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먹는 라면이 가장 맛있나요?
만약에 라면이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김치를 먹을까
'만약에 김치가 없었더라면 무슨 맛으로 밥을 먹을까'
1985년에 가수 정광태 님이 부른 '김치 주제가'의 한 소절로 30대 이상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이 다 알고 있을만한 가사다. 어떤 산해진미에도 김치가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며, 김치 없이는 살 수 없을 정도로 맛있는 김치를 노래했다.
나는 감히 그런 김치의 맛을 더하게 하는 것이 '라면'이라고 말하고 싶다.
1,000원짜리 한 장 가지고 동네 슈퍼에 가면 웬만한 라면 한 봉지는 충분히 살 수 있을 정도로 손쉽게 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불과 냄비만 있으면 누구나 끓여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뽀글이라고 불리는 라면 요리법(?)엔 심지어 냄비도 필요 없다)
뉴욕타임즈에서는 인스턴트 라면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기도 했다.
인스턴트 라면을 끓일 물만 있으면 신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사람에게 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쳐주면 평생 먹을 수 있다지만, 인스턴트 라면을 주면 그 무엇도 가르쳐줄 필요 없이 평생 먹을 수 있다.
라면 종주국은 대한민국?
세계인스턴트라면협회(WINA, World Instant Noodle Association)의 통계자료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전 세계에 약 1001억 개의 라면이 판매되었다고 한다. 가장 많이 인스턴트 라면을 소비하는 나라는 역시 중국이다. 그 뒤로 인도네시아, 일본, 인도가 각각 2위, 3위, 4위를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베트남, 미국, 필리핀 다음으로 겨우 8위에 머무르고 있지만, 인당 인스턴트 라면 소비양은 연간 73.7개로 1위를 기록했다. 인당 약 5일에 한 번씩 라면을 먹는 셈이다.
라면은 국내 소비량도 많지만, 2017년 한국 라면 수출 규모는 무려 3억 81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한다. 주로, 농심 '신라면'과 삼양식품의 '불닭볶음면'이 인스턴트 라면 수출 시장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신라면은 2017년 한국 식품업계 최초로 미국 월마트 전점에 입점해 글로벌 브랜드로서 자리매김했다.
인스턴트 라면의 인당 소비량, 수출 규모로 봐서는 우리나라가 라면 종주국이라 해도 이상할 것이 없지만, 인스턴트 라면의 종주국은 따로 있다. 바로 일본이다. 인스턴트 라면이 아닌 생라면(?)은 중국의 라미엔(拉面)이 일본으로 전해져서 라멘으로, 그리고 우리나라로 넘어와 비로소 '라면'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인스턴트 라면은 언제 생겨난 것일까?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8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한 이후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을 때 '안도 모모후쿠'라는 일본인이 개발했다. 안도 모모후쿠는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던 대만에서 태어나 일찍이 부모님을 여의고 배고픔의 고통을 고스란히 경험했던 터라,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비즈니스가 아닌 ‘어떻게 하면 인류가 배고픔을 극복할까?’라는 생각으로 인스턴트 라면을 개발했다. 그 해 세계 최초의 인스턴트 라면 ‘닛싱(日淸) 치킨 라멘’을 '끓는 물에 2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판매를 시작했다.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의 경영 철학>
* 식족세평(食足世平) : 먹는 것에 관계하는 일은 세상을 행복하게 하는 성직(聖職)이다.
먹는 것이 풍족하게 될 때야말로 세상은 평화롭게 된다
* 식창위세(食創爲世) : 세상을 위해 먹는 것을 만든다
그러나, 안도 모모후쿠의 닛싱 치킨 라멘은 시일이 지나면 쉽게 변질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이에, 1960년에 묘조식품(明星食品)이 인스턴트 라면 식품 개발에 합세하여 마침내 1961년에 현재의 라면과 같은 형태인 분말 스프를 첨가한 라면을 첫 생산했다. 우리나라 1호 라면인 삼양 라면은 1963년에 이 묘조식품의 기술과 한국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개발된 것이다.
끓여 먹고
비벼먹고
그냥 먹고
현재는 전 세계에서 즐겨먹는 인스턴트 라면이지만, 라면이 처음 개발된 시절 우리나라는 곡물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던 터라 인스턴트 라면은 듣보잡일 뿐이었다. 심지어 라면의 면을 섬유의 한 종류로 오해하기도 했다고 한다. 게다가, 일본식의 흰 국물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국가적 차원에서 고춧가루 투입 자금 지원과 쌀과 밀을 섞어 먹게 하는 혼분식 장려 정책을 시행하면서 라면 붐이 시작되었고, 한국 고유의 맵고 짠맛이 가미된 '한국식 인스턴트 라면'이 보급화 되었다. 이후 라면은 빙그레, 오뚜기, 롯데공업(농심), 야쿠르트, 조선일보, 동방유량, 럭키LG 등의 기업들이 가세하게 되며 다양한 라면이 개발되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라면의 종류는 무려 220여 개라고 한다. 한국 라면의 시그니쳐인 맵고 짠맛의 빨간 국물의 라면뿐 아니라, 짜장 라면, 사골 라면, 우동 라면, 볶음면, 차게 먹는 라면, 비벼 먹는 라면, 아주 매운 라면, 카레 라면, 다이어트 라면 등 라면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하루에 한 종류씩 먹는다 해도 거의 일 년이 걸릴 만한 종류이다.
개인적으로(이건 정말 개인적인 생각이다) 내가 가장 즐겨 먹고 있으며, 최고라고 생각하는 라면은 너구리 라면이다. 매운맛과 순한 맛 두 가지가 기본인 이 라면은 너구리 고기를 먹어보진 않았지만, 너구리 맛이 이 맛이겠구나... 할 정도로 독특하고 매력적인 맛이다. 몇 년 전 짜장 라면 스프와 섞어 먹는 짜파구리가 인기를 끌며, 이후 볶음 너구리도 새롭게 개발되었다. 너구리 라면 순한 맛 안에 들어있는 너구리 모양의 어묵과 다시마도 먹는 재미를 더하는 요소이다.
라면은 조리할 때 부담 없이 응용이 가능하여 같은 라면으로 다양한 맛과 형태로도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어떤 이들은 라면 본연의 맛을 만끽하기 위해 그대로 먹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계란을 넣어 먹기도 하고, (계란을 푸는 것, 풀지 않는 것 또한 취향에 따라 다르다) 파나 콩나물과 같은 채소를 곁들여 먹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우유, 마요네즈, 카레 등을 넣어 먹기도 한다. 난 개인적으로 라면 본연의 맛을 그대로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
라면 먹고 갈래?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이지만 언제, 어디에서,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 먹느냐에 따라 다르게 즐길 수 있다. 요즘엔 야외에서도 손쉽게 봉지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는 즉석라면 조리기도 보급화 되어있을 정도로 라면을 즐길 수 있는 장소도 다양해졌다.
워낙 라면을 좋아해서 자주 라면을 먹는 편이지만, 유독 맛있게 라면을 먹었던, 잊을 수 없는 인생 라면을 먹는 순간들이 있다. 매 순간마다 내가 먹는 라면은 같은 라면, 평범한 라면이지만 그때가 언제인지, 어디인지, 누구와 함께하는 라면인지에 따라 인생 라면을 먹는 순간이 되었다.
| 엄마가 안 계실 때 아빠가 끓여주셨던 라면
엄마는 라면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이유로 동생과 내가 라면을 먹는 것을 반기지 않으셨다. 라면을 먹고 싶을 때면 엄마를 졸라서 먹거나, 엄마가 계시지 않을 때 끓여먹곤 했다. 하루는 엄마가 외출을 하시고, 아빠와 동생과 나만 집에 있을 때였다. 평소에 요리를 잘 해주시던 아빠였지만, 그 날 아빤 라면을 끓여주셨다. 어찌나 맛있었는지... 합법적인 일탈(?)을 만끽했던 순간이었다.
| 고3 때 야자시간 끝나고 독서실에서 먹었던 라면
학창 시절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 않았지만, 고3 때는 야자도 하고, 야자 끝나고 독서실도 다니며 나름 열심히 했다. 9시에 야자가 끝나고 독서실로 가면 9시 30분 정도 되었는데, 그 시간 독서실 휴게실에서 친구와 함께 EBS 교육방송을 보며 먹었던 그 라면은 정말 꿀맛이었다. 지나고 보니, 라면 먹는 재미로 교육방송을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것을 두고 주객전도(主客顚倒)라고 하나보다. 요즘에도 교복을 입고, 무거운 가방을 멘 학생들이 밤늦은 시간 편의점에서 삼삼오오 모여 컵라면을 먹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짠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라면 한 젓가락, 라면 국물 한 모금에 이 시간이 지나면 느끼지 못할 추억 하나를 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겨울 산 정상에서 먹었던 라면
인생 최고의 라면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맛있게 먹었던 라면이다. 약 7년 전, 1월 말 눈 내린 도봉산 정상에서 먹었던 라면은 정말 최고였다. 배낭 속에 끓인 물을 넣은 보온병, 컵라면 한 개, 믹스커피 한 봉지를 넣어 산을 올랐다. 앙상한 나무, 곳곳에 쌓여있는 눈, 꽁꽁 언 계속 물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겨울산의 공기는 차가웠지만, 매우 맑고 상쾌했다. 한걸음 한걸음 오르다 보니 정상에 다다랐고, 준비해 온 '대망의 컵라면'을 흡입했다. 이런 것을 두고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이라고 하나보다. 힘들게 겨울산을 올라 맑은 공기 속에서 멋진 경치와 함께 먹는 라면은 인생 라면이 아닐 수 없다. 라면 먹으러 겨울산에 꼭 다시 갈 예정이다. 물론 라면이 없는 겨울산도 너무 좋다.
| 해외여행 중 먹었던 라면
해외여행 중 맵고 짜고, MSG의 맛이 그리울 때 먹는 라면, 그리고 라면 국물은 정말 가뭄에 단비와 같은 존재다. 해외여행 중 먹었던 라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라면은 중국 기차 여행 중 기차에서 먹던 라면이었다. 장장 12시간을 달리는 기차 안 3층 침대 위에서 먹었던 라면을 떠올리면 그 맛도 느껴지지만, 그 당시 기분과 기차 안 분위기, 특유의 중국 냄새, 중국인들의 목소리들이 떠오른다.
그 밖에도 회사 식당에서 아침에 먹는 라면은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하루를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또한, MT 때 엄청나게 큰 냄비에 5개 이상 끓여서 머리를 맞대고, 젓가락을 담가서 허겁지겁 먹던 라면은 추억으로 남아 있으며, 남편과 부산에 가면 꼭 가는 식당에서 만들어주는 해물 라면에서는 남편의 사랑을 느끼게 된다.(ㅋㅋ)
이처럼 즐겨먹는 1000원짜리 인스턴트 라면에는 개발될 당시 인류의 배고픔을 해결하고자 하는 간절함이 담겨 있고, 유년 시절의 즐거움이 있고, 학창 시절의 추억 한 조각이 있다. 또한, 라면 한 젓가락에 쉼이 있고, 힐링이 있으며, 라면 국물 한 모금에 향수(鄕愁)가 있다. 또한 재미도 있다.
라면은 '인스턴트'이지만, 그에 얽힌 스토리와 감정은 '영원'하다.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라면.
라면 맛있게 먹는 비법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