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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01. 2024

2024년 새해를 맞으며.

평소와 다름 없는 이른 아침에.

어느덧 해가 바뀌어 2024년이 되었다. 자동차가 날아다니고 우주여행을 하고, 안드로이드가 사람과 구분이 안되는 2020원더키드나 2019년 배경의 블레이드 러너에서의 시간도 이미 지나버렸다. 2024년 하니 정말 미래를 살고 있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내겐 숫자만 바뀌었을 뿐, 달라진걸 아직 체감하진 못하겠다.



어제는 예상치못한 이벤트가 있었다. 두아이의 엄마로서 어린이집 선생님들의 휴가주간인 요즘 예의상 한주는 가정보육을 해야했기에 크리스마스 전후로 아이들은 집에 있었다. 임신 중기라는 핑계로 거의 집콕이었던 가정보육기간이 끝날 무렵이던 어제, 둘째 아이가 배가 아프다며 울면서 잠에서 깨는 바람에 난데없이 응급실에 다녀오게 되었다. 병원에서 관장을 하고, 집에와서 졸다가 자다가 쉬다가 티브이 보다가 결국에는 상태가 나아진 것은 같은데, 원인을 모르니 아이가 나아진 것은 순전히 운같이 느껴진다. 내가 의사가 아니니 아이가 아프다고 하는 것만큼 난감한 일도 없는 것 같다. 무얼 어떻게 해줘야할지 모르는 채로 마음만 조릴 뿐이다. 다시 그런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안그럴 가능성이 더 클테니, 앞으로는 내가 좀 더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게 나을 것 같다.



해가 바뀐 김에 지난해인 2023년을 돌아본다. 많은 것을 하지는 못했지만 원하는 것은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첫 경매로 집을 장만하고 집을 리모델링해서 이사를 한 것. 아빠가 좀 도와주셨을 뿐, 혼자서 아이들 등하원 사이의 시간에 원거리를 왔다갔다하며 집을 뜯어 고친 것은 유튜브에서 보는 것만큼 뚝딱뚝딱 아름답게 진행되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 들기도 어려울 정도의 단열재 갖다 붙이고, 손에 굳은살이 베기도록 온 벽을 둘러서 몰딩과 걸레받이 잘라 붙이고 하며 고군분투한 시간은, 다시는 이짓을 하고 싶지 않다 싶을 정도로 징한 기억으로 남았다. 하지만 구석구석 내 손길이 닿지 않은 데가 없다는게 이 집이 진정 내 집이구나 싶어 뿌듯하기는 하다. 이런 집에서 곧 이사를 또 가야한다니 우리가 만들어가는 운명은 참 장난같구나 싶다.



경매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어쩌다보니 한국어교원자격증 2급 수업도 같이 듣게되었다. 한국어가 너무 어려워 두 학기중 한학기 듣고 쉬고 있고, 끝을 맺어 자격증을 내손에 쥐게될 수 있을런지는 알 수 없지만 한학기를 다 마치긴 하였다.



마지막으로 지난해 이룬 가장 큰 성과(?)는 셋째를 가진 것이다. 둘째가 만 3세 반이되는 시점에 겨우 임신이 되었다. 아이를 갖고자 시도한지 1년만이다. 남편이 지방에서 휴일도 없이 일하느라 한달에 집에 한두번 정도 오는 편이라 별을 따기도 어려웠고, 나이가 든 건지, 2년동안의 채식으로 몸이 약해진 건지 임신이 잘 되지 않았다. 둘째아이 때도 그랬지만,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좀 회복하고 임신이 된게 아닌가 싶다.



지난 해 가장 아쉬운 것은 책을 별로 못 읽은 것이다. 다른 일들에 신경을 많이 썼고, 하반기에 임신 이후로는 몸이 안좋다며 쇼파나 식탁의자와 혼연일체가 되어 넷플릭스 추천드라마를 다 꾀고 있을 정도로 핸드폰만 들여다 보았다. 나중에는 결국 더이상 재밌는 것을 찾을 수가 없어서 구독을 해지하기에 이르렀다. 입덧이 좀 나아지고, 아이들 밥차려 주는 것도 겨우 해내고 있는 내가 너무도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만 같아 시작한 일이 책읽기였다. 여태 빌려서 읽지도 않고 반납했던 돈버는 방법에 관한 책이 아니라, 진정 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책.



책읽기에 불을 지핀 것은 유튜브에서 알게된 아넷맘이었다. 아들 넷 맘. 첫째 아들과 세쌍둥이, 그렇게 넷을 뉴질랜드에서 거의 홀로 키우는 엄마다. 그전까지는 그냥 영상을 좀 솔직하고 재밌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보아왔었다. 그런데 언뜻 육아 중 책을 두권이나 냈다는 걸 보고, 그 책들이 궁금해서 안볼 수가 없었다. 절판인 첫번째 책은 어렵게 손품을 팔아가면서 결국 두권이 내 손에 들리게 되었다. 두권다 정독을 하진 않았지만, 책을 읽고 느끼는 게 많았다. 그 책은 그 뒤에 읽게될 숙명적으로 책읽고 글을 쓰게 되는 엄마들의 첫 책이었던 것이다. 그 책을 읽고 육아의 일상에서 도저히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엄마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그리고 글이 사람에게 무슨 작용을 하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언뜻, 나도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쳤을 때 내 꿈은 원대해졌다. 돈 한푼 벌지 못하고 남편에게 기대어 사는 내 신세, 내 머릿속에서 나온 창작물로 소득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가, 남편에게 좀 더 큰소리치고 살 수 있을텐데, 하면서, 나도 책을 쓰고 싶다, 출판작가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이제껏 큰 관심이 없던 글쓰기를 시작해보려고 하면서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브런치의 문도 두드려보고, 평소의 나답지 않게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는지도 관심있게 들여다보았다. 몰랐지만 브런치에는 브런치 작가로 활동하다가 책을 낸 사람들이 꽤 있었다. 앞서말한 아넷맘도 그랬을 것이다. 그뒤로 읽은 또 한명의 글쓰는 엄마 '질문이 될 시간'의 임희정 작가도 그렇고 말이다. 그들은 무슨 이야기를 써서 책을 냈을까? 대부분의 글은 자기 자신에게서 출발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기의 가장 깊은 곳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그 이야기는 자신을 그렇게 뒤흔들어 놓기에 글로라도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나도 내게서 그런 것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내 안에는 글이 될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동생의 죽음이라는 내게는 거대한 트라우마가 20년이상 나를 지배해왔다. 요즘 이 이야기를 써볼까 싶어서 모니터 앞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백지를 채워나가다보니 내 마음 속에 얽힌 실타래는 내 생각보다 복잡하다는 걸 알게 됐다. 글쓰기가 아니라 정신과 상담이 적합한건 아닐까 싶기도 다. 어디가서 임금님귀는 당나귀 하듯이 나도 뭔가 외치고 싶다. 이 긴 가정보육의 시간이 끝나면 다시 생각해보자, 써보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가장 먼저 버려야할 것은 책을 내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 도통 글이 되어 나오지 않는데,좋은 글을 쓰려는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렇게도 저렇게도 막 써보자. 막 쓰다보면 길이 열릴 수도 있겠지.  



갑분 2024년 새해맞이로 돌아간다. 올해는 책과 글과 좀 더 친해지는 한해가 되고자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망은 나와 아이가 모두 건강하게 출산을 해내는 것이다. 매번 수술전에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서류에 서명을 한다. 겁이 많은 나는 실제로 그런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싶어서, 수술후 눈을 뜨는 순간이 그렇게 안도가 될 수 없었다. (수술후에도 한동안 지켜봐야한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건강하게 출산을 한다면, 그리고 지겹도록 내 의지를 갉아먹고 나를 괴롭히는 입덧이 비소로 출산과 함께 없어진다면, 나는 병원에서 맛있는 첫끼 동시에 다시 강한 엄마가 되겠다는 확신의 의지를 불태울 수 있을 것이다. 입덧없는 첫끼를 기다리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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