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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Jun 17. 2018

축알못의 시선으로 본 스페인의 축구

스페인 여행기 #1

우리 여행 일정을 좀 바꾸는 거 어때?


스페인 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 남편이 위와 같이 제안을 했다.

올해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에 레알 마드리드가 올라갔고, 우리가 마드리드에 도착하는 날에 결승전 경기가 열린다는 이유였다. 결승전 경기는 우크라이나에서 진행되지만, 마드리드에서 충분히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을 것이며, 꼭 스페인의 축구를 경험해보고 싶다고 했다. 더불어, 우리의 여행 일정과 스페인 리그인 라리가 일정과 살짝 맞지 않았던 아쉬움을 달래기 위한 이유도 있었다.


당초에는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톨레도로 이동할 계획이었으나, 톨레도 일정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그 자리를 마드리드에서 스페인 축구의 '분위기'를 경험하는 것으로 대체했다. 평소 축구에 그리 관심이 없던 나로서는 우리가 포기한 톨레도 일정이 무척 아쉽기도 했으나, 스페인, 그리고 스페인 사람들에게 축구가 가지는 의미가 남다르다는 것을 알기에 부랴부랴 톨레도 숙소와 교통편을 취소하고, 마드리드에서의 1박을 준비했다.


2018년 5월 26일 토요일 오후 8시
2017-2018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


네가 만든 역사, 네가 만들 역사
네 넘치는 승부욕은 아무도 널 이길 수 없기에,
별들이 떠오른다, 내 옛 차마르틴이여
멀리서든, 가까이서든 우릴 여기까지 데려다 주네
네 유니폼을 입고, 내 심장에 붙인다
네가 경기하는 날은 넌 내 전부이다
화살이 날아간다, 내 마드리드는 공격한다
나는 투쟁, 나는 아름다움, 이 외침을 나 배웠네
마드리드, 마드리드, 마드리드, 알라 마드리드,
아무것도 더 말고, 아무것도 더 말고, 알라 마드리드!
- 레알 마드리드 응원가(나무위키 참고)


오후 4시에 마드리드 공항에 도착해서 숙소에 짐만 내려 두고 레알 마드리드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기가 시작되려면 아직 3시간이나 남아있었지만, 경기장으로 향하는 지하철 안은 이미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의 열기로 뜨거웠다. 다들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응원가를 부르며 한층 들떠있었다. 2002년 월드컵 응원전을 펼치던 우리나라의 모습이 오버랩되었고, 도시 전체가 들썩이는 느낌이었다.


그 날 경기는 레알 마드리드가 리버풀을 상대로 3:1로 승리를 거뒀고, 레알 마드리드는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더불어, 우리 또한 그 현장에서 마드리드 시민들의 끓어오르는 열정 에너지를 듬뿍 받고 스페인 여행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유럽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을 응원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로 가득한 레알마드리드 홈구장 ‘산티아고 베르나베우 경기장’


남녀노소 가릴 것 없는 레알마드리드 팬들의 응원 열기




스페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축구를 보라


페인에게 축구는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페인의 축구는 스포츠의 의미를 뛰어넘어, 스페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스페인 축구를 이해하기 위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엘 클라시코( El Clásico)’다.

엘 클라시코( El Clásico)란, 스페인 축구 1부 리그인 프리메라리가의 최대 라이벌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경기를 이르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는 ‘전통의 승부’이며 매년 국제적으로 시청률이 가장 높은 축구 경기 중 하나다.


스페인은 서중부 카스티야, 북부 바스크, 남부 안달루시아, 동부 카탈루냐라는 네 개의 지역으로 나뉜다. 여기에서 서중부 카스티야를 대표하는 팀이 레알 마드리드이고, 동부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팀이 FC 바르셀로나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가 최대의 라이벌이 된 것은 두 팀의 실력 때문만이 아니다.


1936년 프랑코가 쿠데타로 권력을 차지하고, 장기 집권하게 되었다. 이때, 바르셀로나 사람들은 독재자 프랑코에 저항하기 시작했고, 프랑코는 바르셀로나가 있는 카탈루냐 지방을 탄압하면서 지방언어인 카탈루냐어도 쓰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카스티야의 대표적인 축구팀인 레알 마드리드를 밀어주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두 팀은 앙숙이 되었고, 요즘에도 바르셀로나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이야기하거나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것을 경계할 정도로 지역감정이 강하다.


레알 마드리드의 레알(Real)은 왕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줄곧 우익 세력의 지지를 받았던 반면, FC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민족성을 기반으로 반 정부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시민들이 세운 협동조합의 형식으로 운영되는 팀이다. 이러한 이유로 엘 클라시코 경기는 왕족과 시민의 대결이라는 의미를 담기도 한다.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 두 팀은 축구팀 외에 농구팀 레알 마드리드 발론세스토와 FC 바르셀로나 바스켓을 보유하고 있으며, 두 팀은 스페인 농구 리그인 리가 ACB에서 항상 우승을 다투는 라이벌이다. 이에 두 농구팀이 붙는 경기 또한 엘 클라시코라고 칭한다고 한다.)


왕관이 눈에 띄는 레알 마드리드이 엠블럼과 카탈루냐 기가 눈에 띄는  FC 바르셀로나 엠블럼


스페인은 이번 2018 러시아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는 32개 나라 중 선수단 몸값 총액이 가장 높은 나라로 조사되었다. 스페인의 총액 가치는 무려 전체의 10%인 12억 1천710만 달러(약 1조 3천108억 원)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이 국제 대회에서 그만큼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하는 이유는 이러한 지역감정 때문이 아닐까 한다. 반면에, 지역감정 때문에 스페인 내 클럽 축구는 등록 클럽 수가 세계에서 가장 많을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스페인의 축구는 각 지역의 경제적 지표가 되기도 한다. 1부 리그 팀의 보유 여부에 따라 해당 도시의 경제적인 규모나 수준을 쉽게 알 수 있다. 스페인에서 소득 수준이 높거나 시강 규모가 큰 곳으로 꼽히는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바스크, 발렌시아 지방은 늘 두세 개의 1부 리그팀들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에, 별다른 소득원이 없거나 가난한 지역은 1부 리그 팀을 보유하지 못하며, 설사 1부 리그로 올라간다고 하더라도 얼마 버티지 못하고 다시 하위 리그로 강등된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소위 잘하는 팀인 레알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는 호날두, 메시 등과 같은 몸 값이 비싼 세계적인 선수들을 영입해서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드리드, 그라나다, 세비야,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며 공통적으로 발견한 것은 각 지역의 축구팀 전시관과 기념품 상점이다. 또한, 청년 실업률이 50%에 육박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신이 속한 지역의 축구팀을 응원하기 위해 몇 시간을 이동한다. 이처럼 스페인의 축구는 지역의 중요한 수입원 중 하나이자, 경제 침체기에서 스페인 사람들에게 작은 희망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마드리드에서 구매한 레알마드리드 호날두 유니폼과 바르셀로나에서 구매한 FC바르셀로나 머그컵과 와인




스페인에서 축구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축알못의 시선으로 본 스페인의 축구는 ‘개인의 삶이자, 또 하나의 스페인’이다.


2018년 러시아 월드컵이 시작됐다.

스페인은 중원을 잘 장악해서 축구를 하는 팀으로 평가받고 있다.

축구를 삶의 일부로 여기는 스페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이 러시아에까지 닿아 이번 월드컵에서 2010년 남아공 월드컵의 우승 신화를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기를 함께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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