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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25. 2024

'왜'라는 질문이 중요해진 시대에 읽어야할 책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김헌)를 읽고

소위 '철학'이라고 하면 나와는 멀고, 잘 모르겠지만 뭔가 어려운 것이라고 느끼는 사람은 나 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뭔가 중요한 것 같기는 한 이 철학을 학창시절에는 철학이 아닌 도덕이라던가 윤리라던가 하는 과목에서 배웠던 것 같은 어렴풋한 기억이 있고, 그 과목에서는 철학이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토론을 통해 우리가 당면한 현재 삶에 위치시키거나 할 기회는 당연히 없었다. 그저 '누가 언제 이런 말을 했고, 또 누구는 이런 말을 했고, 시험에 나오니 외외라.'라며 우리의 머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두통의 상징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철학이라는 것을 가깝게 느끼고 그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나가는 것을 즐길 사람이 적다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성인이 된 이후에도 철학과의 만남은 순탄하지 않았다. 지적 소양을 높여보고자 이름만 들어본 철학자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리기만 하고 그냥 반납했던 기억이 쌓이면서, 내게 철학은 철학자들만의, 그리고 몇몇 선택받은 사람들만 이해할 수 있는 영역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름 삶의 굴곡을 경험하고, 엄마가 되고, 불혹이 지나고 하다보니, 이제 삶에서는 떼쓰는 아이보다 더 두려운 것은 없다고 느껴지는 내게 그 어려웠던 '철학'을 다시 들여다볼 용기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지금의 내가 철학으로 쉽게 인도해줄 길잡이가 될 책을 만난 것도 운이라면 운이라 하겠다.


 그렇게 만나게 된 책이 바로 이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이다. 서울대 교수님의 철학책이라고 하면 느낄 사람들의 위화감을 고려하셨는지 책은 처음부터 에필로그 전까지 '~다'체가 아닌 '~입니다'체로, 마치 대학에 막 입학해서 아무것도 모른 채 얼떨결에 철학교양수업을 듣게된 신입생에게 설명하듯 쉬운 언어로 복잡하고 어려울 듯한 철학에 대해서 풀어냈다. 책에서 무엇보다 나를 이끌었고,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동기부여를 해주었던 것은 서문이었다. 이 책의 서문은 '인문학'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한다. '사람 인'과 '글월 문'의 조합으로 된 것이 '인문'이라는 단어인데, '문'이 중국 갑골문에서는 '사람에게 문신을 새기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인문'은 '사람의 무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뜻을 좀 더 확장해보면, 인문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남긴 자취라고도 볼 수 있고, 그렇기에 사람에 대한 학문인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는 이제 어떤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이어진다고 한다.


저자가 이렇게 길게 인문학의 정의에 대해 설명하는 이유는 인문학, 즉 사람에 관한 학문 안에 소위 문학, 역사, 철학의 세 분야가 있기에, 즉 인문학에 철학이 속해있기 때문이다. 알다시피 역사는 실제로 일어난 일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고, 문학은 인간됨에 초점을 두어 일어났을 법한, 일어날법한 일을 인간의 상상력으로 채운 창작물이다. 철학은 어떠한가? 철학은 인간이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할지, 인간의 행위의 당위성과 도덕에 대한 고민인 것이다. 이제껏 따로 따로 생각해왔던 학문의 분야를 인문학으로 묶고, 그 안에서의 철학을 생각하니, 철학이 우리에게 왜 중요한지, 우리가 왜 철학에 대해서 알고, 고민해보아야하는지를 알게되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통해서 앞으로 책에서 전개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알 수 있게 되었다. 그게 바로 저자의 의도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총 4부로 되어있는 본론에서는 말하자면 저자가 쉽게 풀어낸 그리스 철학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최초의 철학자라고 할 수 있는 '퓌타고라스'로부터 시작해서 시대순으로 주요하게 다루어져야할 철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들어보지 못한 철학자들이다. 최근의 연구 방향에 대한 언급도 나오는 것을 보면 잘 연구되지 않았지만 최근에야 주목받는 철학자들도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 싶다.


책에는 많은 철학자들을 다루고 있고, 각각의 철학자마다의 사상은 비슷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고, 물론 지금으로서는 이해할만한 내용도 있고 그렇지 않은 내용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누가 무엇을 이야기했는지를 기억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그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왜 철학자들이 그러한 주장을 하며 세상과 인간을 해석하고자 했는지를 우리가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철학자들이 스스로의 만족이나 지적인 고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현실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데서 철학이 출발했다는 점에서 놀라웠다. '전쟁터로 간 소크라테스'라는 제목도 그런 의미에서 붙여진 게 아닌가 한다. 제목에 언급된 소크라테스나, 그의 제자로 알려진 플라톤도 마찬가지로 당시에 끊임없이 이어지던 전쟁에도 참여하면서, 한 도시의 시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대화로서 상대방을 논리적으로 설득시킬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옳은 방향이 무엇인지, 그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할지를 고민했다는 점은, 몇 천 년 전에 살았던 철학자들이 참으로 현대적으로 느껴지게 한다.


책에서 또한 쉽게 와닿게 하는 것은 우리에게 어렵게 느껴질 그리스어로된 사람이름이나 단어의 그리스어 뜻을 풀이해 준 것이다. 예를들어 '소크라테스'라는 이름의 '소'는 '몸 성히 안전한'이라는 뜻이고 '크라테스'는 '튼튼하고 힘이 세다'라는 뜻으로, 두 단어로 이루어진 '소크라테스'는 신체가 돌과 쇠처럼 단단하다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스어 뜻을 풀어서 설명해주니 쉽게 다가오기도 당시에 사람들이 어떻게 이름을 지었는지가 이해되니 재밌게 느껴졌다.


책을 통해서 이해한 당시의 철학자의 중요한 역할은 교육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사상을 구축해서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이 깨달은 바를 설파하기도 하고, 나중에는 철학학교라고도 할 수 있는 아카데미를 설립해서 체계적으로 학생들을 지도한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교육은 사상이나 책에서만 머물렀던 것이 아니고, 왕이나 왕자를 교육하고 자문역할을 해서 그들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세상을 직접적으로 이롭게 하는 역할을 했던 것이다. 철학자들이 그렇게 교육기관을 설립한 것과 더불어서 당시에도 책을 쓰고, 도서관을 설립해서 교육의 기회를 넓혔다는 대목에서 감명을 받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철학자들의 가르침은 현대의 우리들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소크라테스는 '학생들의 마음, 정신에는 선생님이 가르쳐야할 모든 것이 이미 다 들어있다'고 믿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선생은 학생들에게 지식을 채워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잠재력을 길러주는 존재여야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러한 학생을 가능성의 존재로 보는 시각은 현대에 와서 더욱더 의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라떼'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학교에 다닐때까지만해도 기존의 학자들이 이루어놓은 것을 머릿속에 집어넣는 것이 교육이었다. 학생들의 머리는 백지이고, 학자들은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이 아는 것을 받아들여야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시대는 바뀌고 있다. 우리가 어렵게 외우고 시험에서 테스트 받던 그 지식은, 이제 더이상 어렵게 채울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인터넷에 몇자 두드리면 정보가 다 나오고, 심지어 지금은 '쳇 GTP'를 비롯한 인공지능이 우리를 대신에 지식을 조합해서 그럴싸한 글을 써주기도 하니까 말이다. 어렵게 영어 단어와 문법을 배워서 해석할 필요도 없어졌다. 아직 완벽하진 않아도 구글번역기가 우리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번역을 해준다. 인간에게 있어서 점점 지식을 채워넣는 능력은 갈수록 위협받고 있다. 앞으로는 단순한 지식을 통한 직업은 빠르게 사라져갈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떠한 교육을 해야할 것인가, 어떻게 미래를 대비해야할 것인가,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미래에 인공지능에 뒤지지 않고 '인간'만이 가진 능력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방법을 나는 철학이 제시해주리라고 생각한다. 앞으로는 '누가, 언제, 무엇을'했는지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왜'라고 물어야할 테니까 말이다. '왜'라는 것을 고민하고 '가치'를 고민하고 '당위'를 고민하는 것이 바로 철학의 사명이니까 말이다.


그 '왜'라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어린아이들도 아는 모양이다. 말이 좀 트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아이들은 끊임 없이 질문을 하고, 바로 '왜'냐고 묻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엄마이기에 당연히 우리의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었다. 앞서서 양적인 지식은 더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고 적긴 했지만, 지식을 전혀 습득하지 않는 교육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지식의 습득 과정에서도 뇌는 발달할테니까 말이다. 다만 앞으로 아이들을 대할때, 그들이 궁금해 하는 '왜'라는 질문에 나도 좀 더 진지해져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우리가 AI에 비해 좀 더 '인간적'일 수 있을까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과정에서 철학은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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