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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Oct 28. 2020

휴가란 무엇인가?


각자의 여행엔 각자의 빛이 스며들 뿐이다. 그 모든 여행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분명 같은 곳으로 떠났는데 우리는 매번 다른 곳에 도착한다.
- <모든 요일의 여행> 김민철


얼마 전 제 생일에 남편이 묻더군요.

“갖고 싶은 거 있어?”


저는 대답했죠.

“갖고 싶은 건 없고, 필요한 건 있어. 자유시간“


남편이 아이를 보고 있겠다며 자유시간을 즐기고 오라고 했지만, 자유시간을 가진다 하더라도 즐길 수가 없더라고요. 누가 즐기지 말라고 한 것도 아니고, 아이 걱정을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눈에 밟히는 아이로 인해 마음 놓고 쉬기가 어렵습니다. 


제게 쉼은 그랬습니다.

편한 옷을 입고, 가장 편한 자세로 하고 싶은 것을 하죠. 주로 포근한 이불을 덮고 누워서 잠을 자다가 일어나서 TV를 보고, 배고프면 일어나서 뭘 좀 먹고, 또다시 누워서 책을 읽다가 잠에 드는… 정말 꿀 같은 휴식입니다. 경치 좋고, 공기가 맑은 곳에서 이런 행동을 하면 쉼의 짜릿함이 더욱 커집니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쉬고 싶을 때 휴가를 냅니다. 그리고는 정말 쉬죠. 여행을 가기도 하고,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도 하고요.


제가 생각하는 쉼은 몸이 편안하고, 마음도 덩달아 편안한 그런 상태인가 봅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는 쉬기 위해 휴가를 내지 않습니다. 특히 아이를 대신 돌봐주시는 엄마의 일정에 맞춰 휴가를 냅니다. 아이를 보시느라 챙기지 못하는 개인적인 일들을 하실 수 있도록 제가 휴가를 내어 엄마에게 휴가를 드리는 셈이죠. 엄마 미용실 가시는 날, 김장하는 날, 아직까지 그런 일은 없었지만 엄마가 편찮으신 날에도 휴가를 얻어내야겠죠. 


휴가를 간다고 인사하면 잘 '쉬고' 오라는 인사가 그리 반갑지 않습니다.

잘 '쉬었냐'는 인사에도 그냥 멋쩍게 네에 대답하고 말아 버립니다.


휴가를 내고 아이와 함께 보내는 하루는 제대로 쉬기가 어렵습니다. 그 흔한 늦잠도 못 자니까요. 



오늘이 바로 휴가날이었습니다. 


내일 이사를 하게 되어 정리가 필요했기 때문이죠. 역시나 쉬지 못했습니다. 아이 돌보느라, 살림 정리하느라 소파에 엉덩이 붙일 틈도 없었죠. 


그래도 오랜만에 아이와 하루 종일 함께 보내며 아이가 크고 있는걸 눈으로 직접 보았고, 함께 눈 마주치고 웃으며 모자간의 정을 나누었습니다.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있는데 10kg짜리 아이가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더군요. 안고 있으면 내 안에 뭔가가 따뜻하게 채워지는 기분입니다. 


빈둥거리며 누워서 잠자고, 일어나서 맛있는 것 먹고, 재미있는 것 보면서 쉴 때에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쉼을 경험합니다.


"엄마인 나와 엄마가 아닌 나의 휴가에는 각자의 쉼이 스며들 뿐입니다."

이쯤 되면 쉼의 의미를 재정의 해봐야겠습니다.


이사를 앞두고 어수선한 집이지만 따뜻한 이불 속에 누워서 오늘 찍은 아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면서 좀 쉬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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