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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Mar 24. 2019

나이가 어떻게 되냐고 묻지 마세요.

사회생활을 하며 개의치 않아도 되는 것, 나이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는 말입니다.  

이처럼, 한국인에게는 관계의 시작점이 나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상대방의 나이가 '나보다 위냐, 아래냐'에 따라 앞으로 맺어갈 관계의 방향을 설정하곤 합니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이 나이에 민감한 나라는 흔치 않다고 합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여 이슈가 되는 안건을 중심으로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는 TV 프로그램 <JTBC 비정상회담>에서도 나이에 민감한 대한민국의 문화가 도마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미국인 타일러라쉬는 "한국은 나이를 모르면 뻘쭘해지는 상황이 많다며, 한국에서는 상대방의 나이를 알아야 동사를 활용시킬 수 있다"라고 해서 함께 자리한 진행자와 패널들을 폭소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존댓말을 사용하는 문화로 인해 나이에 좀 더 민감할 수 있겠습니다만, 나이에 따라 관계가 형성되고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한국의 전통은 아닙니다. 성리학이 뿌리 깊었던 조선시대에서도 '상팔하팔(上八下八)'이라고 해서 '위아래로 8살까지는 서로 친구가 가능한 문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친구인 오성과 한음도 5살 터울이었다고 하니 상팔하팔이라는 교제 문화는 분명히 존재했었나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시비가 붙었을 때 "너, 몇 살이야?"라는 멘트가 단골로 등장하고, '빠른 년생'이라는 특이한 개념으로 인해 서로 얽히고설킨 '서열'을 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합니다. 누구와는 친구인데, 누구의 친구인 그 사람에게는 동생이 되어버리는 경우로 인해 서로 편하게 말 붙이는 것조차 어색해지는 이상한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례로, 작년 10월에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된 팀 패리스의 <마흔이 되기 전에>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도서의 원제목은 <Tribe of Mentors: Short Life Advice from the Best in the World>라고 합니다. 나이에 민감한 한국 사람의 구미를 당기는 제목으로 잘 번역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나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러나, 서로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나이가 우선시될 때 문제가 생깁니다.


나이가 우선시될 때 '서열'이 생깁니다.


상대방에게 나이를 물을 때, 단순히 상대방의 연령대가 궁금해서 물어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서로의 나이를 알게 될 경우 '서열'이라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서열과 함께 따라오는 것이 위치에 따른 역할입니다. 흔히 '짬'이라고 말하는 그것일 수 있겠습니다. 짬이 높은 사람들은 "내가 그걸 할 짬이냐"라고 하며 선을 그어버립니다.


또한, '짬'이 무서운 진짜 이유는 '짬'이 우리 사회를 지나치게 딱딱하고 엄숙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짬밥을 많이 먹어 서열상 위에 있는 사람의 의견과 생각이 옳다. 그리고 낮은 서열의 사람들은 무조건 그것을 따라야 한다."는 분위기를 만듭니다. 요즘에는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직장에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고, 밀어붙이기만 하는 모습들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이 많이 보이는 조직은 세대 간 소통이 단절되고, 생산성이 저하될 수밖에 없겠죠?


남편과 싱가포르로 여행을 갔을 때 생긴 일입니다. 대학시절 싱가포르에서 6개월간 인턴 생활을 했을 때 일하면서 사귀었던 친구를 소개해준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비슷한 또래라고 생각하고 흔쾌히 함께 밥을 먹기로 했고, 약속 장소로 향했습니다. 약속 장소에 먼저 와있던 두 명의 친구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언뜻 봐도 우리 삼촌, 아버지 뻘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친구의 정체는 남편이 인턴 생활을 하던 중 함께 일했던 상사였습니다. 그 당시 나이와 관계없이 서로의 교류를 중시하며 즐겁게 일했고, 그 후 10년 가까이 되는 시간까지도 친구의 관계를 이어가는 그들의 모습이 신기할 따름입니다.


 

나이에 나와 상대방을 가두지 마세요


이화여대병설미디어고등학교에 가면 진기한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합니다. 학생들이 선생님에게 반말을 합니다. 이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고 있는 이윤승 선생님은 “학생들과 평등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난 3~4년 전부터 학생들과 반말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합니다. 학생들도 처음에는 어색하고 선생님을 친구처럼 대하는 것에 난감했지만, “반말한다고 해서 선생님을 막 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더 가까워지는 효과가 있었다.”라고 목소리를 모았습니다.


이윤승 선생님은 처음 만난 사람에게 몇 살이에요 묻고, 나이를 대답하는 순간 그 나이에 걸맞다고 여겨지는 모습으로 상대방을 제한하게 되며, 상대방에 대한 판단과 정의를 할 때 나이라는 것을 먼저 앞세우게 된다고 했습니다. 10대는 이런 생각을 해야 하고, 20대는 꿈과 낭만이 있어야 하고, 30대는 안정감을 찾아야 하는 등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이죠. 선생님은 상대방을 나이로 판단해 버리는 것이 아니라, 몇 살이라고 표현하는 것 이전에 상대방의 취향과 성격, 상대방의 고유한 캐릭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말이 나를 권위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라고 말하는 이윤승 선생님 (출처 : 닷페이스)


억지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주위에 저보다 나이가 어린 친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더불어 이 또한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소소한 상식이나 지식뿐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방식, 어떠한 것을 대하는 태도 등 생물학적 나이의 많고 적음으로 다른 것을 제한하기엔 소중한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 나이에 저 정도면 진짜 대단하다

나이 답지 않게 성숙하다

네 나이면 아직 안돼

이 나이에 무슨

그럴 나이지


내가 무심코 사용하고 있는 이런 말들이 나도 모르게 갖게 된 나이라는 선입견이고, 불필요하게 쓰고 있는 안경으로 인해 나와 상대방의 진가와 가능성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위아래로 5살은 다 친구야


제가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어쩌면 이 말도 나이에 대해 한계를 짓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즐겨 찾는 모임이 있습니다. '성장판'이라는 모임인데 그곳에서 함께 책도 읽고, 글도 씁니다. 나이, 직업, 직급 다 떼고 모두 친구가 되어 독서와 글쓰기 등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모여 취향을 공유합니다. 모두 같은 눈높이에서 자유롭게 관계를 맺고 서로의 성장을 돕는 이 모임이 정말 좋습니다.


이제는 100세 시대라고 합니다. 나라와 나라의 경계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나이'라는 것으로 모두를 줄 세우고, '나이'라는 틀에 모두를 가두며, '나이'가 이슈가 되어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은 점점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친구'와 'friend'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았습니다.

지극히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쓰는 단어이면서도, 친구와 friend는 동일한 의미로 알고 있었는데 각 단어의 풀이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 친구

1.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온 사람

2.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거나 아래인 사람을 낮추거나 가깝게 이르는 말

3. 어른이 나이가 어린 사람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

(출처 : daum 사전)


* Friend

 someone who you know and like very much and enjoy spending time with

(출처 : 롱맨 영영사전)


우리나라에서도 '친구'의 의미가 재정의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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