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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Nov 09. 2020

밑줄 긋는 육아의 순간들

글을 퇴고할 때 한 가지 유심히 보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바로 '밑줄을 그을 만한 좋은 문장이 있는가?'입니다. 에세이에서 좋은 문장 한 줄이 갖는 힘은 어마어마합니다. 좋은 문장 한 줄은 독자로 하여금 책 전체를 궁금하게 만들고 시간이 지난 뒤 이 글을 다시 읽고 싶어 지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줍니다. 그리고 SNS상에서 막강한 홍보 수단이 되어주지요. 또 그런 문장은 추후 그 책의 제목이나 대표 카피로 활용되기도 합니다.
- <에세이를 써보고 싶으세요?>, 김하나


매일 한 편씩 글을 쓰고 있습니다.

 

뱃속에서 나와 아이를 이어주던 탯줄은 끊어졌지만, 더 강력하게 저와 아이를 잇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를 글로 남기고 싶어서 글을 씁니다. 더불어, 몸과 생각이 자라는 아이와 함께 저 또한 성장하고 있음을 글을 쓰며 확인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매일 글을 쓰다 보니 글을 쓰는 데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100일 글쓰기 모임 마감 시간인 23시 59분에 턱걸이하며 겨우 글 한 편의 마침표를 찍습니다.


이렇게 글을 쓰면 늘 아쉬움이 남습니다. 좀 더 숙고해서 문장을 뽑아내고 생각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늘 시간에 쫓겨 그저 글을 마무리하기에 바쁩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글의 수준을 100으로 잡았을 때 매일 쓰고 있는 글은 늘 50-60정도에 머무는 느낌입니다. 


글을 통해 그저 마음에 있는 말들을 쏟아내고만 있지는 않은지, 글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고됨을 털어내는 도구로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익하지도 않고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글을 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됩니다.


쓴 글 중에 밑줄을 그을 만한 문장이 얼마나 있을까요?




육아하는 시간을 한 편의 책으로 바꾼다고 가정해봅니다. 밑줄을 그을 순간들이 너무 많습니다.

매일매일 누적되고, 갱신하는 아이의 첫 순간들

아이로 인해 웃고 울었던 일들

아이로 인해 위로받던 시간들

아이를 꼭 끌어안던 장면과 그 느낌

예상치 못했던 날마다 새로운 행복감

둘에서 셋이 된 우리 가족의 모습


그리고 밑줄 그은 육아의 순간들을 글로 차곡차곡 남겨놓고 싶습니다.


금방 스쳐지나가는 소중한 순간의 귀퉁이를 살짝 접어두었다가 글로 남겨봅니다. 언제든 다시 열어볼 수 있게 말이죠. 


바라기는 그렇게 옮겨둔 글에도 밑줄 그을 만한 문장들이 많이 쌓여가면 좋겠습니다. 


나중에 시간이 흘러 지금이 순간이 새로운 기억들 밑으로 파묻혀서 잘 보이지 않을 때쯤, 아이가 자라서 어린 시절을 추억할 때쯤 쉽게 꺼내볼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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