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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13. 2024

정말 우주로 가버린 남편과의 대화.

언젠가 우리도 통할 날이 오겠지.


어제 친정엄마가 아이들을 데리고 친척집에 갔다. 거기서 하루 자고온다고 한다. 나는 퇴근해서 돌아온 남편과 아주 오랜만에 둘이서 저녁을 맞게 되었다. 각자 자신의 저녁을 준비해서 얼굴을 마주하고 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 나를 위해 사둔 딸기를 씻어서 남편과 나누었다. 그리고 남편은, 자신이 최근 투자한 한국한공우주 등 주식 이야기를 하다가 이야기는 먼 우주로 갔다. 말그대로 우주였다. 앞으로 우주 개발이 활발할거라며.. 우주에는 광물이 많고, 우주엔 산소가 없기에 그것을 지구에서처럼 어렵게 채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내겐 또 생소한 이야기였다. 우주에 지구에서처럼 광물이 존재한다는 것이 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우리가 모르는 우주에는 지구에서와는 전혀 다른 광물이 존재할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내 질문은 계속 이어졌다. 남편의 표정은 살짝 어이가 없어진다. 지구도 우주의 속해있는 것이라며, 지구가 우주의 법칙을 따르듯 우주도 마찬가지란다. 인간이 연구해놓은 주기율표 상의 원소들이 우주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한다는 이야기였다. 우리가 모르는 존재의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우주에서, 우리가 모르는 광물이 존재할 여지는 없는 것인가보다. 내가 이해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선 주제이다.



내가 잘 이해를 못하는 것 같으니 남편의 달갑지 않은 설명이 계속 이어진다. 설명할수록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이 쌓인다. 잘 모르겠는 것을 잘 모르겠는 설명을 통해 이해하려니 급속도로 피곤해진다. 시간이 꽤 흘렀음에도 남편의 설명은 계속 이어지고, 시계를 보니 어느덧 아홉시.. 자야할 시간이 가까워진다. 자신의 설명에 지친 남편은 쇼파에 드러누우며 말을 많이하니 피곤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생각났다는듯이, 앞으로 우주개발이 활발할 것이기에 우주관련 주식에 투자를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내게 해주고 싶었다는 게 요점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또 누리호 이야기를 시작한다. 뭔가 이야기가 또 꼬리의 꼬리를 물것 같은 불길한 얘감이 든다. 나는 됐다며, 피곤하다고 하니 그만 얘기하고 좀 쉬라고 말한다. 우리의 대화는 종종 이런 식이다. 겨우겨우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는 책을 좀 보다가 잘 준비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남편과 참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느낀다. 학교다닐때도 나는 과학이 어려웠다. 국어가 싫고 어려웠던 만큼 과학 또한 그랬다. 역사도 나는 싫고 어려웠다. 내가 가장 좋아한 과목은 수학이었고, 그것이 명료해서 좋아한 만큼 과학은 내게 그렇지 않았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잘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존재했다. 그것이 나의 노력의 부족인지, 지능의 부족인지 잘 모르겠다. 어제 남편이 언급해서 오랜만에 들어본, '작용반작용의 법칙' 등..(이게 뉴턴의 세가지 법칙 중 하나라고?) 아직도 잘 이해가 안간다. 물건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게 내겐 그냥 당연할 뿐, 그 안에 중력이 작용한다는 것도 이해 못할 일이다. 나는 보이지 않는 것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인간인 모양이다.  



남편은 내가 모르는 세상만사에 대해서 잘 이해하는 편인 것 같다. 대학교에서는 물리학을 공부했다고 하니, 한문학을 공부한 나와 얼마나 대척점에 있는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역사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고 잘 알고 있으며, 아이큐가 높다는데 그래서인지, 큰 흐름 정도만 이해하고 디테일은 잘 까먹는 나에 비해서 남편은 자잘한 사건의 이름, 발생한 이유, 인과관계같은 것도 잘 기억하는 편이다. 남편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내가 대화가 안될정도로 지능이 좀 떨어지는 건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날 이때까지 나는 타고난 나의 지능으로 문제없이 살아왔음에도 말이다. 이미 오래전에 대학교육을 마친 이 나이에 다시 지능에 대해 고민해야하는 것인가.



이것은 서로의 차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련다. 주지했듯 남편과 나는 다른 사람일 뿐, 남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게 내가 열등하다는 의미는 아니니까 말이다. (써놓고보니 급 눈물이..) 소위 말하는 남편은 이과적인 유형이고, 나는 문과적인 유형이라서 그런 것 아닐까. 내가 우주에 대해서 이해를 잘 못하듯, 남편은 내가 하는 드라마나 영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잘 공감하지 못다. 우린 그냥 다른 것이다. 아마 남편이 아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면 나는 좀 더 쉬운 언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남편에게 물어보지 말고 책을 통해 스스로 알아나가야겠다. (우주에 대해서 내가 알고 싶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남편은 불행하게도 나와 가장 대화가 안되는, 혹은 대화가 어려운 사람 중의 한명이다. 어쩌다 이런 사람과 결혼을 했을까 생각하면 헛웃음이 난다. 남편을 처음 만나던 날이 생각난다. 사실 나는 그의 외모에 첫눈에 반했는데, 그가 입을 벌리면 쏟아져나온 얘기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그것은 나를 좀 벙찌게 만들었다. 첫 만남에 한 이야기 중 유일하게 기억에 남는게 '힛펌프'이야기였다. 무엇인지는 정확히 모르겠다. 난방과 관련된 것 같은데..? 그 외에도 내가 잘 모르는, 그래서 잘은 기억이 안나는, 기술이나 과학에 대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늘어놓았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나의 남편은 참 한결같다.



내가 어쩌다 그런 남자와 결혼할 마음이 들었을까 생각해보면, 이렇게 대화가 잘 되지 않는 면도 이유가 되었던 것 같다. 억지스럽지만, 저렇게 어려운 말들을 하는 남자는, 나와 살면서 다른 여자와 마음이 통해서 나를 배신할 여지가 제로에 가까워보였기 때문이다. 만나자 마자 힛펌프이야기를 하는 남자에게 어떤 여자가 반할 수 있을까. 그는 공감능력도 떨어지고, 내게 보통의 여자가 꿈꾸는 다정다감함을 보여주지도 않지만, 나에 대해서만큼은 그의 마음이 늘 한결같음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을 안다. 그것으로 결혼할 이유는 충분하지 않겠냐..고 긍정적으로 글을 마무리해보련다. 간만에 맞은 우리 부부만의 자유시간이었는데 잘시간이 가까워져서야 '영화라도 한편 볼껄..' 하는 아쉬움이 몰려왔다. 근데 영화를 안보기도 잘했다. 남편은 나와 같이 영화를 보면 늘 도중에 잠들어버리는 사람이니 말이다. 살다보면 언젠가 우리가 편안히 뭔가를 공유할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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