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이드 투어 - 스페인 여행기 #2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다.
여행 준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여행 기간이 넉넉하지 않다.
여행 경험이 많지 않다.
여행을 통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친구를 사귀고 싶다.
뭔가 남는 여행을 하고 싶다.
패키지 여행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위의 일곱 가지 항목 중 3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유럽 여행을 떠날 때 '가이드 투어'를 꼭 활용하길 추천한다.
유럽은 그냥 걷기만 해도, 주변을 둘러보기만 해도 좋은 곳이다. 굳이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눈에 보이는대로, 발 닿는대로 느끼고 즐겨도 충분히 좋은 여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좋은” (의미있는, 유익한, 풍성한, 알찬, 기억에 남는, 배울 수 있는, 다채로운) 유럽여행을 위해서 자유 여행 중 간간히 ‘가이드 투어’를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유럽 여행을 떠날 때 꼭 챙겨야 하는 물건들이 있다.
모든 해외여행에 공통적으로 필요한 여권, 멀티탭, 어댑터, 우산(혹은 우비), 유심카드 등은 물론이고, 유럽 여행 시엔 핸드폰 목줄(소매치기가 굉장히 많은 곳이므로), 슬리퍼(우연인지 모르지만, 스페인에서 묵었던 4개의 호텔 모두 슬리퍼가 없었다. 4성 이상 되는 호텔이었음에도 불구하고...)를 추가로 챙겨가기를 추천한다.
위와 같은 물건뿐만 아니라, 더욱 풍성한 여행을 위해 체크리스트에 추가해야 할 아이템이 바로 '가이드 투어'다.
지난 5월 말, 7박 9일 일정으로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다. 나는 여행을 떠날 때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 편이며, 여행을 떠나기 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그러나, 서양권으로 떠나는 첫 여행이라 계획 없이 떠나기엔 불안하기도 했고, 쉽게 마련하기 힘든 유럽 여행의 시간을 허투루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패키지여행을 가고 싶지도 않았다.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친구들의 의견도 듣고, 틈틈이 인터넷 검색을 하며 스페인에서의 7박 9일 일정을 채워가던 중, '가이드 투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가이드 투어는 자유 여행 일정 중 원하는 지역, 원하는 시간, 원하는 여행 코스의 상품을 골라서 이용할 수 있는 여행 프로그램이다.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하루 종일 가이드와 함께 해당 지역을 여행한다.
유럽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은 매우 다양해서 니즈에 따라 선택해서 활용하면 된다. 자유롭게 여행하다가 내가 원하는 지역과 시간, 여행 컨셉에 맞춰서 조각조각 퍼즐맞추기를 할 수 있는 것이 매력적이다. 나는 주로 마이 리얼 트립 과 유로 자전거나라 사이트를 이용했다. 프로그램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여행을 떠나기 전 예약을 못했더라도 현지에서 온라인으로 신청하거나 현지 프로그램을 활용해도 좋다.
7박 9일 일정 동안 총 4개의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했고, ‘덕분에’ 여행이 더욱 알차고 풍성해졌다. 스페인에서 경험한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의 장점과 팁 5가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스페인에서 이용한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
그라나다 알바이신 야경 투어(3시간)
알함브라 궁전 투어(4시간)
바르셀로나 야경 골목 투어(2시간)
몬세라트 와이너리 투어(7시간)
출발 전에는 계획에 없었으나 그라나다 버스 터미널에서 트립어드바이저 상품인 '그라나다 알바이신 야경 투어'를 예약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투어 프로그램을 신청하지 못했어도 현지에서 얼마든지 활용 가능하다. 버스 터미널이나 주요 관광지 근처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로컬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알바이신은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로 이루어진 언덕이 특징인 지역이며, 이베리아 반도 마지막 이슬람 왕국인 그라나다 이슬람들의 집단 거주지다. 보통 알바이신 지구를 둘러보면 골목길을 지나 '산 니콜라스 전망대'까지 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산 니콜라스 전망대도 경치가 매우 좋지만, 우리는 현지 가이드와 함께 집시들의 거주지인 사크라몬테 언덕까지 가서 잊지 못할 낙조를 볼 수 있었다. 실제로 집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또한, 알바이신 지구와 사크라몬테 언덕은 준 등산 코스와 같은 곳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다양한 나라의 친구들과 이야기 하며 함께 오르니 ‘못 오를리 없는 곳’이 되었다.
그라나다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 사크라몬테 언덕에 앉아서 해가 지기를 기다리던 그 시간은 정말 소중한 추억의 한 페이지가 되었다. 만약, 알바이신 지구를 우리끼리 갔다면 잘 갔다고 해도 산 니콜라스 전망대까지만 갈 수 있었을 것이며, 복잡한 골목길에서 길을 잃었을 수도 있고, 특히 해가 지기 전 언덕을 내려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잘 몰라서, 위험해서, 혹은 번거로워서 쉽게 가지 못하는 곳을 쉽게 갈 수 있다.
마드리드, 그라나다, 세비야를 거쳐 마지막 일정으로 바르셀로나에 도착했다. 처음 도착한 바르셀로나는 이 전에 경험했던 스페인의 세 곳의 도시와는 느낌이 매우 달랐다. 매우 복잡했고, 사람들도 많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무서운' 사람들이 많았다. 만약, '바르셀로나 야경 투어'가 없었다면, 겁이 많은 우린 바르셀로나의 밤거리를 걸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야경투어는 2시간 정도로 짧게 진행되는 프로그램이다. 레알광장에서 부터 시작해서 아비뇽 거리, 산필립네리 광장, 노바광장, 왕의 광장, 까탈루냐 음악당을 돌아보는 코스다. 저녁 9시에 모여서 가이드의 리드에 따라 바르셀로나의 골목과 건축물, 그리고 광장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각 장소에 얽힌 스토리들은 물론 가이드 투어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만한 건물, 벽에 새겨진 글씨 등을 주의 깊게 볼 수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텅 빈 광장도 역사의 한 장면이 되었고 그 당시 스페인 사람들의 아픔이 느껴지기도 했다.
위의 사진은 일명 산타 에울라리아를 기리기 위한 '에울라리아 내리막길'이다. 당시 13세였던 에울라리아는 로마 지배 시절 기독교 박해가 있을 때 자신의 종교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투쟁했다. 이에 화가 난 왕은 그녀의 나이만큼 13가지 고문을 했는데 그 중 한 고문을 이곳에서 했다. 와인 통에 날카로운 물건들과 함께 그녀를 넣고 이 내리막길에서 굴리는 고문이었다. 모두 그녀가 죽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녀는 상처 하나 없이 통 속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로 인해 더욱 화가 난 왕은 그녀를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매달고, 목을 잘라 죽였다. 그녀를 기리기 위해 이 골목 한 켠에 에울라리아 모형과 X자 모양의 십자가를 두었다. 오른쪽 사진 중앙에 작은 유리창 처럼 보이는 것이 그것이다. 바르셀로나는 그녀를 수호 성녀로 기념하며 매년 2월 축제를 열기도 한다. 가이드 투어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만한 장소다.
위의 사진은 '산펠립네리 광장'이다. 바르셀로나 하면 떠오르는 인물 가우디가 매일 저녁 미사를 드리러 성당이며, 이 곳에 오다가 트램에 치여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오른쪽 사진 역시 산펠립네리 광장 벽면의 모습이다. 벽이 움푹 패여 있었는데 가이드의 설명이 없었다면 단순히 조형의 일종으로 생각하고 지나쳤을 것이다. 이 벽면은 스페인 내전의 상흔이다. 42명의 민간인이 총살 당한 흔적이며, 벽면 중간에 희생자들을 기리는 표지를 마련해두었다.
산펠립네리 광장은 영화 향수의 배경으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왼쪽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찍은 사진이고, 오른쪽이 영화의 한 장면이다.
위의 사진은 왕의 광장이다. 텅 빈 이 곳 광장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콜럼버스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던 이사벨 여왕이 버선발로 뛰어 나와 콜럼버스를 만나는 장면이 눈 앞에 생생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의미 없이 그냥 지나쳤을 만한 장소들을 가이드 투어를 통해 새롭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4개 중에 3개의 가이드 투어를 '영어 투어'로 선택했다. 물론 영어를 잘 하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가이드가 이야기하는 것의 70% 정도만 알아들었을 뿐이다. 특히, 알함브라 궁전 투어를 할 때는 50%도 못 알아 들었다는 것이 매우 아쉬운 부분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 투어를 이용하며 아르헨티나, 프랑스, 독일, 대만, 미국 등에서 온 여행객들과 교류할 수 있었다. 짧은 영어실력이었지만, 단어 중심으로 바디랭귀지를 섞어가며 여행객들의 여행 스토리, 각 나라의 문화 등을 서로 이야기 하는 것은 여행의 소소한 재미가 되었다. 여행 메이트인 남편이 아닌 다른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이기도 했다. (남편과 대화하는 것이 지겨웠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가이드 투어 선택 시 영어 투어를 선택해보는 것을 강력 추천한다. 생각보다 미국인을 제외한 사람들은 영어실력이 매우 뛰어나진 않았다. 충분히 자신감을 가져도 되며, 덤으로 영어 공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얻을 수 있다.
가이드 투어 중 가장 기억에도 남고, 유익했던 투어는 '몬세라트+와이너리 투어'다. 몬세라트는 바르셀로나에서 차로 1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이다. 세계 최고의 4대 성지로 손꼽히는 이 곳은 산지이며 베네딕트의 산타 마리아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는 곳으로 일반 열차를 두 번 타고, 산악열차도 추가로 타야 갈 수 있는 곳이다.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여 편하고, 효율적으로 몬세라트 지역까지 갈 수 있었고, 가이드의 리드에 따라 산악열차도 편하게 탈 수 있었다. 여행 기간이 길지 않을 때엔 가이드 투어를 활용해서 이동 시간, 헤매는 시간 등을 절약하는 것도 좋은 팁이다.
무엇보다 본 프로그램을 통해 와이너리를 경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좋았다. 와인이 유명한 스페인에서 와이너리는 꼭 경험해보고 싶은 것 중에 하나였다. 가이드 투어 프로그램을 통해 포도농장, 와이너리 공장도 구경하고 그곳에서 직접 생산한 와인들을 테이스팅 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다. 와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적게 생산하여 시중에서 쉽게 구하지 못하는 와인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은 값진 경험이 되었다.
가이드 투어를 진행하면, 투어뿐만 아니라 현지 맛집 정보, 쇼핑 정보 등 꿀팁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없어도 되지만, 있으면 더 좋은 유럽 여행의 아이템 '가이드 투어'를 통해 좀 더 알차고, 기억에 남는 유럽여행을 할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며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을 공유한다. 알함브라 궁전 투어가 다소 급하게 진행되었던 것이 아쉬웠다. 약 4시간 동안 진행되었지만, 알함브라 궁전과 알카사바가 워낙 방대해서 4시간만 둘러보기엔 아쉬움이 매우 컸다.
투어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프로그램 선택 시 사전에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대략적으로라도 파악하고, 자신의 관심사나 시간 일정을 감안해서 최적의 프로그램을 선택하면 더욱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