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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Nov 08. 2020

아이를 안을 수 있는 시간

사랑을 한다는 것은 나 아닌 어떤 사람이 아주 중요하게 느껴지는 경험이잖아요.
- <깨끗한 존경>, 이슬아 인터뷰집 정혜윤 PD 편


아이를 안고만 있어야 하는 때가 있었습니다.


150일 정도까지 아이는 누워서는 잠에 들 수가 없고, 안아서 재웠다가 바닥에 눕히려 하는 순간 눈을 번쩍 뜨는 민감한 등 센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죠. 아이를 안고 20분은 위아래로 흔들어야 잠이 들었던 탓에 제 무릎에서는 삐걱삐걱 소리가 나게 되었습니다. 잠든 아이를 안고 한 시간 넘게 꼼짝도 못 하고 앉아있자니, 어깨도 아프고 팔목도 아프고 좀이 쑤십니다. 어떻게 재운 아기인데 깨우기가 아까워서 화장실 가는 것도 참습니다.


그 당시에는 아이를 안고 있는 게 왜 이렇게 힘들었던지, 자장가로 "주라 주라 주라 주라 누워서 좀 자주라" 노래를 불렀습니다.


아이가 자라면서 수면습관도 자리를 잡게 되어 이제는 안아주지 않아도 잠을 잘 자고, 안아서 재우더라도 예전만큼 잠드는데 오래 걸리지도 않을 뿐 아니라, 눕혀도 계속 잘 잡니다.


아이가 스스로 앉고, 기고, 잡고 일어서기 시작하면서 아이를 안는 시간이 현저히 줄어들었습니다. 물론 졸리거나, 본인이 가고 싶은 곳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을 때는 안아달라고 손을 뻗고,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늘어지지만 딱 그때뿐입니다.


일하는 엄마로 하루에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시간이 길어야 4시간입니다. 평균 3시간 동안 아이를 보며 아이를 얼마나 안을 수 있을까요? 주말에는 밀린 집안 일과 콧바람 쐬러 나가기, 일주일치 이유식 만들기 등으로 막상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적습니다.


퇴근 후 집에 들어와서 아이를 안으면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집니다. 업무로 무겁고 아팠던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 듭니다. 게다가 퇴근해서 집에 들어온 엄마가 반가운 아이는 오히려 나를 꼭 안거나 입을 얼굴에 가져다 대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나를 이렇게 반겨주는 존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로를 받습니다.


육아 선배들이 이 맛에 아이 키운다고 하는데 그 맛 정말 좋더라고요.


안겨서 서로 눈을 맞추어 웃기도 하고, 졸릴 때는 온몸에 힘을 풀고 나를 의지해서 축 기대어 있기도 합니다.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나에게 폭 안기는 그 느낌은 말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제 삶에서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적이 있던가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없습니다.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싶고, 하루 종일 씨름하다가 밤에 잠이 들면 사진과 영상으로 아이를 또 봅니다. 낮잠을 안 잘 때는 제발 좀 자줬으면 좋겠다가도 낮잠을 조금 오래 잔다 싶으면 왠지 불안하고 얼른 깨워서 안고 싶기도 하죠.


그런데 아무리 아이가 예쁘다고 하더라도 10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아이를 안고 있으면 이내 팔이 아파옵니다. 폭 안겨있지 못하고 자기가 보고 싶은 방향, 가고 싶은 곳을 향해 몸을 돌리고 힘을 주어 버틸 때에는 힘이 두배로 들더군요. 힙시트, 아기띠 등 도구의 도움을 받아보지만 이내 허리가 아파오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지금이 가장 가벼울 때라고. 그리고 이미 아이들이 많이 커버린 부모들은 아직 걷지 못하는 아기들이 그렇게 안아보고 싶다고 합니다. 조금만 더 크면 안고 싶어도 아이가 거부한다고요. 저는 신생아를 안아보고 싶네요. 아이가 누워서 잠자지 못하는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더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라는 존재는 부모를 쥐락펴락하며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게 만드네요.

아이 또한 "나를 안아서 재우시오.", "나를 눕히지 말고 계속 안고 계시오." 하다가도 조금만 크면 "나에게 가까이 오지 마시오.", "혼자 있고 싶소." 하면서 변심할 때가 오겠죠.


그러니 이토록 중요하게 느껴지는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을 안아줄 수 있을 때 더 많이 안아주고자 합니다.

언젠간 지금 이 때도 그리워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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