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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Oct 26. 2020

육아, 그 지루함에 대하여

바다는 마치 하나의 커다란 책처럼 날마다 새로운 것을 펼쳐 보였다. 잔잔한 바람, 격렬한 폭풍우, 폭풍 뒤에 굽이치는 물결 등 바다는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다.
<모래 언덕에서 전해 온 이야기>,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아이를 낳고 키우며 느꼈던 의외의 감정은 ‘지루함’이었습니다.

먹고, 놀고, 자는 ‘먹놀잠’을 예닐곱 번쯤 반복해야 24시간이 지납니다. 태어나서 100일까지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3시간에 한 번씩 배를 채워줘야 했기에 어제가 오늘이 되었는지, 오늘이 내일이 되었는지 헷갈리기도 합니다.

유난히 등 센서가 민감해서 안겨 있던 몸의 기울기가 조금이라도 바닥을 향하기만 하면 잠에서 깨버렸던 까닭에 생후 150일이 넘어서까지 아이를 안아서 재워야 했습니다. 품에 안겨 잠든 아이를 깨우기 싫어서 한 시간 이상 아무것도 못하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있던 날이 두 손 두 발로 꼽지 못할 만큼입니다.

책을 몇 권이나 읽어주어도, 같은 책을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시계의 긴 바늘은 반 바퀴도 돌지 않더군요. 10분짜리 놀이를 6번이나 해야 겨우 한 시간이 흐릅니다. 순간을 쭈욱 늘어뜨려놓은 기분입니다.


휴, 오늘 하루는 또 어떻게 보내지?


한동안 매일 찾아오는 아침마다 이런 생각이 들어 한숨을 쉬며 하루를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왜 이리 지루하게 느껴졌을까요? 바라만 봐도 귀엽고 예쁜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인데 말입니다.

아마도 내 몸과 마음은 직장생활을 하며 효율을 추구하는 삶에 길들여져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아이의 속도에 천천히 발을 맞추려 하다 보니 순간이 너무 길게 느껴졌나 봅니다.

육아에서 효율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저 아이의 템포에 맞추어 천천히 움직일 뿐이죠. 어쩌면 ‘천천히’라는 기준 또한 철저히 내 입장에서 내린 기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는 결코 천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속도로 하루를 살고 있을 텐데 말이죠.

이런 지루함으로 가득 채워진 날들이었지만, 돌이켜보면 하루도 같은 날이 없었습니다. 아이는 자기만의 박자로 리듬을 타며 매일매일 자라고 있으며 때로는 잔잔한 바람처럼, 때로는 격렬한 폭풍우처럼 그렇게 삶의 마디마디를 채워가고 있습니다.

복직을 해서 하루의 대부분을 아이와 떨어져서 보내는 지금, 때로는 그 지루함이 그립습니다. 빨리빨리, 짧은 시간에 많이, 적은 노력으로 큰 성과를 내야 하는 직장에서는 순간순간들을 가득 채워야 해서 지루할 틈이 없거든요.

육아를 하며 느끼는 지루함 속에 아이와의 눈 맞춤과 서로의 볼이 맞닿는 감촉과 깔깔대는 웃음소리의 다채로움을 담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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