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21)
1년 전 오늘 나는 지쳐있던 나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나의 제2의 고향 하이델베르크에서 7박 8일의 일정을 준비했다. 하지만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서 7박 8일을 보낸다는 것은 돈이 없는 백수인 나에게 버거운 일이었다. 하이델베르크는 관광도시이기에 숙박비가 다른 지역보다 비쌌다. 코로나 이전에 하기휴가 때마다 독일에 가서 하이델베르크에 들려 1박 2일 머무르긴 했지만 여행자에게 있어 하이델베르크는 인색하다. 하이델베르크 구시가지에는 깨끗한 신축건물로 된 호텔이 아닌 거의 몇백 년 된 오래된 건물이다. 엘리베이터도 거의 없는 건물이기에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끙끙대며 삐그덕 거리는 나무계단에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올려야 한다. 그리고 구시가지에는 호프집이 많아 밤에도 시끄럽다. 왜냐하면 하이델베르크 대학 기숙사도 있어 밤이면 호프집에서 술을 마시고 떠드는 젊은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호텔비도 다른 대도시에 있는 호텔비 보다 2~3배 비싸다. 하이델베르크는 학생들에게는 천국이지만 여행객에는 인색한 도시인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하루에 100유로가 넘는 하이델베르크 호텔비를 감당할 능력이 되지 않아 하이델베르크 근처 넥카강변에 있는 에버바흐라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을 택했다. 이 동네는 너무 작아서 1박에 45유로, 그런데 방 하나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침실, 거실, 주방, 작은방과 테라스 마당까지 내가 다 사용할 수 있어 백수인 나에게는 딱이었다. 그리고 시골 마을이어 조용하고 그냥 집처럼 편안한 그런 곳이었다. 내가 7박 8일 동안 지냈던 에버바흐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기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넥카 강변에 있는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이다.
내가 머물렀던 곳은 노부부가 운영하는 펜션과 같은 곳인데 오래된 독일집 중에 하나다. 여기서 독일 가정의 문화를 제대로 체험할 수 있었다. 솔직히 독일에 오래 살았었지만 독일인 가정에서 살아 본 적은 없다. 그냥 기숙사에서 독일인이나 외국인 학생들과 공동으로 살아본 경험 밖에 없다. 그런데 7박 8일을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독일 사람들의 가정을 엿볼 수 있었다. 그냥 집주인의 2층 독채를 내가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집 살림살이도 내가 이용했기에 이때만큼 나는 여기서 여행자가 아닌 그냥 이 집에 사는 사람처럼 편안하게 지냈다. 무엇보다 세탁기를 사용할 수 있어 좋았다. 이탈리아 여행 때는 거지처럼 옷을 며칠 씩 입고 속옷과 양말만 손빨래로 해결했었지만 여기서는 그럴 필요 없이 그냥 깨끗한 옷을 입을 수 있어 나는 이 시골집에서의 여행이 너무 좋았다.
전형적인 독일 노부부가 운영하는 이 펜션. 그냥 외갓집 같았다. 잠자고 싶으면 자고 나가고 싶으면 나가도 되고. 가끔씩 이것저것 챙겨주는 주인집 할머니와 할아버지. 다만 교통이 불편하다는 점. 그것이 아쉬웠지만 배낭만 없으면 마을 센터까지 또 기차역까지 산책하는 즐거움도 있고 가끔 기차역까지 데려다주시는 착한 주인할아버지도 있어서 여기에 머무르는 동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이 작은 독일 시골 마을 에버바흐.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오래전에 하이델베르크에 살았어도 이 시골마을에 올 일이 없었다. 기숙사도 학교 근처 모든 것을 학교 근처에서 해결했기에 이러한 작은 마을이 있는지도 몰랐다. 에버바흐 (Eberbach)는 인구가 1만 5천 명도 안 되는 작은 도시이지만 중세시대부터 와인과 목재로 유명했다. 이 마을에 있는 성당과 시청 그리고 수도원이 거의 13세기에 지어졌다.
1년 전 오늘이었던 이 날 나는 특별한 여행지로 떠나지 않고 그냥 집에서 동네 산책하듯이 이 작은 마을을 둘러보았다. 집주인 할머니가 알려주신 산책길을 따라 넥카강 옆에 있는 산길을 이용하여 마을 시내로 걸어갔다. 한적한 오솔길에서 늦가을을 품고 있는 넥카강을 보면서 걷는데 낯설지가 않았다. 처음인데 처음 같지 않은 이 기분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이때만큼은 나는 여행자가 아니다. 그냥 여기에 사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걷고 걸어서 마을 광장까지 도착하여 마을을 둘러보았다. 너무 작은 마을이어 관광객도 없고 이 마을에는 외국인 보이지 않고 독일 사람만 거리에 보였다. 관광지는 아니지만 전형적인 독일 모습을 담은 그림 같은 시골마을. 캘린더에서만 볼 수 있을 듯한 그런 풍경을 가진 곳이 에버바흐인 것 같다.
이 마을은 아직 크리스마스 마켓이 개장이 되지 않았지만 에버바흐 교회 앞 광장에서 크리스마스 시장을 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나는 이 날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린 줄 알고 시장에서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집 밖으로 나온 것인데 아직 개장 전이었다. 할 수 없이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식당을 이용했다.
호프처럼 보이는 작은 식당에서 나는 전형적인 독일 음식 슈니첼과 감자를 먹었다. 오래전 독일 특히 대학 식당에서 질리게 먹었던 슈니첼. 오래간만에 먹어서인지 아니면 배고파서였는지 낯설지도 않고 진짜 맛나게 먹었다. 마치 고향집에서 집밥을 먹은 것처럼.
고향이라는 것은 별 것 아닌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이 고향이 아니라 나의 추억과 기억이 머물러 있는 곳. 익숙함이 남아 있는 곳 그런 곳이 고향인 것 같다. 내가 태어난 곳은 서울 오류동이지만 전혀 기억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한 번도 와보지 않았던 처음이었던 이 독일 작은 시골마을 에버바흐는 그냥 나의 추억을 불러준다. 잊고 있던 기억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준다. 그리고 모든 것이 낯설지 않다. 낯설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편해서 이지 않을까?
그때 이후 1년이 지난 오늘 나는 그때처럼 길을 걷는다. 이곳에 태어나지 않았지만 이제는 낯설지 않은 공원을 걸으면서 나의 하루를 시작한다. 하루를 잘 시작할 수 있기 위해 걷지만 또 살기 위해 걷기도 한다. 왜냐하면 나는 나 자신을 혼자 돌봐야 하기에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 나를 챙기는 방법은 딱 하나. 운동이다. 몸이 건강해야 내가 버틸 수 있기에 이렇게 걷는다. 이 걸음이 익숙해질 때까지 나는 계속 걸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