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백살 싱글언니 시간여행 (24)
1년 전 오늘 나는 하이델베르크에서 가까운 낭만의 도시로 유명한 슈베칭엔에 가기 위해 숙소에서 일찍 나셨다. 슈베칭엔은 하이델베르크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하이델베르크에서 10km 정도 떨어져 있고 대중교통으로도 20분 밖에 안 걸릴 정도도 아주 가깝다. 하이델베르크 중앙역이나 비스마르크 광장에서 그냥 버스 100번 번 타면 바로 슈베칭엔에 갈 수 있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인데 하이델베르크에 오랫동안 살았으면서도 꽃의 도시로 유명한 슈베칭엔을 가 본 적이 없다. 그냥 나중으로 계속 미루었다. 미루고 미룬 것이 20년 도 훨씬 지나서 작년 오늘 이 날에 여기로 간 것이다. 하이델베르크에서 공부할 때 친구들이 슈베칭엔에 같이 가보자고 여러 번 말을 했었다. 심지어 친하게 지내던 타이완 친구 칭팡은 슈베칭엔 바로 옆 하이델베르크 에펠하임에 살았다. 그런데도 그때는 가보지 못했다. 아마 그때도 지금처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하이델베르크 중앙역 근처에서 버스를 타고 친구가 살았던 에펠하임을 지나 슈베칭엔으로 가면서 친구와 톡으로 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실시간 보냈다. 왜냐하면 그 친구도 졸업 후 하이델베르크를 떠나 타이완에 정착한 지 20년이 훨씬 넘었기 때문에 나처럼 하이델베르크를 그리워한다.
슈베칭엔에는 17세기, 18세기에 지어진 로코코 양식의 궁전과 정원으로 유명하다. 특히 슈베칭엔 궁전 안에 있는 정원은 프랑스 파리에 있는 베르사유 정원을 본떠서 만들었기에 더 예쁘다. 그래서 슈베칭엔은 봄과 여름에 꽃으로 가득하다. 그래서 여름에 이 작은 도시는 여행객으로 가득하다. 그런데 꽃의 도시, 꽃의 궁전으로 유명한 이곳을 나는 꽃이 지는 11월 말 겨울에 왔으니 꽃을 볼 수는 없었다. 꽃대신에 나뭇잎이 다 떨어진 썰렁한 나뭇잎을 보러 왔으니. 오래전에 파리에 있는 베르사유 궁전을 갔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도 추운 2월에 동생과 함께 기차로 하이델베르크에서 파리에 갔다. 그 유명한 베르사유 정원에 들었갔을 때도 작년 오늘처럼 썰렁한 나뭇가지만 보았다. 남들은 예쁘다고 하는데 그때 나는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차디찬 찬 나뭇바람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
11월 마지막날인 슈베칭엔 궁전도 오래전 파리의 베르사유 궁전처럼 매서운 칼바람이 나를 반겼지만 들어가는 입장료는 비쌌다. 겨울에 정원을 구경하는 것인데도 무려 6유로! 6유로이면 크리스마스 시장에서 따뜻한 글루와인과 소시지빵을 하나 사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파리 물가처럼 비싼 슈베칭엔 입장료. 하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안 들어갈 수는 없었다.
비싼 티켓과 오래전 비싸게 들어간 베르사유 궁전의 그 앙상함의 기억 때문에 살짝 고민도 했다. 궁전을 들어가지 말고 슈베칭엔 마을만 둘러볼까 이런 생각도 했었다. 왜냐하면 슈베칭엔 궁전 앞에 있는 광장과 마을도 아기자기하고 크리스마스 시장을 준비하고 있었기에 궁전 밖이 더 나을 듯했다.
하지만 이때 아니면 또 언제 올 수 있는지 몰라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기로 했다. 그리고 이 날 아침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어 썰렁한 정원에서 가서 사진을 찍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슈베칭엔 궁전에 있는 정원 입구는 아기자기하다. 건물도 그다지 크지 않고 별장처럼 작고 귀엽다.
하지만 슈베칭엔 궁전에 있는 정원은 역시 비쌌지만 정원이 아니라 그냥 숲처럼 방대했다. 역시 예상했던 것처럼 나뭇가지에 잎이 떨어져 썰렁했다. 꽃은 당연히 없고.
정원에 썰렁한 나무들은 그냥 내가 요즘에 자주 산책하는 집 근처 공원과 비슷하다. 이 썰렁한 정원을 6유로나 주고 들어왔으니, 약간 후회도 했다.
하지만 후회는 하면 안 되기에 나는 이 비싼 슈베칭엔 정원을 돌면서 순간순간을 내 눈과 핸드폰에 담으려 했다. 그래도 파란 하늘이 나를 다독여 주는 것 같아 추운 겨울날의 앙상함도 괜찮았다.
썰렁한 공간을 지나 호수가 쪽으로 걸어가니 우리 동네 공원에서 더 자주 볼 수 있는 오리들이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걷다 보니 그래도 늦가을의 컬러를 남긴 나무들이 보였다. 앙상한 가지만 남아있는 나무들과 노랗고 빨간 늦가을의 나무들.
솔직히 추운 겨울 앙상한 나뭇가지만 보고 걷자니 내 신세가 처량 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좀 답답하기도 하고 나뭇잎이 다 떨어진 것처럼 내 마음의 무엇인가도 다 떨어진 것 같고. 자존심도 상하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 썰렁한 나무들도 아직 단풍으로 가득한 나무들과 함께 어울려 있으니 부족한 부분을 메워주는 것 같았다.
이 모습들이 꼭 나를 위로해 준 것 같았다. 마치 나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주는 것처럼. 퇴사 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비행기 타고 유럽으로 날아왔지만 방황은 계속되었다. 계속 허전하고 무엇인가 계속 없어지는 것 같고. 당연하다. 돈과 시간이 계속 없어졌으니. 그래도 이때 나의 허전한 마음을 채워준 것은 그때 그 친구들이었다. 서로 다른 곳 베트남과 타이완 그리고 나는 이때 하이델베르크에 있었다. 하지만 오랜 전의 추억을 우리는 공유할 수 있었기에 나의 심정을 그 친구들은 안다. 내가 그때의 암담한 심정을 가지고 있어 내색은 안 했지만 그 친구들은 안다. 그 친구들도 그다지 꼬치꼬치 묻지 않는다.
너 괜찮아?
괜찮지 않은 사람에게 괜찮냐고 물어보면 당사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또 고민한다. 그래서 우리는 묻지 않는다.
질문 대신에 내 눈에 보이는 것을 보여주면서 수다를 떤다. 그때 그 시절 힘들게 공부했던 시절을 떠올리면서 수다를 떨다 보면 나 자신이 어느새 위로를 받게 된다. 그리고 또 이런 생각으로 나를 다독인다.
그래!
그때도 힘들었지만 잘 넘겼고 통과했잖아.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너 나은 상황이니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래! 맞다. 위로는 남이 나한테 해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나한테 하는 위로가 진정한 위로다. 그래야 내가 무엇인가 할 수 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때랑 지금이랑 나 자신이 방황하는 것은 바뀌지 않았다. 주저앉고 싶기도 하고.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그러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나는 또다시 나 자신과 대화를 한다. 1년 후의 나의 모습을 그리면서 나를 다독이며 위로를 한다. 마치 1년 전 오늘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