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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Nov 03. 2020

코로나 시대에 태어난 아이

절망적인 소식들이 쏟아질 때면 자연히 포기 쪽으로 몸과 마음이 기운다. 분노와 무력감 사이를 오가다 보면 이 나라를 외면하고 싶어 진다. 하지만 내가 버리는 짐을 어린이가 떠안겠지. 나는 계속 싸울 것이다. 그리고 조그마한 좋은 것이라도 꼼꼼하게 챙겨서 어린이에게 줄 것이다. 거기까지가 내 일이다. 그러면 어린이가 자라면서 모양이 잘못 잡힌 부분을 고칠 것이다.
-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스스로 되뇌며 올바른 길을 찾는 것, 김소영


2020년 1월 20일, 중국 우한에서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35세 여성 코로나 확진

2020년 1월 24일, 우한에서 상하이를 거쳐 인천공항으로 입국한 55세 남성 코로나 확진

2020년 1월 26일과 27일, 세 번째, 네 번째 코로나 확진자 발생

2020년 1월 30일, 코로나 확진자 3명 추가


제 아이는
2020년 1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아기가 태어나기를 기다리고 기대했던 가족들이 신생아실에 누워있는 아이를 보러 찾아왔습니다. 보고 있어도 계속 보고 싶은 신생아라 어제도 와서 보고, 오늘도 당연히 오고, 내일도 와서 볼 예정인데 갑자기 병원 입구에서 출입을 통제합니다. 코로나 확진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서 방역을 위해 환자와 환자 가족 1인 외에는 병원 출입을 금지하기 시작한 것이죠. 이 사실을 모르고 아기를 보러 왔던 친지들은 병원 입구에서 그냥 돌아기도 했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되려 하는 상황 속에서 병원 측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올바른 조치였지만, 아쉬움과 미안함은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는 병원에서 나와 조리원 천국에 있다가 지상계로 내려왔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이 오면서 예쁜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공장 가동을 멈춰서인지 하늘도 유독 더 파랗고 맑았습니다. 날짜가 하루하루 지날수록 아이도 쑥쑥 자랐고요. 아이에게 바깥세상을 구경시켜주고 싶었습니다.(사실 저도 너무 나가고 싶었고요)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갈 수 있는 곳이 극히 제한적이더군요. 그 흔한 외식도 주저되고, 아이를 데리고 돌아다니기에 비교적 편리한 쇼핑몰도 갈 수가 없고요.


그래도 저처럼 어린 아기들이 있는 집은 좀 낫습니다. 어린이집과 유치원, 학교를 못가게 된 아이를 둔 집에서는 에너지 넘치는 아이들을 집 안에서만 돌보느라 부모도 힘들고, 아이도 좀이 쑤셔 몸이 뒤틀립니다. 제한적으로 학교에 가더라도 마스크 때문에 선생님은 아이들의 생김새를 다 알지 못하고, 아이들은 반 친구 한명 사귀지 못하는 상황이 너무 안타까울 뿐입니다.


외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것도 그렇지만 늘 불안해할 수 밖에 없는 현실 앞에서 무력해집니다. 아이가 열이나기라도 하면 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을 수 없는,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시절입니다.


물론, 코로나 시대에 아기가 태어난 이 상황이 모두 나쁘지만은 않았습니다. 아이 아빠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면서 그래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었죠. 아이로 인해 업무에 집중하기가 어려워 아이가 없는 다른 곳으로 피신해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요. 그래도 출퇴근 시간을 절약하여 그 시간을 아이를 돌보는 데에 사용할 수 있었다는 건 참 좋은 기회였습니다.


아무튼, 아이는 태어나서 사람들이 밖에서 마스크를 끼지 않고 다니는 모습을  번도  적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고, 아이가 인지능력이 생기게 되면 외출할 때에는 당연히 마스크를 껴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요즘 아이들을 'M세대'로 부른다고 합니다. 밀레니얼이 아니라 마스크래요.  


우리가 겪고 있는 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이 아이에게는 이상할 것 없는 정상적인 상황으로 받아들여질지도 모르겠습니다.


열 달 동안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 뱃속에서 탯줄로 연결되어 영양분을 공급받고 지내던 아기가 세상에 나오자마자 전염력 강하고 지독한 바이러스 앞에 내던져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이러스뿐 아니라 이 아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얼마나 많은 위험에 처하게 될까요? 경제, 교육, 환경, 종교 등 각 분야 곳곳에 우리를 위협하는 요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생각하면 막막하고 기운이 빠지며 두렵기까지 한 현실 앞에서 '에라, 모르겠다.' 하고 싶지만, 아이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내가 외면한 현실들이 미래에 아이들이 짊어질 짐이 될 테니까요.


내가 세상을 바꿀 수는 없지만, 작은 것부터 정의와 책임감을 가지고 살고자 합니다. 지금 내가 하는 작은 실천이 다음 세대에게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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