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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Oct 29. 2020

엄마가 필요한 엄마


한 명의 사람은 그 가족과 친구들과의 관계 속에서 더 잘 표현된다. 마찬가지로 건축물의 진정한 의미는 건축물이 사람과 맺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 <어디서 살 것인가>, 유현준


복직을 한 이후로 아이를 친정에 데려다 놓고 주중에는 친정에서 출퇴근을 하고 금요일 저녁에 집으로 데려옵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 다시 친정으로 갑니다. 아이와 함께 아이보다 더 큰 트렁크를 끌고 친정과 집을 오갑니다.


원래 살던 집도 같은 행정구역에 있었지만, 그 또한 불편해서 걸어서도 부담 없이 다닐 수 있는 거리로 이사를 했습니다.


누구네 엄마는 아이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했다고 하는데 워킹맘으로 살기를 결정한 저는 여전히 엄마의 손길이 필요해 엄마가 사는 곳 근처로 이사를 했네요.


짐을 다 빼내고 텅 빈 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빈 공간들 사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신혼집에 처음 들어와 둘이 우두커니 앉아있던 모습, 퇴근 후 소꿉놀이하듯 느지막하게 저녁밥을 차려먹던 모습, 싸운 날 서로 등 돌리고 누워있던 모습, 어떤 주말엔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넷플릭스 미드를 정주행 하던 모습, 어느새 아이가 태어나 소란스럽게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들이 눈 앞에 그려진 더군요.


아이가 없었다면 이사 갈 생각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살기 좋은 집이었습니다.

오늘 이사 온 집은 남편과 저 모두 출퇴근 시간이 더 길어졌고, 그동안 즐겨 찾던 편의시설도 이용하기 힘들어지게 되었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 때문에, 아이가 좀 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이사를 결정했죠.


앞으로 아이를 위해, 아이 때문에, 아이 덕분에 선택하고 감수하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들이 많아지겠죠?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그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아이와 부모가 서로 조금 더 친밀해지고, 조금 더 자라고,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집에 짐을 풀어놓으니 마음이 편안하네요. 이 곳에서도 역시 우리 가족만의 세월이 흐를 것입니다.


포장이사를 하며 집의 모든 물건을 꼼꼼하게 잘 싸서 왔지만 살던 집에서의 희로애락은 포장이 안되더군요. 그러니 이 집 곳곳에도 새로운 행복의 흔적들을 많이 남겨야겠죠? 그리고 다섯 뼘쯤은 더 자라고 싶습니다. 하나 더! 다음번 이사를 할 때는 꼭 내 집 마련을 해서 가자고 남편과 이야기했습니다.


더불어, 곧 있으면 지하철도 공짜로 탈 수 있는 연세에 9개월 된 손자를 하루 종일 돌보시는 엄마의 수고도 조금은 덜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엄마가 필요해 엄마 곁으로 왔지만 결국 아이를 위한 일이라 ‘리우모(母) 일(一) 천(遷)지(之) 교(敎)’ 했다고 그냥 그렇게 얘기해봅니다. 그냥 그렇다 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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