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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Jun 02. 2019

내가 영어를 못하는 이유

영어 못하는 11년 차 직장인의 작은 깨달음


너는 내 발목을 잡고
나는 내 뒷목을 잡지


없어도 굳이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눈 앞에 나타나더니 결정적인 순간 제 발목을 잡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듣고 싶은 말이 있어도 듣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안타까워지는 순간이 점점 많아집니다. 때론 이 녀석을 잘 알지 못해서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영어.

어느 순간부터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자, 두려운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영어를 배운 시간이 국민학교 시절 그룹과외로 배우기 시작해서 중학교와 고등학교 각 6년을 합하면 10년이 족히 넘는데 저는 왜 영어 한마디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하는 걸까요?


학창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과목이 무엇이냐 묻는 질문에 자신 있게 ‘영어예요'라고 대답할 만큼 영어가 재미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 세뱃돈을 받아 처음으로 했던 일이 교보문고에 가서 롱맨 영영사전을 샀을 정도로 영어공부를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 졸업 이후 영어와 저 사이에 쌓인 담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난 지 벌써 20년이 가까이 되었으니 이제는 까치발을 들어도 담 너머에 있는 영어가 보이지 않습니다. 점프를 해야 겨우 보일까 말까 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제는 그 담을 헐고 싶습니다.


나도 이제 영어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히 들었던 순간은 2015년이었습니다.

업무가 바뀌면서 콘퍼런스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업무를 하게 되었고, 첫 번째로 참여했던 콘퍼런스에 미국인 연사를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행사 당일 연사가 행사장에 도착했는데 주위엔 아무도 없었습니다. 연사를 전담으로 모시는 통역사도 화장실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분을 강연자 대기실로 모셔야 했습니다. 저는 그 연사분께 최대한 공손한 목소리와 몸짓으로 이야기했습니다.


"You must go VIP room."   


유 머스트 고... 까악까악까악... (출처 : 골목식당)


행사 종료 후 이 에피소드를 들은 직장 동료들은 배꼽을 잡고 웃었고,  "May I take you to the VIP room."이라는 단순한 한 마디도 못한 제가 참 미웠습니다. 게다가 단순히 제 개인의 수치가 아닌, 회사 이름에 먹칠을 한 것 같아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수치심을 겪고, 그 이후로 4년이 가까이 지났지만 제 영어실력은 제자리걸음입니다. 필요성만 계속 느끼고 있을 뿐 저는 그냥 그 자리에서 영어에 발목 잡힌 채 한 손으로는 점점 더 뻐근해오는 뒷목만 잡고 있습니다. 영어가 필요한 순간엔 슬금슬금 뒤로 내빼기도 하면서 말입니다. 더불어,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는 영어 콘텐츠도 발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해서 느끼는 답답함도 더 이상 참지 못하겠습니다.


매년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었던 영어를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영어공부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올해 초 페이스북에서 영어 스터디 그룹원을 모집한다는 포스팅을 보게 되었고, 스터디 그룹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스터디의 난이도가 너무 높아 뱁새가 황새 따라가느라 가랑이가 찢어졌지만요. 중요한 것은 황새들도 그 긴 다리로 열심히 뛰어 저만치 가버리더군요.


비록, 뱁새의 가랑이는 찢어졌지만 내가 왜 영어를 못하는지 확실히 알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어를 못하는 이유를 알게 된 것은 곧 내가 어떻게 하면 영어에 좀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찾았다고도 할 수 있겠죠?


영어 공부를 하기 원한다면 공부할 재료들은 넘쳐나는 세상입니다. 다양한 방식으로 수업을 하는 학원, 각종 교재들, 최근에는 유튜브까지… 영어 공부를 돕는 전문가들도 매우 많습니다. 그러나 영어를 한 마디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평범한 대한민국의 30대 직장인이 영어공부를 시도하며 깨달은 것들을 글로 옮겨 봅니다.



나에게 영어는 언어가 아니었습니다.
하나의 과목이었을 뿐...


그동안 영어를 배우고 공부해왔지만, 제가 생각하는 영어는 언어가 아닌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과목들 중 한 과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단어를 외우고, 리스닝을 하고, 독해를 하지만 목적은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취업을 위해 필요한 토익 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러니 그나마 조금 했던 영어 공부의 방향은 좀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한 하나의 ‘스킬'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을 뿐이었습니다. 시험이 끝나니 자연스럽게 영어도 끝이 나버렸습니다.


영어는 언어입니다.

언어란, 인간의 사상이나 감정을 표현하고, 의사를 소통하기 위한 소리나 문자 따위의 수단이라고 다음 국어사전에서 설명합니다.


답을 찍기 위한 영어공부가 아닌 내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고, 상대방의 의중을 파악하며, 새로운 지식을 얻기 위한 언어로서의 영어 공부가 필요합니다.



입 다물고 팔짱 끼고서는
영어공부가 되지 않습니다.


저는 참 게으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는 데에 게으름은 적입니다.


모든 외국어 공부가 다 그렇겠지만 많이 읽고, 많이 듣고, 많이 쓰고, 많이 말해야 하는 것은 진리입니다.


저는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유독 힘들어합니다. 사회 초년생 때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을 가졌었는데 매일 밤 퇴근 후 코피를 흘렸을 정도로 말을 많이 하면 기운이 쭉쭉 빠져나갑니다. 손으로 무언가를 쓰는 것도 귀찮습니다.


그나마 읽고 듣는 것은 번거로움이 덜 하지만, 읽다가 모르는 단어나 구문은 손을 써서 찾아야 하고, 새롭게 알게 된 단어는 암기해야만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언어가 됩니다. 듣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은 미드를 좋아합니다. 남편은 미드를 볼 때 한글 자막을 보지 않고 듣습니다. 듣다가 새로운 표현이 나오면 킵 해둡니다. 그러나, 한글 자막 없이는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지 못하는 수준의 저는 같은 자리에서 같은 시간에 같은 장면을 보지만, 영어공부는 1도 되지 않습니다. 전문가들은 자막 없이 들었을 때, 최소 60% 이상 이해할 수 있어야 공부가 된다고 합니다. 먼저 부지런히 어휘 암기를 해야 합니다.


올해 초부터 하기 시작한 영어 스터디는 미드 'SUITS(슈츠)'로 진행합니다. 격주 수요일 퇴근 후 세 시간 동안 약 8명-10명이 모여 대본을 읽습니다. 한정된 3시간 동안 대본을 읽기 위해서는 2주 동안 한 편의 대본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영어 실력에 따라 대사를 듣고 받아쓰는 ‘딕테이션'으로 대본을 만들어오기도 하고, 딕테이션이 어려운 저는 영어 자막을 보고 받아 적은 후, 모르는 단어와 구문을 찾으며 대본을 만듭니다. 그리고 스터디를 하는 3시간 동안 배역을 나누어 대본을 읽고, 서로 공부해 온 새로운 구문들과 내용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모여서 영어공부뿐 아니라 다양한 배경 지식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덤입니다.


슈츠 미드 한 편의 대본을 만드는 2주간의 시간이 매우 빠듯합니다. 매일 퇴근 후 일정한 시간을 내거나 주말에 꽤 긴 시간을 들여야 가능한 일입니다. 게다가 스터디 시간 중 대본을 읽는 것 또한 조금 오그라들기도 하지만, 더듬더듬 대본을 읽으며 미드 속 배역들의 말투를 따라 하며 진짜로 언어가 사용되는 상황과 맥락을 이해하게 됩니다. 직접 대본을 만들며 영어를 적어보고, 입을 열고, 소리를 내어 영어공부를 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를 몸소 알게 되었습니다.


비록, 뱁새의 짧은 다리로 아등바등하고 있지만 영어공부를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배웠고, 6월 말 스터디가 끝나더라도 ‘좀 더 쉬운’ 미드를 선택해서 같은 방법으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의지와 공부 근육을 얻고 있습니다.



공부한 영어를 어디에 쓰지?


언어를 배우는 시간은 길지만, 잊어버리는 건 순식간입니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영어를 쓸 수 있는 환경이 매우 적습니다. 외국인 친구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업무를 하며 영어를 쓸 기회도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를 쓸 데가 없다는 핑계로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이렇게 손놓고 있다가는 진짜 영어가 필요한 순간에 또 발목이 잡히고, 뒷목을 잡게 되겠죠. 지금까지 그랬듯이…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영어 콘텐츠를 피하지 않고, 몇 줄이라도 읽기를 시작하겠습니다.

배운 단어와 구문들을 입으로 표현하고, 글로 써보겠습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외국인 친구가 없더라도 미드에 나오는 주인공을 친구로 삼고 그의 목소리와 말투를 따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위의 3가지를 하루에 한 번 이상은 하겠습니다.


하루에 영어 콘텐츠 한 줄 읽기, 한 줄 말하기, 한 줄 쓰기.


아직도 외국인이 눈 앞에 나타나면 일단 쫄기부터 시작하고 눈을 피하게 되지만, 영어에 자유로워질 수 있는 날을 하루라도 앞당겨보고 싶습니다. 영어에 자유로워지기 위해 나는 당분간은(당분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영어에게 나의 자유를 투자해보고자 합니다.


그대 내 곁에선 순간
그 눈빛이 너무 좋아
어제는 울었지만
오늘은 당신 땜에
내일은 행복할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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