게 될 것이다.
여행을 시작하며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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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친 지금, 지난 여행에 대해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더할나위 없이 좋았다
사실 난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그저 일상에서 떠나 몸과 마음을 쉬게하는 것, 그것 뿐이었다. 그러나 지난 9일간의 스페인 여행을 하며 여행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말은 무지의 소산임을 깨닫게 되었다.
틈만 나면 떠나고, 틈을 만들어 떠나는 여행이 유행인 시대, 일상을 떠나 이상으로 가는 여행은 분명 좋은 것임에 틀림 없다.
이번 여행을 통해 체험한 “여행이 더할나위 없이 좋았던 이유”를 3가지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여행을 떠나며 돈키호테 처럼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돈키호테 처럼 여행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일단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리고 상황이나 환경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이 원하는 것,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완전히 빠져든다. 어쩌면 그것이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이더라도 말이다.
한편으로 생각하면 어려운 시간을 내고, 비싼 비용을 들여 떠나게 된 여행이 아까워서라도 더 욕심껏 보고 듣고 경험하려고 애쓰는 것이 옳다. 그러나,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 마치 돈키호테의 삶 처럼 말이다.
이번 여행은 여행 전 준비를 충실히했다. 본디 계획은 변경되라고 있는 것이라 생각해왔기 때문에 그동안 계획 세우는 것에 큰 비중을 두지는 않는 편이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은 처음 시도해보는 낯선 환경으로의 여행이었고, 그에 따른 불확실성을 줄여보고자 촘촘하게 여행 계획을 세웠다. 덕분에 크게 우왕좌왕하지 않고, 계획대로 순조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여행 계획 자체가 우선이 될 때, 안정적인 여행을 위해 세운 계획이 오히려 어긋나게 될 것에 대한 조급함과 불안함으로 바뀌게 되기 마련이다.
이번 총 7박 9일의 일정 중 세비야에서 3박이 계획 되어있었다. 총 4개 지역을 이동하는 일정치고는 세비야에서의 일정이 다소 긴 편이었다. 사실 세비야에서 묵을 숙소를 예약할 때 수영장 있는 곳으로 예약했었다. 그리고 나선 그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채 세비야 일정 계획을 세웠으며 호텔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이 기억났다. 기대했던 것보다 수영장 컨디션이 괜찮은 것을 확인하고, 세비야에서의 일정 몇가지를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현지에서 수영복을 구매하여 일광욕과 수영을 즐겼다. 지금이 아니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세비야이고, 포기했던 알카사르와 같은 곳은 꼭 둘러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다. 그러나 햇빛을 받으며 가만히 누워있었던 그 시간 또한 내겐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여행의 즐거움은
여행의 장소나 행위 그 자체보다
어떤 마음으로 여행하는지에 좌우된다
사실, 돈키호테처럼 여행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의 말을 살짝 응용해서 소제목을 달아보았다.
자연은 항상 펼쳐져 있는 책이며 읽어야 하는 책이다
- 건축가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나는 무엇이든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실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든, 그렇지 않든 배우는 것 그 자체로 즐거움을 느낀다.
스페인을 여행하며 많은 건축물들을 보고, 그 건축물에 얽힌 역사적 배경과 건축가의 일대기, 건축 양식 등에 대해 듣게 되었다. 건축물 뿐 아니라 지역의 역사적 배경, 그리고 관련한 스토리 등 굉장히 폭넓은 지식들을 새롭게 듣게 되었다. 굉장히 흥미로운 한권의 책이다.
그라나다의 알바이신, 알함브라 궁전, 각 지역마다의 대성당,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천재적인 건축가 가우디와 그의 작품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까사밀라, 구엘공원, 그리고 크고 작은 광장들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들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이것들이 당장 내 삶에 큰 영향을 끼칠만한 지식들은 아니지만,
일단 재미있고,
내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것이며
생각지도 못했던 것에 영감이 되어
점과 점을 연결하는데 사용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알랭드보통은 본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여행 중에 '삶을 위하여' 지식을 구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니체의 관점을 들어 해석하고 있다.
과거의 위대함을 숙고함으로써 힘을 얻고, 인간의 삶이 영광스러운 것임을 느낌으로써 영감을 얻는 사람들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이라는 관점과 우리의 사회와 정체성들이 과거에 의해서 형성되어왔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과정에서 연속성과 소속감을 확인하게 되는 여행이라는 또다른 관점이다.
- 알랭드보통 <여행의 기술> 중 편집
스페인 곳곳의 관광지에서 뿐 아니라 거리를 걸으며, 그리고 투어 중 만난 다양한 나라의 여행객들 또한 또 한권의 책이었다. 한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서로의 손을 꼭 붙잡고 천천히 여행하는 노부부들(생각보다 많아서 깜짝 놀랐다), 휠체어를 타고서 여행 온 어르신들, 혼자 유럽일주를 하고 있는 남미의 젊은 청년,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을 하고 있는 군악대원들(1981년에 한국에 방문해서 공연을 했다고 한다), 유난히 많이 눈에 띄던 혼자 여행 중인 우리나라 젊은 여성들...
이번 여행에서 얻은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은 "일상에 연연해 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에 연연해 하지 않는다는 것을 결코 일상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더욱 가치 있는 것에 집중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같은 일이라도 어떤 자세로 바라보고, 어떤 것에 중요성을 더하느냐에 따라 전혀 의미가 없는 것이 될수도,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수 있을 만큼 가치 있는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여행을 통해 입력된 정보와 감정이 완전 과부하 상태다. 찍어온 사진들을 보며 다시 찬찬히 되짚어보고, 글로 쓰며 정리해 볼 예정이다.
여행의 매력은
결국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것이 아닐까
길을 걸으며 보게 되는 건물들, 마주하게 된 과일가게, 음식점, 슈퍼마켓, 심지어 쓰레기통까지... 모든 것이 새로울 뿐이다. 특히 유럽의 경우 모든 것이 이국적이다.
여행 중에는 모든 것이 목적이 된다. 길을 걷는 것도, 거리의 꽃과 나무도, 들려오는 말들도 그 자체로 이국적인 것을 느낄 수 있다. 가령, 삶의 터전에서는 지하철은 내가 원하는 곳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일종의 교통수단일 뿐이지만, 여행지에서는 그 자체가 목적이며 즐길꺼리가 된다.
참고로, 스페인 마드리드 지하철은 지하철 문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직접 열어야 한다. 만약, 지하철 칸에서 내리거나 탈 사람이 없다면 문이 열리지 않는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이번 여행에서는 맛집을 찾아다니기 보단 로컬 음식점들을 많이 가고자 했다. 현지 사람들이 매일 먹는 식사메뉴가 여행객들에게는 새롭다. 음식의 명칭부터 재료, 음식을 담아내는 그릇, 맛과 향 모두가 새로우며 음식을 떠서 입에 넣는 그 짧은 순간의 설렘 또한 여행에서 얻는 큰 행복이다.
이렇듯 현지 사람들은 모든 것이 그저 일상인 반면, 여행객들에게는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에 의미가 부여되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그리고, 우리는 계속해서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을 찾아서 여행을 떠나고 싶어한다.
더불어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을 사진으로 담아 감각적으로 편집하고, 섹시한 태그를 더해 본인의 SNS 계정에 업로드 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분이 아닐까?
여행이 유행인 시대다.
너도 나도 떠나고 싶어하는 여행이지만, 떠나고 싶다고 떠날 수도 없고, 언제나 여행의 끝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큰 것이 여행을 떠날 때의 마음과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의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한다.
단언컨대, 내일부터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삶을 다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다람쥐 쳇바퀴 돌 듯한 삶이 문제가 아니다. 그 쳇바퀴 안에서 주도적으로 쳇바퀴를 돌리고, 쳇바퀴의 크기를 키워나가고, 쳇바퀴의 모양을 바꾸고자 하는 것이 과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그 모든 과정에 활기차게 임해보자고 다짐한다.
타이틀에 사용한 이미지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몬세라트에서 찍은 사진이다. 몬세라트는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담기에 아까울 정도로 빼어난 경관과 함께 엄숙함과 고결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 장소도 보는 시각에 따라 일부만 보이기도 하고 나름의 프레임에 맞추어 해석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하찮고 일상적인 경험을 잘 관리함으로써 그것을 경작 가능한 땅으로 만들어 1년에 세 번 열매를 맺게 한다. 반면 어떤 사람들은 운명의 솟구치는 파도에 휩쓸리거나 시대와 나라가 만들어내는 혼란스러운 물줄기 속으로 밀려들어가면서도 늘 그 위에 코르크처럼 까닥거리며 떠 있다. 이런 것을 관찰하다 보면, 우리는 결국 인류를 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 즉 적은 것을 가지고 많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극소수와 많은 것을 가지고 적은 것을 만드는 방법을 아는 다수로 구분하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된다.
- 알랭드보통 <여행의 기술> 중
일상을 벗어난 곳에서 일상의 의미를 찾았다
내일부터 난 또다른 여행을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