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워라밸 시대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시피 워라밸은 구직자들이 회사를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자신이 일할 회사를 선택할 때 연봉, 고용 안정성, 적정에 맞는 직무보다 워라밸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바라는 워라밸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며 그들의 워라밸은 얼마나 실현되고 있을까요?
워라밸 점수는 100점 만점에 57.7점
그러나,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지난 2018년 10월 직장인 4,000명을 대상으로 업무 방식 실태에 대해 조사한 결과 직장인들은 자신의 워라밸 점수를 57.7점으로 평가했습니다. 워라밸이 낮은 원인을 묻는 질문에는 불필요·모호한 업무(30.0%), 무리한 추진일정 설정(29.5%), 상사의 갑작스러운 지시(7.9%) 등 비과학적 업무 프로세스가 67.4%로 우위를 차지했습니다. 게다가, 90% 가까운 직장인들이 업무 방식 하면 떠오르는 단어로 ‘비효율', '삽질', '노비', '위계질서' 등과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꼽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 조사 결과를 보다가 더욱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업무 방식에 대한 체감도가 직급별로 차이가 확연히 난다는 것입니다. 임원의 69.6%는 ‘업무 합리성’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사원들은 32.8%에 불과해 2배 이상 차이가 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동기부여’의 긍정 답변율은 임원 60.9%, 사원 20.6%로 무려 3배의 차이가 난다고 합니다.
워라밸 시대, 리더들에게 바라는 8가지
워라밸을 실현하지 못하는 원인을 모두 리더들에게 돌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상사의 생각은 무조건 구시대적이고, 소위 말하는 밀레니얼 세대들의 생각이 모두 옳다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업무 방식이 워라밸 실현의 걸림돌이 되고 있으며, 리더가 조직에서 업무 방식을 결정하는 열쇠가 되는 만큼 리더들이 조금만 더 신경을 써주길 바랄 뿐입니다.
또한, 조직 구조가 유연해질수록 누구든지 리더가 될 수 있고, 누구든지 팔로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직급이 낮다고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반대로 직급이 높다고 부담감이나 혹은 반감을 가질 필요도 없습니다.
요즘 젊은 직장인들, 소위 밀레니얼 세대라고 말하는 직원들은 무조건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자신의 삶만 찾으려 한다는 인식이 있어 조직 내 기성세대들은 그들의 모습을 고깝게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무조건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들은 일의 가치와 의미를 중요하게 여길뿐입니다. 이들은 눈에 보이는 보상보다 ‘자신이 성장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관심을 갖고 배려할 때' 만족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조금만 눈에 안 보이면 얘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근무시간에 딴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퇴근 시간 됐다고 할 일도 다 안 해놓고 퇴근하는 것은 아닌지 감시하거나, 의심하지 말아 주세요. 그전에 “우리가 왜 이 일을 해야 하는지”, “이 일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 일이 왜 중요한지"를 충분히 공감시켜주세요. 일에 대한 동기부여가 확실하다면, 일을 잘 해내기 위해서 긴 시간 동안도 일할 수 있고, 업무 외 시간에도 일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이것저것, 하나하나 시키기 이전에 스스로 하게 만들어주시고, 직원들이 맡은 바 책임을 다 할 것이라고 믿어주세요. 그게 리더들의 첫 번째 역할입니다.
자발적이고, 지속적이고, 능동적이고,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행동을 이끌고 즐거움과 만족을 주는 내재적 동기를 유발하는 핵심 요소가 자율성이다. 만약 이런 행동들을 원한다면 자율성 수준을 올려야 한다. 외부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실력을 온전히 내기 위해서 자율성은 필수다.
- '성과와 만족도는 자율성과 비례한다 통제권 허용을 통해 직원을 성숙시켜라' 동아비즈니스리뷰 195호(2016년 2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하면서 ‘컴퓨터 강제 OFF제’와 같은 방법으로 강제적으로 근무 시간만 통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불편하고, 근무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일찍 퇴근하고 싶은 날도 있지만, 더 일하고 싶은 날도 있는데 강제적으로 컴퓨터를 끄고 퇴근하라고 하거나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체크당하는 것이 그리 기분이 좋지 않다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합니다.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서가 아니라 억지로 일을 시킨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 때문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스스로 한 선택에 더욱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합니다. 물론 조직이 내가 원하는 대로만 일할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구성원들에게 자율성을 줘보시기를 요청드립니다. 근무시간과 장소를 선택할 자유, 원할 때 휴가를 사용할 자유 말입니다.
개방적이고 투명한 의사소통을 통해 자유가 주어진다면, 구성원들의 만족도와 생산성이 높아져서 기존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2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97.6%의 직장인이 상사나 후배의 눈치를 살폈던 적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가장 눈치를 많이 보는 순간으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퇴근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을 때'를 꼽았고, ‘연차나 휴가를 써야 할 때'를 그다음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누구의 눈치를 가장 많이 살피는가’라는 질문에는 59.6%가 ‘팀장’이라고 답했습니다.
장시간 근무 관행을 바꾸고, 업무 효율과 생산성을 높이자고 강조하는 이때에, 눈치 주고 눈치 보는 것은 명백하게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행동입니다.
리더님들은 정시 퇴근하고, 휴가 결재를 올리는 구성원들을 쿨하게 보내주세요.
가끔 회식을 하다 보면 이게 누구를 위한 회식인가 싶을 때가 많습니다. 실제로 직장인 10명 중 4명은 현재 직장의 회식문화에 대해 만족스러워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리더들은 구성원들을 사기를 높이기 위해, 잘한 일은 칭찬하고, 부족한 일에 대해서는 격려하기 위해 ‘회식'이라는 자리를 만듭니다. 그러나 회식을 받아들이는 구성원들의 입장은 회식은 업무 시간의 연장일 뿐입니다.
미리 계획되어 있던 회식은 그나마 괜찮습니다. 퇴근 30분 전 구성원들의 자리 근처를 서성이며 “오늘 저녁에 약속 있니?”, “저녁 먹고 갈래?”, “회사 근처에 새로 생긴 식당에 삼겹살이 그렇게 맛있다던데"라는 멘트를 날리며 암묵적으로 회식을 강요하는 상사들이 조직 내에 꼭 한 사람씩은 있을 것입니다.
회식이 불필요한 자리는 아닙니다. 다만, 회식은 함께 즐거움을 느끼며 상호 친밀감을 높일 수 있는 소통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회식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주시고, 회식 날짜는 최소한 일주일 전에는 공유해주세요. 회식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여 구성원들이 원하는 회식 방법을 선택하는 것도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기억해 주세요.
본인이 즐겁다고 직원들도 즐거운 것은 아닙니다.
유능한 상사의 조건 중 하나는 구성원들에게 업무지시를 할 때 구체적인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꼽고 싶습니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업무 방식 실태 조사'에서 직장인들은 업무방식 종합점수를 100점 만점에 45점으로 평가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업무 방향성(업무의 목적과 전략이 분명하다)과 지시 명확성(업무지시 시 배경과 내용을 명확히 설명한다)에 100점 만점 중 각각 30점, 39점이라는 낙제점수를 주었습니다.
불분명한 업무 지시는 보고서 수정을 반복하거나 업무의 범위가 불필요하게 확대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실제로, 직장인들 10명 중 6명이 업무지시를 한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한 별도의 회의를 해보았다고 응답하기도 했습니다.
업무지시를 할 때 이렇게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구체적인 방향과 전체적인 업무의 흐름을 제시해주세요.
대충 설명하고,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라는 말은 삼가 주세요. 무슨 말인지 몰라요.
업무 지시하기 전에 먼저 고민해보고 지시해주세요. 자신도 모르는 것을 구성원들이 알기를 바라는건 반칙이에요.
구체적인 기대 결과의 범위를 미리 지정해주세요.
해당 업무의 범위 내에서는 담당자의 업무 권한을 인정해 주세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지" “아니오. 모릅니다" 지시할 때 가능한 한 정확하게 설명해줍시다. 지시하는 사람이 5분 더 쓰면, 실행하는 사람은 하루 이상의 시간을 절약할 수 있습니다. 회사에서 직급이 높을수록 시간이 비싸진다고 하지요. 그렇다고 해서 사원의 시간을 흥청망청 써도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 <일 잘하는 사람은 단순하게 합니다>, 박소연
그리고, 업무지시를 받는 구성원들도 업무지시를 받고 잘 모르겠으면 물어보셔도 됩니다.
대한민국의 장시간 근로문화에 크게 기여하는 것이 회의와 과도한 보고문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근무시간 중 회의와 보고가 차지하는 비율이 40%가 넘고, 이로 인해 비생산적으로 보내는 시간이 31%에 달한다고 합니다.
'회의'에 회의주의자
보고 싶지 않은 '보고'
많은 기업들이 불필요한 회의와 보고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스탠딩 회의를 도입하거나, 모래시계를 옆에 두고 시간을 정해서 회의를 진행합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실시간 소통을 위한 화상 회의 시스템을 구축하기도 합니다. 또한, 원페이지 보고, 형식보다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 ppt 사용 금지 등의 조치를 취하는 기업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 글로벌 기업의 임원에게 들은 내용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해당 조직은 메일을 쓰거나 보고서를 쓸 때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다고 합니다. 보고서를 가다듬고, 예쁘게 꾸미는 시간 조차 절약해서 정말 중요한 일들에 집중하기 위함이죠. 설사 구성원들이 보고서에 주저리주저리, 중구난방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써도 핵심을 파악해내는 것이 리더의 역량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감동받았습니다.
또한, 회의 내용을 사전에 공유하는 것은 물론 필요에 따라 회의록 작성도 리더의 몫이 될 수 있습니다. 리더야말로 업무에 대해 가장 많이 알고 있어야 하고, 업무의 우선순위를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회의록이 의사소통의 창구이자 업무지시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이 단락의 글을 쓰다 보니 리더에게 정말 필요한 역량 중 하나가 글쓰기와 독해능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제 더 이상 늦게까지 사무실에 남아서 일한다고 우수한 직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닙니다.
근무의 형태가 다양해지고 근무 방식 또한 유연해지고 있는 시대에 성과 관리는 더욱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유연근무제도를 사용하는 구성원은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낮다는 편견으로 낮은 평가를 받고 연봉 협상이나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작년 6월 한국인터넷기업협회에서 인터넷 기업의 일생활 균형을 주제로 진행한 전문가 초청 토론회에서 배달 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의 박세헌 실장이 한 발언이 인상적입니다.
우리 회사는 주 4.5일, 35시간 근무제를 도입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면 ‘워라밸’을 훌륭하게 지키는 기업으로 보이지만 우리는 워라밸을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가장 성과를 중시하는 회사입니다. 회사와 본인의 삶을 지키려는 이들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그들을 좋게 평가하며 연봉을 더 주고 다수가 신뢰하게 하면 회사가 일하는 방식이 저절로 바뀝니다. 경영진의 의지가 중요합니다.
다들 어서 들어가, 난 야근이야
2년 전 ‘일포하라'로 유명세를 탔던 한 제품 광고의 대사입니다. 부장님이 직원들에게 정시 퇴근을 독려하면서 본인은 야근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퇴근하라는 말에 신나게 퇴근 준비를 하던 직원들은 야근한다는 부장님의 말에 시무룩하게 다시 자리를 찾아서 앉는 장면이 기억에 남습니다.
현재 사무실에서 제 자리는 회의실 앞에 있어서 가끔씩 회의실에서 하는 이야기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유독 회의를 길게 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여느 때처럼 길고 긴 회의가 이어지는 중에 부장님의 이 한마디가 회의실 밖으로 새어 나오더군요.
"나 없다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얘기들 해봐"
저는 옆에 있는 동료와 ‘있는데 어떻게 없다고 생각해’라고 얘기하며 킥킥대고 웃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리자의 리더십은 건강한 조직문화의 핵심이며 리더의 작은 변화가 조직의 일하는 방법과 일하는 문화 개선의 첫걸음이 됩니다. 크고 거창한 것부터 할 필요 없습니다. 쉽고 작은 것부터 실천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