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파리올림픽을 보며 새로운 현상을 목격했다. 올림픽에 트랜스젠더 여성이나 남성이 출전한 것도 나는 처음 보는데, 그 선수들은 생물학적 성이 무엇이었던 간에 자신이 되고자 하는 성 쪽으로, 말하자면 여성이라고 생각하면 여성 선수로 출전하여 경기를 했다는 점이다. 그뒤로 종종 유튜브에 올라오는 미국의 법정공방을 보면 비슷한 일들로 이슈가 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즉 한쪽은 생물학적 성보다 본인 스스로 생각하는 정체성을 반영한 성이 존중되어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은 앞으로 소개하는 책에서 보여지는 바와 같이 성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종이나 계급 등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사람을 차별하지 말하야한다는 생각으로 확장되어가는 것 같다. 그것이 미국의 소위 차별금지법안까지 이르게 된게 아닌가 싶다.
모든 인간을 동등하게 존중한다는 이러한 이러한 생각과 법안은 어떻게도면 인류애적이고 선진적이며 모두가 향해야할 올바른 방향 같아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류가 과연 이상적인 것인지, 일상속에서 어떠한 문제와 모순을 가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위의 언급한 서두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냐 하면 바로 이 소설을 소개하기 위함이었다. 가면증후군이라는 내게는 좀 생소한 용어를 전면에 내세운 이 책에 대해서 뜬금없이 차별금지법을 언급하는 이유는 내가 느끼기에 가면증후군보다 이 책을 소개하는 더 중요한 키워드인 것 같아서였다.
이 책은 한국계 미국인인 패트리샤 박의 소설이다. 뉴욕 출신인 그는 현재 아메리칸대학교에서 글쓰기를 지도한다고 한다. 뉴요커 등 다수 매체에도 글을 쓰고 이전의 저작 '리 제인'도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 이 소설을 읽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은이의 이름은 패트리샤 박이고 이 책의 제목에 언급된 이름은 '알레한드라 김'이다. 뭔가 비슷해보이는 두 이름이다. 소설속에서 알레한드라 김은 아르헨트나로 이주했다가 거기서 다시 미국으로 이주해서 살고 있는 한인 3세쯤 된다. 말하자면 그녀의 부모는 아르헨티나 출신이고 그녀는 아르헨티나에서 미국으로 이주해서 정착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이다. 그러니 그녀는 혈통?은 한국인이지만, 부모의 정체성과 모국어는 아르헨티나 쪽의 스페인어, 하지만 그녀는 미국인으로 세 가지의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섞여있다고 할 수 있다.
작중에서 알레한드라 김은 한국나이로보면 고3쯤 되는, 입시준비로도 바쁘지만, 아직 성인이 되기 이전의 나이로 또래관계도 중요하고 정체성에 대해서도 혼란스러울 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작가와 마찬가지로 뉴욕 퀸즈에서 태어났다고 하는데, 주인공이 작가 자신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싶은데, 작가도 서문에서 그 점을 고백하고 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 알레한드라 김은 퀸즈 출신이지만 공부를 잘해서 뉴욕에서 상류층들이 다니는 학교에 90프로 재정지원을 받아서 다닐 수 있었다. 그렇기에 반친구들은 그녀보다 더 좋은 도시락을 싸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집에서 사는 아이들이라고 할 수 있다.
가정경제가 넉넉하지 않을 뿐더러 알레한드라(이하 앨리)는 위에 언급했듯이 아르헨티나인와 한국인과 미국인이라는 세가지 정체성이 혼란스럽게 겹쳐진 아이다. 인종차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녀의 외모를 보면 아시아인에게 가질 수 있는 편견을 떠올릴 수 있겠지만, 그녀는 한국어도 할 줄 모르고 미국에서 태어난 미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그녀는 학교에서 경제적으로나 인종적으로 두드러지지 않으려는 노력을 가면증후군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가 가면증후군을 이 책에서 중요한 키워드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는 책에서 반영된 앨리의 가면증후군은 명칭에서의 병리적인 느낌과는 다르게 그렇게 병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그 나이대 아이들이 흔히 또래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신에 대해서 열등감을 갖는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도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이 책은 다른 면에서 훨씬 흥미로웠는데, 바로 차별금지법의 논란 속의 미국을 잘 표현했다는 점이다. 미국의 차별금지법의 역사는 1964년부터로 꽤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에는 여러가지 판례 등으로 좀 더 확대해서 적용되기 시작한 것 같다.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미성년의 아동들에게 성을 스스로 선택하게 하여 실질적으로는 불임이 되게 만드는 화학요법을 실행하고 있다고도 들었다.
성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는 앞서 언급한 올림픽에서의 문제와 더불어서 일상속에서는 공공시설에서 화장실이나 샤워실같이 남성과 여성의 단 두개의 성으로 구분하는 시설에서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소설에는 이러한 부분들이 녹아 있다. 그 외에도 미국에서의 이제까지 대두되었던 큰 사회문제중의 하나가 인종차별이었다고 하면 이제는 인종을 가지고 차별하지 않고자 하는 문제로 인해 중산층의 백인 남성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죄인이 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모든 사람을 각각의 정체성을 고려해서 존중한다는 기치는, 반대로 말한마디 잘못하면 직장에서 짤릴 수도 있는 날카로운 분위기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깊이 생각해보아야할 부분 같다. 한국에서는 차별금지법이 아직 발효되지는 않은 것으로 안다. 하지만 비슷한 문제로 아동학대를 경계하다보니 지나치게 교권이 추락해버린 상황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아이들을 존중하려다보면 자칫 무엇도 권위로 강제할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릴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은 시대의 큰 변화기류 중 하나로 보인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라는 키워드 하나만으로 이 책을 설명하는 것도 부당해보인다. 재미있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요소를 많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문제를 잘 드러낸 것 이외에 고3 수험생의 일상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부분이다. 한국인에게는 미국 이민 3세?들의 삶이기에 그점도 재밌게 읽었다. 그리고 나는 개인적으로는 앨리의 모습이 시골학교에서 뜬금없이 좋은 대학에 들어가 공부 깨나 했던 다른 아이들 사이에서 1등 한번 해보지 못했던 그저 평범했던 내가 덜 두드러지기 위해 긴장하고 노력했던 내 대학시절을 보는 것 같아서 공감이 많이 되었다. 가정교육을 잘 받아 아는 것도 많고 공부하는 법도 잘 알고 자신의 의견을 잘 피력할줄도 아는 아이들이 인성까지 좋았던 나의 대학교때와 정확하게 오버랩되었다.
또한 상실을 다룬 소설이라는 면에서 얼마전 읽었던 '겅클'과 비교를 하게 되는데, 그 소설에서 가족 구성원의 상실을 마치 하나의 소재처럼 가볍게 다루고 넘어갔다면, 이 소설에서는 좀 더 깊이 다루고 있다는 면이 좋았다.
"우리는 부모의 상실을 절대 '극복'할 수 없다. 그 상실감은 끈질긴 그림자처럼 종일, 매일 우리 곁에 머문다. 하지만 가끔 운이 좋은 날이 있다. 그럴 땐 그 그림자 같은 것이 잠깐 사라진다. 태양이 평소보다 밝게 빛나고, 주위를 따뜻한 빛이 감싸는 듯한 느낌이 든다. 439쪽"
내가 느끼는 상실의 감정도 비슷하다. 그렇기에 책을 읽으며 작가는 자신의 깊은 곳의 이야기를 쓴 것이 맞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직접 겪지 않았다면 느낄 수 없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이 책이 마음에 들었던 면이 여러가지 요소를 다채롭게 녹여냈다는 점인데, 그 중 한가지가 소설에서는 빠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이다. 그리고 또래들과의 우정에 관한 이야기도 잘 녹여냈다. 모든 요소를 자연스럽게 은은하게 풀어낸 것도 마음에 든다. 그렇기에 440페이지의 비교적 두꺼운 소설이었지만 3일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단 것 같다. (소설은 많이 안읽지만) '우편엽서'이후로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서 참 기쁘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로 한번 더 읽고 싶다.
"엄마의 우울한 기분이 온 집안으로 퍼져나갔다. 마치 변기 수조에 냄새나는 물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이 형편없는 비유처럼 나는 열쇠를 움켜쥐고, 변기 물 내리듯 집 밖으로 나와 마리아 이네스 몬토야 공원으로 향했다. 61쪽"
"나는 열차로 돌진했다. 기억들이 양파 껍질처럼 한 겹씩 선명하게 분리되면서 그 매운 기운에 어쩔 수 없이 눈물이 났다. 나는 눈물을 참으려고 눈을 깜박였다. 14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