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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Oct 30. 2020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위험한 사랑

어떤 것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치 있다는 의미이고, 어떤 것이 가치가 있을 때 우리는 그것에 시간을 투자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는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
<아직도 가야 할 길>, 모건 스콧 펙


스릴이 넘치고, 긴장감 있는 영화나 소설을 볼 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눈 앞에 장엄한 풍경이 펼쳐질 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어떤 모습, 무슨 행동을 해도 좋은 사람을 앞에 두고는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제게도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가 있습니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된’ 존재라고 표현하는 게 더 좋겠네요.

오늘 아침 출근을 준비하며 잠깐 눈을 떼는 바람에 아이가 다쳤습니다. 분명히 자는 모습을 보고 살금살금 방을 나와서 씻고 있던 중에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냥 자다가 일어나서 엄마를 찾으며 우는 그런 울음소리가 아니었죠.

뭐든 잡고 일어나기 시작한 아이가 범퍼 침대를 잡고 일어서다가 성기게 세워둔 침대의 벽이 떨어져 나가면서 아이도 함께 꽈당한 것입니다. 이마에 영광의 멍자국이 남았습니다. 그리고는 한참을 울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다행히 피가 나거나 뼈를 다친 건 아닌 듯했습니다. 시뻘겋게 부딪힌 자국이 약간의 붓기와 함께 남았고, 아마 점점 색깔이 파랗게 변하겠죠? 그래도 아이들은 회복 능력이 빨라서 금방 괜찮아질 거라 생각합니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보니 역시 아침보다 상태가 훨씬 좋아졌네요. 아들 엄마는 이렇게 점점 쿨해져 가는가 봅니다.

요즘에는 부딪혀서 울고, 넘어져서 울고, 위험한 물건을 만지지 못하게 한다고 울고, 울 일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아파서 울고, 놀라서 울고, 서러워서 울다가도 이내 두 눈에 장난기를 장착하고 오뚝이처럼 일어나 짚고 일어서거나 기어 올라갈 곳을 찾습니다. 야심 차게 사준 장난감도 다 소용없습니다.


이런 아이에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습니다.


본디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한 시도 눈을 떼고 싶지 않은 존재이지만, 한 시도 눈을 떼지 말아야 하는 상황이 되니 그게 참 고역입니다. 화장실도 가야 하고,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는데 말이죠.

“나 원래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사랑스러운 아가예요. 그러니 한 시도 눈을 떼지 마세요.”라는 메시지를 아이가 보내는 걸까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아이를 안고 눈을 맞추고 싶고, 아이가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싶고, 끌어안고 함께 잠들고 싶은 게 엄마 마음입니다. 정말 한 시도 눈을 떼고 싶지 않죠.

본래 ‘한 시도 뗄 수 없는 시선’은 어쩌면 나를 향하는 시선인 것 같습니다. 스릴 넘치는 액션 영화와 긴장감 가득한 공포소설의 전개,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운 풍경에 뗄 수 없는 시선은 모두 나를 향하는 시선입니다.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스토리로 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시신경을 자극하는 눈부신 풍경이 제 마음을 위로하기 때문이죠.

아이로 인해 새롭게 생긴 '한 시도 뗄 수 없는 시선'은 온전히 아이를 위한 것으로 남겨두려고 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바치는 시간의 질과 양이 아이에게 자신이 부모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만큼 아이를 향한 시선을 더욱 정성스럽게 아이에게 고정하고 싶습니다.

더불어, 한창 엄마의 손길이 필요하고, 양육자와의 애착형성이 중요한 이 시기에 돈을 벌겠다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 엄마를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에 조금이라도 보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내일은 엄마 아빠가 번갈아가며 정말 한 시도 눈을 안 떼서 부딪히고, 넘어지고, 다쳐서 우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할게.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존재로 곁에 있어줘서 고마워."


그런데 아이로 인해 새롭게 생긴 '한 시도 뗄 수 없는 시선'을 아이 것만으로 남기기는 어렵겠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를 바라보면 바라볼수록 내가 얻는 기쁨과 행복과 위로가 훨씬 클 것 같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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