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으로 삶에 재미와 의미를 더하라 - <기획자의 습관>, 최장순
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난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네모난 문을 열고 네모난 테이블에 앉아
네모난 조간신문 본 뒤
네모난 책가방에 네모난 책들을 넣고
네모난 버스를 타고 네모난 건물 지나
네모난 학교에 들어서면
또 네모난 교실 네모난 칠판과 책상들
네모난 오디오 네모난 컴퓨터 TV
네모난 달력에 그려진 똑같은 하루를
의식도 못한 채로 그냥 숨만 쉬고 있는걸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네모난 것들 뿐인데...
1996년 유영석 님이 작사 작곡한 '네모의 꿈'이라는 노래 가사다.
그렇다. 주위를 둘러보면 대부분이 네모다. 글의 주제로 삼은 <기획자의 습관>이라는 책도 네모이고, 지금 보고 있는 아이패드 화면도 네모이고, 두드리고 있는 자판도 네모다. 아이패드를 올려놓은 테이블도 네모이고, 지금 내가 입에 넣고 있는 웨하스도 네모 모양이다.
굳이 인지하지 못하던 것이었지만, 이 노래를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정말 온통 네모난 것들이다.
개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삶의 방식이 있다. 어떤 이들은 저마다의 밥벌이, 삶을 즐기는 방식, 함께 생활하는 공동체 등 모두 다른 상황과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라는 큰 틀은 같다. 진학에 대한 고민이 해결되면, 취업 전쟁터로 나가야 하고, 취업이 해결되면 출근, 쏟아지는 업무, 상사의 무리한 업무 지시, 클라이언트의 끝없는 요구, 매달 스쳐 지나가는 월급, 가계 대출의 늪, 계속되는 커리어에 대한 고민 등이 발목을 잡는다. 일평생을 열심히 일하고 은퇴하려고 보니, 100세 시대라고 한다. 은퇴 후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뭘 하고 살아야 할지도 고민이다. 이처럼 ‘반복되는 일상’은 모두에게 주어진 공통적인 조건이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Edge OF Tomorrow)란, (넘어가기 어려운) 내일로 가는 경계
가까운 미래, 미믹이라 불리는 외계 종족의 침략으로 인류는 멸망 위기를 맞는다. 빌 케이지(톰크루즈)는 자살 작전이나 다름없는 작전에 훈련이나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로 배정되고, 전투에 참여하자마자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불가능한 일이 일어난다. 그가 그 끔찍한 날이 시작된 시간에 다시 깨어나 다시 전투에 참여하게 되고 다시 죽었다가 또다시 살아나는 것. 외계인과의 접촉으로 같은 시간대를 반복해서 겪게 되는 타임 루프에 갇히게 된 것이다.
(출처 : DAUM 엣지 오브 투모로우 영화 줄거리)
작가는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를 사례로 들어 영화 속 동일한 사태가 반복되는 상황을 우리의 일상에 빗대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주어진 공통적인 조건 하에서 꾸역꾸역 버티며 사는 삶을 살 것인지, 더 나은 내일로 나아가려 노력할 것인지에 대한 선택은 각자의 몫이며 능력이라고 강조하며, 기획이라는 것에 대한 화두를 던진다.
누구나 기획자
기획이라고 하면 기획자, 마케터만의 전유물이며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기획은 기획서를 쓰는 것도 아니며, 기획자만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구나 기획자가 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의 일정을 확인하고, 오늘 날씨와 상황에 맞는 의상을 선택한다. 그리고, 다이어트를 위해 아침에 간단히 사과 한쪽을 먹을 것인지, 아니면 어제 과음으로 불편한 속을 달래기 위해 꿀물을 한잔 할 것인지, 속이 풀리는 국밥을 먹을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한다. 또한, 매일 지하철을 타고 출근을 하지만, 오늘은 차 안에서 오후에 있을 PT 연습을 하기 위해 조금 밀리더라도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것을 선택하기도 한다. 이처럼 아침에 일어난지 채 한 시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동안에도 우리는 '기획'이란 것을 하게 된다.
이처럼 “어떻게 하면 되지?”라는 생각이 곧 기획이다. 다른 말로 얻고자 하는 것, 원하는 결과를 먼저 정하고(되지), 그것을 효과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방법을 찾는 것(어떻게 하면)이다. 작가는 "기획은 특정 대상에 대해, 특정 목적을 정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가장 적합한 행동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상에 엣지를 더하는 습관
기획의 시작은 ‘일상의 의미를 파헤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이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소확행 또한 우리가 누려왔던 소소한 행동들에 대해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를 발견하는 것이다. 글의 서두에서 예시로 든 '네모의 꿈'이란 노래 가사 또한 생활 속에서 접하는 누구나 접하는 소재들을 재해석했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다 네모난 것들 뿐이지만, 정작 우리가 사는 지구는 둥글며 어른들은 세상은 둥글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네모의 '꿈'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
기획은 특정 프로젝트를 위한 공식이 아니라, 일상을 관통하는 습관이다.
그리고 습관의 끊임없는 ‘진화’만이 기획을 기획답게 만들어준다.
- <기획자의 습관> 중에서
기획이라고 하는 것은 갑자기 불꽃이 튀기며 떠오르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아니다. 일상의 의미를 파헤치고,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려는 노력은 '일상을 관통하는 습관'을 통해서 가능하다. 쳇바퀴 도는 듯 동일한 것이 반복되는 삶에서 '차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소 일정한 방식으로 훈련된 습관이 먼저 필요한 것이다.
작가는 누구에게나 주어진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습관을 관찰, 정리, 공부, 생각이라는 4개의 카테고리 하에 50가지를 제시한다.
일상의 모든 부분에 관심을 갖고 관찰하며 변화의 지점들을 파악하고, 점차 관찰의 범위를 넓혀간다. 거리의 소음, 카페에서 들리는 옆자리의 대화 내용, SNS에 올라온 사진들과 해시태그, 미스터리 쇼핑 등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파악한 뒤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반영할 정보들을 취사선택한다.
관찰한 정보는 중요도와 맥락과 정보가 가리키는 방향에 따라 특정한 관점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새로운 감각, 새로운 현상, 새로운 말할 거리를 위해 계속해서 공부한다. 인사이트는 어디에서 발견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작가는 공부의 방법으로 독서, 대화, 글쓰기, 외국어를 강조했다. 공부는 고통스럽고, 깊에 파고드는 인내를 요구하지만 공부를 통한 깨달음의 달콤함에 중독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관찰, 기록, 공부의 습관을 통해 보다 풍부하고 종합적인 관점을 수립하기 위한 생각 습관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한 습관 또한 저마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살고 있는 상황도 다르므로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없으며 그저 참고하는 차원에서 머무르면 된다. 다만, 자신만의 습관을 ‘일상화’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작가는 강조한다. 엣지 오브 투모로우의 주인공이 계속해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어갔던 것처럼. 그리고 일상화된 습관을 자기 만의 방법으로 끊임없이 ‘진화’시킬 때, 삶에 엣지(edge)가 더해질 것이다.
잔잔한 수면에 돌을 던질 때 동그라미를 그리며 이루는 물무늬를 물둘레라고 한다.
쳇바퀴 도는 듯하게 반복되는 일상에 변화가 필요한가?
숨이 막힐 듯한 직장생활 속에서 탈출구가 필요한가?
무미건조한 삶에 의미와 재미를 더하고 싶은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은가?
잔잔하게 흘러가는 삶에 ‘방향을 바꾸는 습관(habit of swerving)’이라는 돌을 던져서 내 삶의 물둘레라는 엣지를 더하는 기획자가 되어보자.
내가 던질 '방향을 바꾸는 습관'이라는 돌은 무엇일까?
영원할지도 모를 ‘동일한’ 조건 속에 사는 우리들. 그 안에서 ‘내일의 가장자리’에 머무르는 대신, 조금씩 꾸준히 생활에 틈새를 낼 수 있는 ‘차이’의 습관을 마련할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내일’을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동일한 ‘내일’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내일’을 기획하기 위한 작은 차이의 연습은 지금 우리 생활을 다른 무언가로 바꿔준다. 이 작은 ‘차이의 습관’을 통해 우리는 생활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 <기획자의 습관> 중에서
이 도서의 또 다른 매력은 언어학을 전공한 작가의 단어 선택, 언어학, 철학 등 인문학 분야의 학술 담론이 겸비되어 있다는 것이다. 작가는 단순히 자신의 습관을 나열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습관을 인문학적 관점을 기반으로 설명한 후 개인의 경험을 담담하게 풀어냈다.
이 책을 다시 한번 더 읽을 계획이다. 다시 읽을 땐 피라미 기획자로서 일에 적용해볼 수 있는 부분들을 찾고, 그를 뒷받침하는 인문학적 관점 또한 놓치지 않고 챙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