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울컥! 하이델베르크, 나의 추억이 담긴 도시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20)

변했지만 한결같이 그대로인 하이델베르크


보통 사람들은 힘들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면 고향을 생각을 하거나 고향으로 간다고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길을 잃은 듯이 막막하거나 답답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방황할 때 나는 나의 제2의 고향 하이델베르크가 생각난다. 다른 사람들처럼 고향에 있는 누군가를 그리워하면서 의지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혼자서 이때까지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반백살 넘은 싱글언니이기 때문이다. 나도 사람이기에 힘들면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아마 나의 의식이 누군가를 떠 오기 전에 나의 추억이 담긴 장소 하이델베르크를 떠오르게 하는 것 같다.


1년 전 오늘 이 날도 힘든 시간이었다. 욱해서 던진 사표와 함께 도망치듯이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떠났지만 내 마음은 배낭보다 더 무거웠다. 여행 중에도 어깨에 맨 무거운 배낭과 윤여정 배우님이 좋아하는 유럽 돌길을 캐리어로 질질 끌고 다닐 때보다 더 힘들었다. 그러나 더 힘들었던 것은 배낭과 캐리어가 아니라 어쩌다 퇴사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나의 불안과 막막함이었다. 두어 달의 유럽 여행을 계획을 세울 때 솔직히 계획을 세우지 않고 그냥 하이델베르크에서 지내고 싶었다. 그냥 고향에서 쉬는 것처럼.


독일 하이델베르크는 나에게는 그런 도시이다. 힘들면 생각나는 곳, 마치 고향처럼. 솔직히 40대 전까지 나는 하이델베르크처럼 오랜 시간을 보낸 도시가 없다. 어렸을 때도 여러 번 이사를 다녀서 추억이 있는 집은 따로 없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이 도시에서만 나는 5년을 보내면서 이 시간 동안 친구들과 많은 추억을 담고 있어 나에게는 고향과 같은 곳이었다. 하이델베르크는 그림처럼 예쁜 도시여서 예쁜 추억도 많았지만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 독일어도 제대로 못하면서 독일 학생들과 또 외국인 학생들과 경쟁을 하면서 힘들게 공부했던 곳이 여기 하이델베르크였다. 나의 젊은 시절 20대 중반에 시험에 떨어지지 않고 졸업을 하기 위해 힘들게 공부했던 곳. 또 방학 때는 먹고살기 위해 ABB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곳. 그런 곳이었다.


30년 전에 처음으로 하이델베르크를 방문했다. 아마 그때 나는 베를린에서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우고 있었을 때였다. 그때 당시에는 그냥 어학시험에 합격하면 베를린에서 공부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바라본 이 조그마한 도시가 너무 예쁘고 그냥 좋았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바로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기도를 했었다. 그리고 어학시험에 통과하고 대학입학 신청서를 독일 대학 여러 군데 보낼 때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보내면서 많은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처럼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제일 먼저 입학허가서가 우편으로 왔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기도의 응답이라 생각하고 망설임 없이 하이델베르크 대학 기숙사에 들어와서 5년 동안 살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그때 5년 동안 하이델베르크에 친구들과 함께 공부를 하면서 하이델베르크에서 많은 추억을 쌓았지만 남의 나라에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었다. 졸업시험도 무서웠지만 매 학기, 매 과목마다 치러야 하는 중간고사, 기말고사 지긋지긋할 정도로 힘든 게 사실이었다.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졸업시험 마지막 날 마지막 과목 시험을 보고 나서 내가 제일 먼저 한 것은 기숙사방에 있는 시험공부 자료였다. 그것을 나는 다 정리해서 쓰레기장으로 버렸다. 그때는 시험이 너무 힘들어서 모든 것이 끝이고 정리했다는 만족감으로 버렸지만 지금까지 내가 가장 후회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자료들을 고이 모아서 자료집을 만들어 책으로 발행한다는데 나는 그 귀중한 나의 손때 뭍은 자료를 버린 것이다. 왜냐하면 5년 동안 공부했던 것이 너무 힘들어서. 이처럼 하이델베르크는 좋았던 추억과 힘들었던 추억이 함께 묻어있는 나의 소중한 장소다.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독일 프랑크푸트트에서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기차를 탔을 때 그때부터 설레었다. 퇴사로 인한 불안감도 컸지만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길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처럼 따뜻하고 포근했다. 하이델베르크 인근 작은 산동네에 하룻밤을 묵고 드디어 이 날 내가 자주 다녔던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와 대학을 가는 날이다. 트램을 타고 구시가지에 내려 걸어오는데 뭉클뭉클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서 더 짠했던 것 같다. 코로나 전에도 1년에 한 번씩은 독일 오면서 하이델베르크를 왔었지만 코로나 때는 진짜 여행이 끝난 줄 알았다. 그런데 다시 내가 여기 하이델베르크에 올 수 있다는 것이 기적 같았다. 일상으로 복귀되는 느낌이 바로 이 느낌일 것이다. 또 하이델베르크는 변하지 않았다. 30년 전이나 코로나 이전이나 내가 돌아왔을 때도 그 거리의 집들은 그대로였다. 한결같아서 감사했다. 많이 변했다면 내가 이질감이 느껴 고향 같은 생각이 안 들었을 텐데 다행히 내가 오래전에 다녔던 그 길은 그대로다.


숙소에서 오전 일찍 출발했기에 트램에서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시간이었다. 하이델베르크는 독일에서 대학도시로도 유명하지만 관광도시 중에 하나다. 이 날 내가 처음으로 향한 곳은 대학도서관이었다. 왜냐하면 오래전에 여기서 공부를 하면서 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은 도서관이었기 때문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중 의과대학만 빼고 다른 과들은 거의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 모여있다. 그래서 구시가지 자체가 대학이면서 관광지이다. 대학광장에는 학생들도 많지만 관광객도 북적인다. 구시자지 거리 Haupstrasse를 걷다 보니 크리스마스 시장을 열기 위해 준비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하이델베르크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볼 수 있다니 예전에는 생각도 못했던 일이다. 휴가는 항상 하기휴가. 그 이후로 유럽에서 크리스마스 시장을 볼 수 없었는데 크리스마스 시장을 그것도 나의 제2고향 하이델베르크에서 즐길 수 있다니 너무 감격이었다. 퇴사를 해서 막막했지만 그 순간은 퇴사가 나에게 주는 선물 같았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Hauptstrasse


하이델베르크 길은 여전하다, 아기자기한 골목길. 오래전에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복잡하는 길을 피하기 위해 종종 나는 골목길을 걸어 다니곤 했다. 강의실로 가는 길도 골목길로 걸어가고.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골목길을 보면 꼭 집으로 들어가는 대문 같았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 골목길

대학광장 Uniplatz를 지나 드디어 대학도서관에 도착했다. 도서관 외벽은 공사 중이었다. 당연히 오래된 건물이니 유지보수를 하는 것이 당연한데 사진을 제대로 찍을 수 없어 좀 아쉬웠다. 도서관 주변은 한결같이 변하지 않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서관 정문 앞에는 자전거가 빼꼼하게 서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 외부 전경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은 독일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다. 1386년에 독일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노벨수상자만 7명이 나왔으니 유명할 만도 하다. 또 막스베버나 하이린히 뵐같은 유명한 인사도 하이델베르크 대학 출신이다. 그리고 이 대학 안에 있는 이 도서관도 독일에서 제일 오래된 대학 도서관이면서도 독일에서 제일 큰 학술도서관으로 유명하다. 내가 오래전에 살다시피 한 이 도서관에 중세시대부터 지금 현재 학술자료까지 보관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책 중 하나 카펠스 법전 (Codex Manesse)가 여기에 있다.


솔직히 도서관 안에 많은 작품과 자료과 보관되어 있었지만 그 당시 내가 공부할 땐 옆을 쳐다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 그냥 어두운 도서관 로비와 계단에 올라가 공부했던 것 그것만 기억이 또렸하다. 그 당시 내가 공부했을 때 아침 7시에 일어나 8시 반까지 내가 공부했던 알프레도 베버 경제학과 강의실과 도서관 일명 AWI라고 불렀던 거기에 도착해 저녁 7시까지 이 AWI 연구소에서 시간을 보냈고 AWI 도서관이 끝나는 시간 바로 옆에 있는 대학도서관으로 가서 밤 10시까지 공부하고 기숙사로 돌아와 뻗어서 자곤 했다.


그때 이후로 도서관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개방시간과 도서관 열람실 내부 인테리어가 많이 좋아졌다. 예전에는 개방시간이 밤 10시까지였는데 지금은 새벽 1시까지 문을 연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로비와 열람시간

도서관 1층 로비는 90년대 중반 때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그때는 1층과 2층 자료실과 전시실을 둘러보지 못했지만 이 날은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았다.

하이델베르크 대학도서관에 전시되어 있는 Codex Manesse와 작품들

천천히 둘러보고 보관실에 나의 작은 가방과 외투를 맡기고 열람실로 들어갔다. 내가 공부했던 그 장소로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이 콩당콩당. 도서관이 겉으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도서관 내부는 많이 바뀌었다. 내가 공부했던 그 도서관. 그때는 걸을 때마다 삐그덕 삐그덕 거리는 나무바닥 소리가 들렸는데 바닥도 소음이 안 들리는 바닥으로 바뀌었다. 빼곡하게 있었던 그 책상은 확 트인 테이블로, 어두웠던 조명은 밝은 조명으로 그때보다 훨씬 쾌적한 공간으로 변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 내부와 열람실

내가 지정석처럼 앉았던 그 자리엔 지금은 누군가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도 여기 어딘가에 앉고 싶었지만 자리도 없을 정도로 다들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시간은 한참 지났지만 예전에 내가 죽을 듯이 공부했던 것처럼 지금도 이 학생들은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저 자리가 내 자리인데...

그냥 아쉬움을 남긴 채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도서관 자리 대신 우리 연구소 밑에 있던 카페로 이동했다. 그리고 내가 자주 앉았던 그 자리에서 커피와 케이크 한 조각을 먹었다. 카페 내부도 바뀌었지만 그렇게 많이 바뀌지는 않았다. 대학식당과 카페는 학생들에게 천국이다. 일반인에게도 천국이다. 싸고 맛있는 것은 먹을 수 있으니 가난한 여행자는 대학 내에 있는 식당과 카페를 이용하는 것도 여행비를 아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대학광장에 있는 1층 대학 카페
대학카페에서 마신 커피와 내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

이 날 오전을 이렇게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과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고 대학 식당 카페 바로 코앞에 있는 크리스마스 시장을 둘러보았다. 코로나 이후로 처음 여는 크리스마스 시장이어 관광객도 또 장사하시는 분들도 모두들 흥분하고 즐기고 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으로 정말 귀국한 이후 크리스마스 시장은 보지를 못했으니 그것도 나의 추억이 아련한 이 하이델베르크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길 수 있어 너무 감사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 광장에 있는 크리스마스 마켓

오래전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를 할 때 크리스마스 방학 전까지 수업 도중 또는 수업을 들을 때 쉬는 시간에 건물 바로 앞에 있는 크리스마스 시장에 와서 소시지와 추위를 녹여줄 글루와인을 잠깐 마시고 다시 강의를 듣곤 했다. 학생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교수님들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마스 시장은 나에게 그런 곳이었다. 추위와 배고픔을 해결해 주는 그러한 보금자리 같은 곳이었다.

 

하이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 명물 글루와인과 소시지
하이델베르크  크리스마스 마켓에서 파는 소시지


하이델베르크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맛보는 소시지는 그때나 지금이나 지쳐있던 나의 맘과 피로를 풀어준다. 든든하게 이렇게 먹고 산 위에 있는 하이델베르크 고성. 30년 전에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하게 해달라고 처음으로 기도했던 그 성을 올라갔다.


역시나 그대로 한결같은 하이델베르크 고성. 성 아래에서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한창인 11월 말이지만 고성에는 늦가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그 자리에서 나는 지금 어떤 기도를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냥 기도대신 나의 흔적 사진을 남기기로 하고 내려왔다.


하이델베르크 고성에서 바라본 하이델베르크 전경


1년 후 오늘 나는 지금 그때의 도서관 하이델베르크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집 근처에 있는 도서관으로 여행을 간다. 오래전에 나는 나의 결심을 지켜 줄 하이델베르크 대학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퇴사 후 나는 도서관 대신에 집에서 모든 것을 하려고 했었다. 동네 도서관에 가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명확하게 정리가 안되어 있어 도서관으로 가서 해결하자는 마음을 먹고 가기 시작했다. 내가 자주 가는 도서관 화장실 앞에 이런 문구가 있다.


보개도서관 벽에 붙인 문구
모든 방법이 실패하면 포기하고 도서관에 갈 것


꼭 나한테 하는 말 같았다. 그래서 내 생각을 정리도 하고 다시 집중하기 위해 오래전에 도서관에서 공부했던 것처럼 별다른 일이 없을 때 배낭을 가지고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더 좋은 곳은 저녁때 내가 수영하는 곳이 도서관 코 앞이다. 마치 크리스마스 마켓이 하이델베르크 도서관 바로 앞이었던 것처럼. 처음에 도서관에 갔을 때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집보다 편한 곳이 되었다.

안성 보개도서관 내부

공부를 하다 창밖으로 해지는 모습을 보면서 나한테 이렇게 다독이면서 칭찬을 한다.

오늘 하루도 잘 견디었고 수고했어.


보개도서관 창 밖 풍경

이렇게 나는 다신 예전처럼 도서관에서 버티어서 시험을 치렀던 것처럼 다시 버티고 일어나는 연습을 한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버틴다.


작가의 이전글 드디어 하이델베르크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