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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Jan 28. 2024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비평가

한때 내가 매료되었던 삶을 다시 그려보다.

⁠ '솔직한 삶의 감정으로서의 문학(Literatur als Lebensgerühl)'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번편은 라이히라니츠키가 독일에서 비평가로 자리잡아가고, 또한 짧은 시간에 인정받게되는 과정을 담았다. 그의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라서 자기자랑으로 비춰질 수 있는 우려를 조심스럽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서독에서 독보적인 비평가로 인정받는 과정을 서술하는 이유는 그가 자신의 문학비평을 대하는 자세와 관점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했음을, 그것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바가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이 편에서는 그가 당시에 비평가로서 썼던 몇몇 저서들에 대한 언급도 있어서 기억해두었다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 기록으로 남겨본다.


독일로 이주한 뒤 프랑크에서 살았던 그의 가족의 초반의 삶은 제대로된 가구도, 그릇도, 심지어 옷도 없을 정도로 빈약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먹고사는 문제였고, 거의 독일에 도착하자마자 여러 신문사나 라디오프로 등에서 급한대로 일은 받아서 먹고 살 수 있게 되었기에 그는 그의 상황에 불만은 없었다고 한다. 당시 그가 6개월 만에 곳곳에 기고한 비평글이 830편에 달한다고 하니 2-3일에 한편씩 글을 쓴 셈이다. 그는 주 7일을 쉬지않고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가족의 부양에 대한 무거운 짐 때문에 그랬으리라 생각되지만, 한편으로는 연고도 없이(있었다해도 홀로코스트로 대부분 희생되었을 테지만) 독일로 따라온 아내가 일주일 내내 일에만 매달리는 남편과의 삶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짧게 언급된 바로는 당시에 아내 토시아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힘든 상태였던 것 같다. 사실 그들이 겪은 일을 보면 오히려 라이히라니츠키처럼 일을 하며 사회생활을 해나아가는게 이상해보일 정도다.


그가 비평가로서 유명해지게된 몇몇 계기가 있었는데, 그는 폴란드에 있을 당시 주로 DDR(동독) 작가들과 교류를 했었기에 아마도 그 경험을 살린 것으로 보이는데, 그가 어느 신문사에 동독 작가를 다룬 시리즈를 제안한 것이다. 그것이 받아들여지고 시리즈를 연재하면서, 다른 신문사에서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제안해왔다고 한다. 사실 60년대 초반 서독에서 동독 작가들에 대해 쓰는 것은 우리로치면 북한 작가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일이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제목에 동독을 뜻하는 DDR나 '동독'이란 단어를 넣기를 꺼려했다고 하는데 결국 "엘베강 너머의 독일작가들'이라고 애둘러 표현한 제목으로 정해졌다고 한다. 여튼 서독에서 동독 작가를 다룬 첫 시도였다고 하니 논란도 되었겠지만 그만큼 역사적인 일로 남았을 것 같다.


당시 그가 독일에 간 직후 첫 일을 받은 곳은  '프랑크푸르트 신문'이었다. 독일에 도착해서 초반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살았기에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 같다. 그는 그 신문사의 성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Welt(세계)'와 '북독일 방송'이 있는 함부르크로 가서 그 두 매체와 일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가 일을 하고 싶었던 곳은 'Zeit(시간)'이라는 신문사였고, 그가 함부르크에서 왕성하게 활동을 해나가는 사이 Zeit신문사가 그에게 같이 일을 하자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얼마뒤 그는 Zeit신문사에 정규직으로 채용이 된다. 매달 받는 월급 이외에도 연금과 건강보험이 해결되는 자리로 말이다. 바라던 곳과 바라던 일을 하는 삶을 이루게 되어 당시 그는 참으로 기뻤을 거라고 생각이 든다.


1964년부터는 '문학적인 커피하우스'라는 방송을 하면서 한스 마이어와 함께 초대된 다른 한명의 유명한 작가들과 함께 문학작품이나 다른 다양한 분야에 대해 토론을 했다고 한다. 그는 1980년대에 한 동일 방송의 독서토론프로인 '문학적 사중주'라는 프로를 진행하게 된다. 글 뿐아니라 그런 방송진행의 계기로 그는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유명해진 게 아닌가 한다.


오만하게 비춰질 우려를 무릅쓰고 그가 왜 자신이 독일에서 문학비평가로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설명하는 부분에서, 당시의 문학비평은 학자들을 위한, 비평가들을 위한 학자와 비평가가 써낸 영역이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들과 다르게 대중을 염두에 두고, 대중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던 것이 성공의 이유라고 설명하고, 그것은 그가 폰테네나 하이네, 케어, 폴가, 야콥슨이나 토폴스키(누군지는 다 모르겠지만)같은 독일 비평가들에게서 배운 관점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재밌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는 비평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관점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하기위해서 종종 과장해서 설명하는 것도 허용된다고 말한다.


앞서 기록해두고 싶다고 했던 당시에 쓴 그의 저작을 중의 하나는 우선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의 쓰기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읽으면 좋을 작가들에 대한 책이다. 우리나라는 객관식으로 언어시험이 진행되지만 독일에서는 아닌 모양이다.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그에게 추천을 부탁한 계기가 그에게 책을 쓰는데 이르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1965년에 출간된 "발명된 진실(Erfundene Wahrheit)이라는 책인데 우리나라에 번역본이 출간됐을지 모르겠다. 이 책으로부터 5권의 20세기 독일문학비평전집같은 책이 탄생했다고 하는데, 그 책은 제목이 나와 있지 않아서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우선 저 발명된 진실이라는 책인 아마존에 있기에 장바구니에 담아놓았다.


이 책 외에도 그는 1970년에 독일 근현대 작가들을 총 망라하는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하는데, 당시 10년이 걸릴 여정이 될거라고 예상했다고 하는데, 막상 책은 25년이 걸려서 1994년에 출간되었다고 한다. 1/4세기가 걸린 아마도 대역작으로 추측되는 이 책의 제목은 '문학의 대변자들(Die Anwälte der Literatur)'이다. 이 책도 당연히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혹자는 그의 이 저작을 두고, 다른 이의 저작을 비평한 이 책속에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비평가 자신의 자화상과 자의식이 담겨 있다고 했다고 하는데, 라이히라니츠키는 이러한 언급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그 이유를 뒤이은 문단에서 찾을 수 있다.


문학은 나의 솔직한 삶의 감정(Lebensgefühl)이다. 그것은 나의 작가와 책에 대한 관점과 평가에서 드러난다. 결국 그것은 비평가에게 자신의 글을 쓰게 만들고, 소명를 다하게 만드는 문학에 대한 사랑이자 심지어는 엄청난 열정이니까 말이다. [...] 사람들은 이것을 충분히 반복해서 말하지 않는데 문학에 대한 사랑이 없이는 비평도 존재하지 않는다.



Lebensgefühl이라는 단어는 단어 조합으로만 보면 '삶+감정'이다. '솔직한 삶의 감정'이라고 번역하기는 했지만, 번역이 좀 어렵다. '내가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뜻도 있지만, '나를 살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의미로도 쓰이는 것 같아서 말이다. 위의 인용문에서는 '솔직한 삶의 감정'으로 번역을 했는데, 그가 삶과 문학에서 느끼는 관점이 고스란히 그의 비평에서 드러난다는 의미로 쓴 것이다. 더 나아가 나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비평가란 단순히 자신에게 주어진 작가의 작품의 좋고 나쁨을 평하는 사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라는 하나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예술가와 문학작가의 경우에서처럼, 그만의 관점으로 자신만의 비평세계를 창조해간다는 의미에서 그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과 인식의 뜻으로 Lebensgefühl이라는 단어를 이해하면 어떨까 생각한다.


나는 물론 비평가라고 하기는 어렵다. 책에 대해 쓰지만 서평가로 이름 붙이기도, 작가라고 하기에도 취미의 수준이다. 하지만 라이히라니츠키의 책에서 드러나는 비평가의 존재를, 대학교 졸업하고 사진을 하면서 사진집 서문에서 접하게 되었고, 그랬기에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도 정작 앞으로 하고 싶은 것으로 비평을 염두에 두고 독일 유학을 결심하며 독일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대학시절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깊었던 책도 김우창 교수님이 발간하셨던 계간지 '비평'이었다. 어느날 우연히 헌책방에서 '비평 2호'를 우연히 발견하고, 어떤 현상과 다른 이의 저작에 대해 자신의 시각을 담아 비판적으로 접근했던 그 잡지의 글들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인도하였다. 나는 그 분석적인 글들이 마음에 들었는데, 그것은 한편으로 내가 보고 듣고 읽은 어떤 것에 대해 내가 토를 달기를 좋아하는 인간이어서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관점을 관철시켜나가는 한편의 글에 대한 입체적인 구성이 나를 매료시켰다. 특히 그러한 점은 (완전히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김우창 선생님의 글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분의 글은 견고한 집을 부분부분 완성해가듯한, 씨실과 날실을 촘촘히 짜 나가듯한 시각적인 이미지가 그려지는 글이었는데, 그것을 읽는 것은,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맥락을 놓치게 되면 머릿속에서 다시 헝크러진 곳에서부터 실을 짜 나가야만 하는 복잡하지만, 흥미로운 활동이었다. 비평지는 폐간까지 거의다 모아두었는데, 아직도 친정집 지하실에 먼지 쌓인채로 고요히 누군가 펼쳐봐주길 기다리고 있다.


라이히라니츠키의 글을 읽으며 그때 내가 품었던 비평에 대한 생각을 다시 촘촘이 이어나가고 싶어진다. 누군가에게 돋보이는 존재가 아닌, 돋보이는 누군가를 뒤에서 자신만의 시각으로 차분히 바라보는 존재로서의 비평가, 이것은 마치 한때 내가 끌렸던 사진가의 존재와도 비슷하다. 나서기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잊혀지고 싶지도 않은, 마치 나라는 인간 자체같다.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자서전 '나의 인생'을 읽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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