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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Apr 29. 2018

아름다울 未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

첫사랑이 아름다운 이유는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유하고 싶고, 이루어내고 싶고, 완성하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일 것이다. 그런데 삶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소유하지 못해도, 이루지 못해도, 미완성일 때의 설렘과 기쁨이 있다.


이루어지지 못했던 첫사랑의 기억

내꺼인듯 내꺼아닌 내꺼같은 너와 썸 탔던 그 시절

당신과 결혼을 준비하던 기간

지름신이 강림했고, 지르기 직전, 지르고 나서 택배 아저씨를 기다리는 순간

여행 가기 전 공항에서

드라마 다음 편을 손꼽아 기다릴 때

그대를 만나는 곳 100m 전

로또 구매 후 당첨자 발표가 나기 전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 소소한 행복들을 느끼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미완의 기억, 무언가를 손에 얻기 직전의 순간들이다.


역사 속에도 미완의 것이지만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고, 전 세계인들이 찾는 것들이 많이 있다.


대표적인 사례는 5월 말 계획되어 있는 스페인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된 미완의 건축물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있는 가톨릭 대성전으로 미완의 천재 건축가로 불리는 안토니오 가우디의 설계에 따라 1882년에 착공되어 135년째 건축 중이다. 1926년 가우디가 세상을 떠나고 지금까지 건축이 이어지고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은 미완의 건축물이지만, 관광명소로 전 세계인들의 발걸음을 향하게 하고 있다.  

이 성당은 천천히 자라나지만, 오랫동안 살아남을 운명을 지닌 모든 것은 그래 왔다.
- 안토니오 가우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 또한 제목 그대로 미완으로 마무리된 곡이다. 교향곡은 총 4개의 악장을 갖추어야 하지만, 이 곡은 2개의 악장 밖에 완성되지 못한 채 마무리되었다. 미완성임에도 불구하고, 낭만파 교향곡 중 걸작으로 꼽히며 슈베르트의 교향곡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고 있다.

아무것도 끝난 것은 없다. 세상의 모든 것은 미완성으로 남아있다. 가장 위대한 그림은 아직 그려지지 않았고, 가장 위대한 희곡은 아직 쓰이지 않았으며, 가장 위대한 시는 아직 읊어지지 않았다.
- 링컨 스테펀스 <자치를 위한 투쟁>


그렇다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가 무엇일까?

| 여지(餘地)의 아름다움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여지'가 남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여지는 빈 공간이며, 여백이다. 또한, 여지가 남아있다는 것은 가능성이 있다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다. 가능성은 모든 것이 열려있다는 것이며, 열려있는 빈 공간에 무엇이든 채워 넣을 수 있다.

로또를 사려면 월요일에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실제로 로또에 당첨될 확률은 매우 낮지만, 월요일에 로또를 구매하여 토요일 당첨자를 발표하는 순간까지 로또에 당첨되었을 때를 상상하는 기대감이 큰 심리적 행복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로또를 구매하여 지갑에 곱게 접어 넣을 때부터 당첨자 발표를 하는 토요일 저녁까지의 ‘빈 공간’에 우리는 기대감을 채운다.
썸을 타는 순간 또한 내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너와 나 사이에 있는 '빈 공간'에 설렘을 채운다.
여행길에 오르기 위해 공항에 도착한 그 순간에도 현실을 떠나와 여행지에 닿기 전의 ‘빈 공간’에 홀가분함과 기대감을 채운다.


이처럼 우리는 이루어지지 않은 미완의 상태, 여지라는 빈 공간에 우리는 기대감, 설렘, 희망을 채울 수 있다.
 
또한, 빈 공간은 일종의 결핍이다. 모든 위대한 것은 결핍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다. 부족함이 더 나은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상상력이다
- 나폴레옹


| 현실의 가혹함
어떤 것이 실현되기 이전에는 이상이 현실을 지배한다. 그러나, 이상이 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상은 현실의 틀에 맞추어진다. 이상은 무형의 것이다. 무형의 것이기 때문에 어떤 모양으로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여러 가지 환경적 요소들로 인해 틀이 짜여 있다. 현실이라는 틀은 내가 원하는 것, 우리가 바라는 이상을 제한한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가장 큰 현실의 가혹함은 '결혼'이다. 연애할 때는 서로만 바라볼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한 사람만 앞에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순간 마주하게 되는 것은 현실이다. 먹고살기 위해 돈벌이를 해야 하며, 두 사람 외에도 서로의 가족을 챙겨야 하며, 서로의 다른 삶의 방식을 받아들여야 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와 현실이라는 틀 속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언제까지나 핑크빛일 수는 없다.

여행을 갈망하는 이유 또한 현실에서 떠날 수 있기 때문일 것이고, 지름신이 이끄는 대로 원하는 것을 질러서 손에 얻게 되었을 때 카드값이라는 현실은 우리를 바짝 뒤쫓는다.


이처럼, 현실은 생각보다 ‘현실적’이고, 때론 가혹하며, 이루어지지 않은 '비현실'은 우리에게 아름다운 순간으로 다가오게 된다.

| 심리학 이론, 자이가르닉 효과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다운 이유를 심리학 이론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자이가르닉 효과는 마치지 못한 일을 마음속에서 쉽게 지우지 못하는 현상이다. 참가자를 두 개의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은 과제를 수행할 때 아무런 방해를 하지 않아 과제를 무사히 마무리할 수 있도록 하고, 다른 한 집단은 과제 도중에 방해를 해서 과제를 지속하지 못하게 하거나 다른 과제로 넘어가게 했다. 실험 결과, 방해를 받은 집단은 방해를 받지 않은 집단보다 과제를 2배 이상 기억해냈다. 사람은 무엇이든 완결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일이 완결되지 않으면 긴장이나 불안한 마음이 지속되어 잔상이 오래 남는다고 한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을 쉽게 잊지 못하는 것을 자이가르닉 효과의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완결하지 못한 애틋한 사랑의 감정이 가슴 속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앓음다울 未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 꽃, 김춘수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답지만, 이루어지지 않으면 앓게 된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아름답다 해도,

사랑의 결실을 맺었을 때의 황홀함
여행지에 도착해서 경험하는 즐거움
가지고 싶던 물건을 손에 얻었을 때의 만족감
원하는 것을 이루었을 때의 성취감

을 만끽하는 것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있는 큰 기쁨이며 행복이다.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름답지만, 아프다.

설렘과 기대와 기다림이 지속되면 오히려 앓게 된다.


사실, 우리네 인생은 대부분 未完의 것이다.

또한, 대부분이 未生으로 살고 있다.

사랑을 그리며 앓고.
진로를 고민하며 앓고,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갈망하며 앓고 있는 아름답고, 또 앓음다운 미생들을 응원한다.

* 처음으로 캘리그라피를 곁들여 글을 써본다. 글솜씨는 물론이고 캘리그라피 실력 또한 未完에도 한참 모자란 未完이다. ‘아름다울 美’를 꿈꾸며 ‘未의 아름다움’을 누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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