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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직딩 Nov 10. 2020

요리 잘하는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육아에 정답은 없지만 오답은 있다. 그 첫 번째 오답은 아이가 태어났는데 아이가 태어나기 전과 같은 삶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다. 새로운 가족 구성원이 생겼는데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가 어떻게 살아갈 수 있겠는가.
- <진짜 엄마 준비>, 정선애


저는 라면도 맛없게 끓이는 일명 요똥입니다.


결혼 전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물론, 결혼 후에도 제가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은 횟수는 열 손가락으로 꼽았을 때 손가락이 남을 정도입니다. 남편이 요리를 더 좋아하고, 더 맛있게 음식을 만들었기 때문에 식사 메뉴 선정과 요리는 남편 몫이 되었죠.


신혼 초에는 소꿉놀이하듯 퇴근 후에도 밥을 만들어서 먹곤 했는데 주중에는 야근, 약속, 회식 등으로 집에서 밥을 먹을 일이 점점 없어지더군요. 음식을 잘 만들어먹지 않으니 된장찌개 하나를 끓여먹으려 해도 각종 재료들을 모두 사야 하고, 둘이서만 먹는데 많은 양을 할 필요도 없어서 재료들의 대부분은 음식물쓰레기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느새 끼니는 밖에서 해결하고 들어오거나 반찬을 사서 먹거나 배달 음식을 애용하는 것으로 해결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요리는 제게서 점점 더 멀어져 갔고, 가스 요금이 2,880원이 나오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880원 중 2,000원은 기본요금이랍니다.




그랬던 제가 부엌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아이 이유식을 만들기 위해 인터넷으로 검색도 하고, 레시피가 담긴 책도 구매했습니다.


복직을 하고 이유식을 직접 챙길 수 있을까 하는 걱정에 시판 이유식도 도전해 보았지만, 아이는 엄마가 해준 음식을 먹고 싶었는지 시판 이유식은 잘 먹지를 않더군요.


고기도 다지고, 야채도 다지고, 다져놓은 생선을 구매해서 이유식을 만듭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재료로 이유식을 만들까 고민도 합니다. 주말에는 일주일치 이유식을 만들어 놓기 위해 재료 예닐곱 개를 준비하고, 냄비 세 개를 돌려가며 이유식을 만듭니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손에 물 마를 틈이 없네요.


물론, 저는 열심히 만들지만 아웃풋의 품질은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습니다. 똥손이 갑자기 바뀔 리가 없죠. 늘 동일한 결과물이 나오질 않습니다. 어떤 날은 너무 묽게 되고, 어떤 날은 너무 되게 만들어집니다. 물을 더 부어보고, 재료를 더 넣으며 일관성 있는 비주얼과 맛을 내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다행히 아이는 이유식을 먹을 때마다 아기새처럼 입을 쫙쫙 벌려가며 잘 받아먹습니다. 밥풀 하나 남김없이 싹싹 긁어먹은 빈 이유식 통을 볼 때면 '다음엔 뭘 해줄까' 하는 의욕이 샘솟습니다.


이유식뿐만 아니라 간식도 만들어봅니다. 쌀을 갈고, 고구마를 쪄서 으깬 후 함께 반죽합니다. 손으로 조물조물 모양을 내고 포크로 찍어 더 먹음직스럽게 멋까지 냅니다. 오븐에 구워내면 티팅 러스크라고 부르는 맛있는 과자가 됩니다. 이가 올라오기 시작해서 간질간질한 아이의 잇몸을 긁어주는 도구가 되기도 하지요. 


남편은 이런 제 모습을 생경해합니다. 아이를 재우고 밤 늦게까지 뭘 만들어보겠다고 꼼지락거리는 저를 보며 너무 무리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까지 하더군요. 맛있게 먹을 아이의 모습이 자꾸 아른거리니 피곤할리가 없습니다.


학창 시절을 떠올려봅니다.


점심시간만 되면 제 어깨는 으쓱으쓱 해졌습니다. 엄마가 정성스럽게 싸주신 도시락 때문이었죠. 엄마는 늘 예쁘고, 맛있게 도시락 반찬을 준비해주셨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흰자와 노른자를 따로 분리해서 만든 계란말이입니다. 도시락 뚜껑을 열면 보이는 노오랗고 하아얀 계란말이들이 참 자랑스러웠습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오면 늘 맛있는 간식을 해주셨습니다. 피자, 햄버거도 모두 직접 만들어서 해주셨죠. 그게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는 걸 성인이 되고, 제가 요똥임을 확인하고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오늘 100일 동안 함께 글 쓰는 분들과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모두 아이 아빠들인데요, 아이들을 위해 직접 요리를 하고, 어떤 음식을 해주면 아이들이 맛있게 먹을지 고민을 하더군요. 요리했던 내용을 글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분들의 모습을 보자니 어렸을 때 아빠가 해주셨던 음식들과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좋은 기억들이 떠오르며 마음이 따뜻해지더군요.


저도 아이에게 음식 솜씨가 좋은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솜씨가 좋지는 않더라도 늘 정성스럽게 음식을 만들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네요. 타고난 똥손은 끝까지 극복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게으름과 귀차니즘으로 아이의 식탁이 인스턴트 음식과 배달 음식으로 채워지지 않도록 애쓰고 싶습니다.


다음 주 이유식 식단은 뭐로 하면 좋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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