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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Jul 29. 2018

국물 예찬

뜨끈하고, 시원하고, 담백하고, 얼큰하고, 고소한 국물의 두 얼굴

국물도 없어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예쁘게 차려져 나오는 코스요리를 맛있게 먹고 나올 때.

근사한 호텔 뷔페에서 다양한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나올 때.


분명 평소에 쉽게 먹지 못하는 요리들을 입으로, 눈으로 즐기며 맛있게 먹고 나왔는데 늘 생각나는 건 '라면 국물'이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음식이라도 '국물도 없는' 음식은 왠지 자알~ 먹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배가 불러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하다.


비약이 조금 심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돌아오는 몫이 아무것도 없다는 의미로 '넌 국물도 없어'라며 으름장을 놓는 것이 이런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얼마 전 스페인으로 여행 갔을 때, 고작 7박 9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국물을 먹지 못했을 뿐인데, 난 국물 금단 증상을 보였다. 물론, 스페인에서 먹은 음식들도 맛있었지만, 여행 후반으로 갈수록 눈 앞엔 뜨끈~하고,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음식들이 아른거렸다. 결국 휴가에서 돌아온 바로 다음 날 아침에 회사 식당에서 라면을 흡입하고야 말았다.

회사 식당 아침 라면은 정말 맛있다. 이 날도 아침부터 라면 한 그릇을 국물까지 다 비워버렸다.


국이 없어도 밥을 잘 먹긴 한다.

굳이 국물 있는 음식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더욱이, 나는 미식가도 아니다.

국물을 즐겨 먹지만, 그 국물이 어떤 육수로 만들어졌는지, 왜 이런 맛이 나는지 크게 궁금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국물을 먹지 않으면 계속 생각이 나고, 뜨끈하면서도 시원한 국물 한 모금이면 속이 풀리는 그 기분이 너무 좋다. 고기 육수, 해산물 육수, 야채 육수, 닭 육수, 김치 육수 등 어떤 육수로 만든 국물이든, 그냥 맛있게 먹을 뿐이다.


아무래도 난 '국물 중독'인 것 같다.


주로 즐겨 먹는 국물 음식들. 혼자서라도 자주 먹는 음식들이다.


국물이 있는 음식을 즐겨 먹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가 국, 탕, 찌개, 전골 등 국물이 있는 음식들을 먹게 된 이유가 뭘까? 많은 썰들이 있지만, 경제적으로 그다지 부유하지 않고, 식량도 풍부하지 않아서 적은 재료로 많은 식구들이 함께 먹을 수 있는 방법으로 탕을 선택했다고 했다. 음식을 탕으로 끓이면 나누어 먹기도 쉬울 뿐 아니라, 재료에 있는 것이 국물에 우려져 나오기 때문에 음식 재료를 최대한 경제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음식 재료를 국물에 넣어 끓이거나, 물기가 많이 생기게 발효시키면 소화 부담을 줄일 수 있으며, 음식을 끓여먹으면 조금 더 안전하고, 위생적으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안 선조들의 지혜가 반영되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어령 선생님은 한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한국의 국물 문화를 해석하기도 하셨다. 재미있고, 유익한 내용의 칼럼이라 글 하단에 링크를 게시해 놓는다.

한국 음식의 탕 문화를 기호학적으로 말하면 탈 코드적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탕은 국과 밥의 혼합으로, 유동식과 고체식의 경계를 파괴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탕뿐만 아니라 한국 음식에는 예외 없이 국물이 있다. 한국 음식은 불필요한 것, 부수적인 것, 잉여적인 것을 제거하지 않고 포섭한다는 것에 특징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국물김치가 아니어도 김칟깍두기에는 국물이 꼭 따르게 마련이다. '국물도 없다'는 말이 욕으로 쓰이는 것을 보더라도 한국인의 국물 문화가 어떤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젓가락 문화권에 속해 있으면서도 유독 한국만이 젓가락과 함께 숟가락을 겸용하는 이른바 '수저 문화'의 특성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이다.
- [이어령의 생각 바꾸기] 국물 문화와 포스트모던적 발상


국물이 끝내줘요


국물엔 육수를 내기 위한 다양한 재료들이 푸욱~ 우려져 있다. 게다가 국물은 맛깔난 양념과 추가로 넣은 채소, 고기 등의 고유한 맛과 향을 깊게 머금고 있다. 국물은 끝내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국물을 워낙 좋아하다 보니, 국물 음식을 먹다 보면 그릇의 밑바닥을 봐야 숟가락을 놓는 버릇이 생겼다. 면과 함께, 혹은 밥과 함께 호로록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국물의 맛은 정말 끝내 준다. 시원하고 담백한, 얼큰하고 고소한, 진하고 깊이 있는 국물을 사랑한다.


설거지 한 것 아님. 뼈다귀 해장국의 뼈는 왠지 모르게 좀 부끄럽기까지 하다. 국물 만의 문제는 아닌 듯^^;


국물 중독은 염분 중독


최근에는 내가 그토록 좋아하는 '끝내주는 국물’을 최대한 줄이려고 노력 중이다. 다름 아닌 건강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한국이 나트륨 섭취 1위 국가이며 국과 찌개, 그리고 면류를 통해 나트륨 섭취를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나는 짠 음식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싱겁게 먹는 편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필요 이상의 염분을 내가 즐겨 먹는 '끝내주는 국물'을 통해 섭취하고 있다. 고급 레스토랑이나 호텔에서 식사를 하고 난 뒤 라면 국물을 비롯한 국물이 생각나는 건 어쩌면 염분 혹은 MSG가 그리워서가 아닐까 싶다.


국물이 얼마나 안 좋은 음식이길래?


염분이 가득한 국물은 위암과 고혈압의 원인이 되면서 뇌졸중과 심장병에 걸리게 한다. 국물은 염분뿐만 아니라 지방 함량도 많아 많이 섭취하게 되면 살이 찌고, 당뇨병, 대장암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게다가, 국물을 많이 먹게 되면 양질의 영양소가 남아 있는 건더기를 상대적으로 덜 먹게 되고, 진한 국물 맛 때문에 다른 반찬을 골고루 먹지 않게 되어 영양이 불균형한 식사를 하게 되기 쉬워진다. 국물 자체에 있는 염분과 지방뿐만 아니라 국물을 좋아하는 식습관으로 인해 비만과 영양 불균형의 원인이 된다는 것이다.




하루아침에 국물을 완전히 끊을 수는 없다.

아니, 평생 국물을 먹지 않고 사는 삶은 정말 '국물도 없는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문가들은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국물 음식을 먹는 방법으로 탕보다는 국을 선택하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지 않으며, 국물보다는 건더기를 먹으라고 권장한다.


끝끝내 끊고 싶지 않은 국물, 섭취한 염분을 몸 밖으로 잘 배출하는 것도 방법이다. 칼륨은 나트륨의 체외 배설을 돕는다. 칼륨이 많이 들어가 있는 음식인 콩과 팥, 바나나, 사과, 오렌지, 배, 자두, 살구, 포도, 감, 귤, 밤 등의 과일과 호박, 고구마, 토란, 가지, 옥수수, 양파, 시금치, 부추, 버섯 등의 각종 채소류를 신경 써서 충분히 섭취한다면 나트륨의 배출을 도울 수 있다고 한다.


국물을 멀리 한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우울해지지만, 한 끼에 국물 한 숟가락 덜 먹는 것을 목표로 조금씩 줄여봐겠다.

국물 한 숟가락을 덜면서 내 옆구리살 한 줌을 덜고, 조금 더 가볍고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더불어, 국물에 대한 글을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2가지 사실이 있다.

한 가지는, 동일한 양의 소금이라도 뜨거운 상태에서는 짠맛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국물의 간을 약한 식힌 상태에서 보는 것.

또 한 가지는, 싱겁게 먹는 게 좋다고 해서 국이나 찌개에 물을 부어 먹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것. 음식에 넣는 소금의 양은 그대로 두고 거기에 물을 부어도 나트륨의 절대 섭취 양은 결국 같고, 오히려 혈액에 들어온 물의 양이 더 많아져 혈압이 높아진다고 한다. 짠 음식을 실컷 먹고 물을 마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어령 선생님의 칼럼 '국물 문화의 포스트 모던적 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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