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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 시골마을에서 돈 아끼려다 눈보라에 길 잃은 나그네

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반백살 싱글언니가 아무도 없는 외딴 체코 시골마을에서 생존하는 법


1년 전 이 날은 체코 카를로비바리 (칼스바드)에서 체스키크롬포트를 가기 위해 중간지점에서 호텔을 예약했었다. 보통 프라하에서 버스를 갈아타야 한다. 하지만 이미 독일에서 체코로 들어왔을 때 프라하로 들어왔기에 이미 프라하를 3일 동안 충분히 보았다. 그리고 체코 마지막 코스로 독일로 다시 들어가려면 프라하에서 버스를 타고 프랑크푸르트에 가야기 때문에 체스키크롬포트를 가기 위해 프라하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또 크리스마스 직전이어 프라하 호텔비가 처음에 묵었을 때보다 네 배가 올랐기에 백수인 내가 감당하기에는 버거웠다. 그래서 나름 잔머리를 써서 유럽 플렉스 버스 경유지와 가까운 가성비 좋은 시골마을에 있는 호텔로 1박 2일 예약했다. 더욱 이 호텔은 스파도 있고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버스정류장과 호텔은 약 5킬로 떨어져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안성에서 5킬로면 차로 5분이면 간다. 그래서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시골마을에서 택시를 타면 될 줄 알았다. 이미 호텔을 예약할 때 구글지도로 확인했을 때는 이 정거장에서 호텔로 가는 버스가 없다.  


버스가 없으면 어때? 택시 타면 되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예약을 한 것이다.


그리고 카를로비바리에서 이 호텔을 가기 위해 플랙스 버스를 탔다. 나는 이 플랙스 버스가 너무 좋았다. 유럽여행을 하는 돈 없는 배낭여행객에 있어 플랙스 버스는 최고의 선물이다. 그냥 핸드폰에서 며칠 전에 예약하면 아주 저렴하게 유럽 곳곳을 갈 수 있다. 단지 비행기 대신 버스를 타는 것이니 시간이 많이 걸릴 뿐.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프라하까지 버스로만 8시간 그것도 괜찮았다. 버스요금도 미리만 하면 20유로, 한국돈으로 2만 5천 원에 독일에서 프라하를 갈 수 있다. 그리고  2층 버스로 된 플렉스 버스는 화장실도 구비되어 있다. 

배낭여행객에게 가성비 좋은 플렉스 버스

암튼 가성비 좋은 플렉스 버스만 믿고 여행을 했다. 호텔도 플렉스 버스 정거장에서 5km 정도밖에 안 되는 곳으로 예약한 것이다. 


5km란?

5km 란 숫자는 항상 상대적이다. 여기 안성에서는 그냥 5분 거리, 서울 한복판 외대 쪽에서는 50분 거리. 


그럼 이름도 모르는 체코 시골에서 5km는?


그 믿고 탔던 플랙스 버스가 나를 정류장 이곳으로 데려다 줄 때는 눈보라가 쳤다. 그래도 버스에서 내리기 전까지 난 아무 걱정이 없었다. 왜냐고? 그냥 택시를 타면 되니까.


하지만 버스 운전기사는 터미널 같은 정류장으로 나를 인도한 것이 아니었다. 그냥 진짜 황무지 같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벌판에 나를 내려주었다. 누가 봐도 버스정류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우리나라 시내버스정거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냥 만주벌판에 "H"라고만 쓰여있는 팻말. 이게 다였다. 


기가 막혔다. 주변을 둘러봐도 아무것도 없었다. 위를 쳐다보면 그냥 고속도로 같은 곳에 차들만 가끔 다니고. 집도 안 보이고, 사람도 없었다. 그냥 눈보라 치는 황량한 벌판. 

눈보라 치는 체코 시골 마을 루네베츠

눈은 내리고 막막했다. 일단 길 따라 무거운 배낭과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내려가기로 했다. 그냥 이 벌판에서 얼어 죽을 수는 없었기에. 마을을 찾으러 그냥 걸어갔다. 이 때는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무작정 걸었다. 살기 위해서 걸었다. 


눈길에는 어깨에 맨 배낭보다 캐리어가 더 힘들다. 무겁고 힘들더라도 그래도 걸어야만 했다. 일단 칼바람처럼 매서운 눈보라를 피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구글지도를 검색할 상황도 못되었다. 걷다 보니 한 집, 한 집이 보였고 교회종탑이 보였다. 일단 교회를 보니 안심이 되었다. 왜냐하면 유럽에서 교회 앞에 광장이 있으니 당연히 버스정류장이나 택시, 식당도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했었다.


그래서 저 멀리 보이는 교회를 찾아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내렸갔다. 가는 길에 염소인지, 양인지 사람 없는 곳에 낯선 사람인 나를 보고 울고 난리를 친다. 


진짜 울고 싶은 것인 나인데 왜 염소들이 울지?


나를 보고 울어대는 체코 시골 마을 염소


울든말든 그 애들을 그냥 무시하고 길을 따라 드디어 기대하던 교회 앞에 도착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식당도 없다. 근처에 식당이 하나 있었지만 일요일이어 문을 닫았다. 일요일이면 교회에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교회 문도 닫혔다. 오전 11시면 한국에서는 예배시간이다. 그런데 이 교회는 문을 닫았다.

문 잠근 체코 시골교회

식당도 문을 닫고 사람도 없고. 답답했다. 나는 일단 교회 앞 횡단보도를 건너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그때서야 구글지도를 검색했다. 당연히 버스도 없고, 우버도 없다. 어디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방법도 몰랐다.


체코는 독일보다 더 추웠다. 칼바람 눈보라에 그냥 멍하게 한참을 서있었다. 그러더니 체코 할머니와 어느 젊은 부부가 내 앞을 지나가면서 나를 쳐다보았다. 


그때 나는 절박했다. 꼭 얼어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챙겨 온 핫팩도 맹추위에 온기가 식은 지 오래다. 이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그냥 다짜고짜 '택시'라고만 물어봤다.


세 명 중 젊은 여자가 나에게 뭐라고 한다. 당연히 못 알아듣는다. 구글 번역기 사용할 여력도 없었다. 손하나 까딱 하는 것도 동상에 걸릴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택시'만 반복했다. 그러더니 이 젊은 여자는 할머니와 남편 같은 사람에게 뭔가 말하더니 그들을 먼저 보내고 나에게 다시 뭐라 뭐라 한다. 영어도 통하지 않았다. 나한테 짧은 영어로 딱 세 가지만 물었다.


Korea? Japan? China?


나는 당연히 "Korea"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싱긋 웃더니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보여준다. 삼성갤릭시다. 솔직히 난 추워 죽겠는데 삼성 갤럭시 보면서 애국심이 떠오르지는 않았다. 그냥 택시만 타고 싶었다. 


암튼 이 친절한 체코 아주머니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뭔가를 찾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나에게 자신의 핸드폰을 보여준다. 이 아주머니는 구글번역기를 사용해서 한글로 된 문자를 나한테 보여준 것이다. 


"이곳에는 택시가 없어요. 호출해야만 오거든요. 그런데 어디 찾으세요?"


나는 호텔주소지를 보여주었다. 그러더니 또 이 아주머니는 문자를 적더니 다시 보여준다. 자신이 직접 택시회사에 전화를 해보겠다고.


나는 고개만 끄덕끄덕이면서 "Thank you."라고만 여러 번 말했다. 이 아주머니는 자신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더니 다시 나에게 뭔가를 말하면서 문자로 적어준다. 택시가 올 수는 있는데 카드도 안되고 체코 화폐 코루나만 된다고 한다. 택시비도 그냥 딱 정해졌다. 내가 예약한 호텔비의 세배 비싸다. 버스 정류장에서 5km 밖에 안되는데... 그래도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나는 이 아주머니에게 "OK"라고 말을 했다. 이 친절한 아주머니는 전화로 뭐라 뭐라 하더니 끊고 다시 문자를 적는다. 


30분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러면 택시가 여기로 올 거예요.
저는 BTS를 좋아해요


아! BTS가 나를 구해준 것이다. 


이 친절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나한테 문자를 보여주고 "Bye"하면서 집으로 갔다. 


이 친절한 체코 시골 아주머니 덕분에 나는 구사일생으로 택시를 타고 예약해 둔 호텔에 도착했다. 거리는 5km여서 5분 거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눈보라 치는 좁고 좁은 도로에서 5km는 30분 거리였다. 


아무튼 험난한 경로를 거쳐 도착한 호텔이 있는 마을도 작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 같았다.

   

호텔이 있는 체코 시골마을 포드보르자니

사람이 죽으라는 없는 법은 없다. 살기 위해 기를 쓰면 이렇게 사람 없는 곳에서도 친절한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앞이 캄캄하고 막막하지만 간절하게 바라면 이루어지는 것 같다. 마치 내가 체코 아주머니를 만난 것처럼.


체코 시골 마을에서

이러한 진리는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답이 없는 것 같이 막막한 것 같은데도 무엇인가 간절하게 바라고 연습하면 길이 하나씩 하나씩 보인다.

 

나는 지금까지 50 넘게 살아오면서 내가 하기 싫었던 것이 3가지가 있다. 독서, 글쓰기 그리고 운동이었다. 책보다는 드라마를 더 좋아했고, 글 쓰는 것보다 수다를 더 좋아한다. 운동은 그냥 싫었다.

이 세 가지 다 이제는 살기 위해서 하고 있다. 책을 처음 읽을 때는 글자가 내 눈앞에서 빙빙 돌았다. 또 블로그에 글 하나 작성할 때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지금도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니 이제를 책을 사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고, 또 어느덧 브런치에도 합격을 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운동은 아직도 소질이 없다. 몇 년 전부터 수영을 계속해왔지만 잘하지는 못한다. 수영도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반백살 싱글언니여서 내 몸은 내가 스스로 챙겨야 하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 수영을 한다. 처음에는 반바퀴 25m 도는데도 헉헉거리면서 쉬면서 수다를 떨었다. 같이 수영하는 사람들이 수영하면서는 헉헉거리는데 수다 떨 때는 쌩쌩하다고 한다. 그 헉헉거리면서 반바퀴를 돌던 수영도 계속 꾸준히 연습을 하다 보니 이제는 두어 바퀴 쉬지 않고 돌 수 있다. 


엊그제는 수영 다이빙 연습을 하면서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수영쌤이 자신감을 갖고 그냥 팔을 쭉 뻗어서 올려 버티어야지, 팔을 아래로 내리니까 바닥에 박힌 것이라고 뭐라고 한다. 


그렇다. 편한다고 팔을 내리면 바닥을 치고 부딪히는 것이다. 힘들더라도 위로 뻗어야 한다.


이 진리는 인생이나 수영이나 같다. 잠깐 힘들다고 내리면 인생길도 바닥을 친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을 꾹 참고 위를 향해 뻗어야 한다. 더 나은 나를 위해 버티어야 한다.
안성맞춤랜드 겨울호수에서 자유롭게 수영하는 거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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