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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Mar 03. 2019

일하는 꿈을 꿨습니다.

휴가지에서도, 일요일에도

저는 아침잠이 유독 많습니다. 그냥 정말 아침잠이 많은 건지, 수면 습관이 좋지 않은 건지, 절대적인 수면 시간이 적은 건지, 아무튼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난 기억이 한 번도 없을 정도로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이 듭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학창 시절에도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는 일은 작은 전쟁이었습니다. 엄마의 목소리 알람이 없었다면, 제시간에 일어나지 못해서 숱하게 많은 날을 학교에 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마다 엄마가 고생이 참 많으셨습니다. 지금은 5분 단위로 3-4개의 알람을 맞춰놓고는 한 번에 일어나지 않아 덩달아 아침잠을 설치게 되는 남편이 고생이 많다고 합니다.(ㅋㅋ)


잠깐만요, 이것만 풀고요.


고등학생 시절, 매일 아침 나를 깨우는 엄마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 중 하나입니다. 게다가 온갖 짜증이 섞여있는 한 마디였습니다. "WHAT? 얘가 뭐라는 거야"라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한 마디입니다. 


꿈에서 수학 문제를 푸는데 잘 풀리지 않다가 답이 딱 나오려고 하는 순간, 항상 엄마가 일어나라고 깨웁니다. 어찌나 아깝고 분하던지요. 지금 생각해보면 참 재미있는 에피소드이지만, 그 당시에는 그렇게 짜증이 났습니다. 그리고 동일한 꿈을 주 2-3회 이상 자주 꾸었습니다. 


저는 공부를 그리 열심히 하지도 않았고, 잘하지도 못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게다가 수학은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였고요. 그렇다고 수포자가 되기는 싫었고, 덩달아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도 커져만 갔습니다. 시험을 준비할 때면 수학 교과서와 수학의 정석을 그냥 외워버렸고, 수능 문제도 패턴들을 암기하면서 형편없는 점수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 그 당시 수학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났었고, 그게 꿈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나 봅니다. 중요한 사실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제 인생 사전에서 수학이라는 단어를 지워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최근까지도 수학 시험을 앞두었는데 공부를 하지 않아서 어쩔 줄 몰라하는 꿈을 종종 꿉니다. 물론, 꿈에서 깨고 나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다른 어떤 곳에서도 느낄 수 없는 홀가분함과 해방감을 느낍니다.




지난주 삼일절 연휴를 활용해서 좋아하는 중국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이번에 다녀온 심천은 유명한 관광지가 있는 곳도 아니었고, 그곳에서 특별히 무엇을 하겠다는 계획을 세우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심천에 살고 있는 남편의 친구를 만나고, 중국 문화와 한창 발전하고 있는 심천의 모습을 가볍게 경험하고자 했습니다. 목요일 하루 휴가를 사용해서 3박 4일 일정으로 출발하는 날 새벽에 부랴부랴 짐을 싸서 두꺼운 수필집 한 권을 들고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직장인의 신분으로 휴가를 내고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기업의 이윤은 직장인의 시간에서 창출되고, 다르게 말하면 직장인의 근무시간은 내 것이 아닌 급여를 지급하는 사업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직장인들이 휴가를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권리이지만, 업무 일정과 근무 상황을 고려해야 합니다.


저 또한, 3월 초 주말과 붙여서 사용할 수 있는 연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항공 티켓을 일단 질렀지만, 업무 특성상 일정의 변동 사항들이 많은 편이라 출발하기 3-4일 전까지도 계획대로 여행을 갈 수 있을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산적해 있는 일들을 뒤로하고 일단 출발했습니다. 3월부터는 본격적으로 바빠질 테니 푸욱 쉬고 오라는 상사님의 한 마디와 함께.


하루의 잔상이 곧 꿈이 된다.


정신분석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로이트는 꿈은 '경험한 것이 기억으로 옮겨지는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꿈을 꾸는 동안 뇌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가설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꿈을 꾸는 동안 기억이 정리된다는 바로 이 가설입니다. 이 가설에 따르면 어떤 새로운 경험을 했다면, 그날 밤 꿈에서 그 경험을 생생하게 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입니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에서 보았던 무서운 장면들이 꿈에서 재현된다거나 유사한 무서운 꿈을 꾸게 되는 것이 같은 이치인가 봅니다. 


그렇다면, 저는 생각보다 더 발전됐고 깨끗하게 정렬되어있던 심천이라는 도시의 장면들, 또는 그동안 말로만 듣다가 처음으로 만나서 함께 시간을 보냈던 남편의 우크라이나인 친구 꿈을 꾸었어야 했지만, 일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루 밤은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가며 업무를 처리하는 꿈을 꾸었고, 하루는 클라이언트를 만나 미팅하면서 업무 진행 사항을 점검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심지어 오늘 오후 집에 도착해서 소파에서 깜빡 잠이 들었는데 그때는 클라이언트로부터 해야 하지만 아직 하지 않은 일, 실제로 내일 출근하면 빡빡하게 쳐내야 할 업무들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질책을 듣는 꿈을 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여행을 하며 새롭게 받아들이게 된 정보, 느낀 감정보다 한국에 두고 온 업무들이 나를 더욱 크게 지배하고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꿈은 긍정적인 것보다 부정적인 감정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그 이유에서 일까요.


여행 중 원치 않았던 꿈들로 인해 그리 기분 좋게 잠에서 깨지 못했고, 여행을 하면서도 월요일에 사무실에 복귀해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생각을 시원하게 떨쳐버릴 수 없었습니다. 저도 이런 제가 싫습니다.


부정적인 꿈도 유익할 수 있다?


꿈을 설명하는 여러 가설들 중 ‘연속성 가설’이라는 것이 있는데 꿈을 꿀 때 일상에서 있었던 일들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다만, 꿈에서 일어나는 사전 자체는 일상과 크게 다를 것이 없지만, 꿈에서 느끼는 정서는 80% 이상이 부정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꿈을 통해 부정적인 사건들을 반복적으로 접할수록 그 사건이 정서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약해져서 꿈을 계속 꿀수록 고통이 줄어든다고 하더군요. 꿈을 통해 특정 상황에 여러 번 노출됨으로써 뇌가 그 상황에 익숙해지고, 그 상황을 대비하게 되는 것이죠. 이를 이용해 일부러 꿈에서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는 상황을 계속 마주할 수 있도록 하여 증상을 완화시키는 ‘꿈 치료법’도 있다고 합니다.   




끝나지 않았으면 했던 연휴도 어김없이 끝이 났습니다. 6시간 후면 출근 준비를 하고 지옥철에 몸을 싣겠죠. 그리고 월요일 아침 주간 회의와 뒤로 미루어두었던 산적해있는 업무들을 처리하느라 하루가 빠르게 지나갈 것입니다. 여행 중 꾸었던 꿈을 통해 내일, 그리고 이번 주 업무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생각하며 연휴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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