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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그람 Oct 13. 2024

다시 돌아갈 부싯돌의 세계를 위하여

문학예찬(지그문트 바우만, 리카르도 마체오)을 읽고.

책을 읽고 간만에 이런 느낌을 가져본다. 너무도 절절히 공감이 되어 희열을 느끼면서도, 그 공감이 되는 내용이 절망적이라 뼈아프기도한 그런 느낌 말이다.

이 책은 지그문트 바우만과 리카르도 마체오라는 두명의 학자간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대화를 엮은 책이다. 애초에 책으로 엮을 생각으로 서간문이 오고간 것 같다.



내게는 두명 다 처음듣는 이름이었는데, 책을 다 읽고보니 왜 여태까지 몰랐을까 싶다. 두 저자에게는 지그문트 바우만은 1924년생이고 리카르도 마체오는 1955년생으로 30년이 넘는 나이차이가 존재한다. 그래서인지 지그문트 바우만을 향한 리카르도 마체오의 문체에는 존경의 마음이 담겨있다는 느낌을 많이 받기는 하였다.



책의 내용과는 크게 연관성은 없을 수 있지만, 지그문트 바우만의 생애에 눈길이 가기는 하였다. 독일어 이름인듯해보이고, 1924년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이라기에, 올해 초에 읽었던 '나의 인생을 쓴, 비슷한 시기에 또한 폴란드에서 태어난 유태인인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의 삶과 비슷한 과정을 겪었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었다. 라이히-라니츠키는 폴란드의 게토에서 목숨을 걸고 탈출하고 숨어서 지내면서 나치 시기를 견뎠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나치를 피해 소련으로 도피했다고 한다. 얼핏 본 그의 저작중에 홀로코스트나 반 유대주의에 대해 쓴 책이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에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책의 몇군데에서 독일어가 인용된 것을 보면 당시 많은 유태인이 이.삼중언어 사용자였듯 독일어를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책은 영어로 쓰인 것 같아보인다.



책은 무엇에 대한 내용인고 하니, '문학과 사회학과의 대화'라는 부제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두명의 저자가 한명은 학자이고 한명은 소설가인 것은 아니다. 두명의 학자가, 사회를 반영한 소설과 사회를 연구한 사회학이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마치 자매같은 관계로서 둘이 서로 같은 배경에서 태어나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간다는 점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눈 것이다.



그러한 문학(과 더불어 문화-예술 장르)과 사회학의 관계에 대한 내용은 머리말과 '두 자매'라고 하는 첫번째 챕터에 나온다. 그 다음부터 이어지는 내용은 오늘날 주목해볼 각각의 사회학적 논점과 이슈들에 대해서 문학 혹은 다른 예술장르에서는 그부분을 어떻게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그 어조는 기본적으로 비판적이고 비관적이고 역설적이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가 누구이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표현할 말을 갖고 있지 못할 뿐만 아니라 현란할 정도로 매력적이고 유혹적이지만 사실은 공허하고 생명 없는 말들을 배가 터질 정도로 강제로 폭식당하고 있습니다. " 22쪽



위 인용문은 '두 자매'라는 첫번째 챕터에 있는 내용인데, 스마트폰을 통한 인터넷 및 SNS에 대한 접근과 온갖곳에서 접하는 광고를 접하는 삶, 물질 만능주의나 소비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인 것 같다.



제 3장인 '진자와 칼비노의 비어있는 중심'에서는 '조각보 자아'라는 흥미로운 개념이 나온다. 미국의 경우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도 증가하고, 이혼율도 50%에 육박한다고 하는데, 어른들은 점점 더 바빠지고 아이들은 어른 없는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늘어난다고 한다. 부모가 아니라 구매해서 제공된 서비스를 통해서 각각의 분야에 각각의 전문가들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이 일종의 조각보자아를 갖게된다는 설명이다.



"시장은 '우리의  자아 이해에까지 침투했다. 개인 삶이 시장화되면서 전에는 느낌에 따라 자연스럽게 하던 일상적인 행위들- 결혼 상대를 결정하고 아기 이름을 짓고 우리가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 일 같은 것들 - 이 이제는 돈을 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일이 되었다.'" 83쪽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상업주의는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점점 더 세세한 욕구에 맞춘 서비스를 들고나와 새로운 시장으로 파고든다. 스마트폰과 온라인을 통해서 점점 더 그것이 쉬워지고 있기도 하다. 책에서는 이러한 현상과 더불어 젊은 세대가 사람과 대면활동보다 작은 스크린 화면을 통해 세상을 접하는 일이 많아진 것을 비판한다.



4장의 '아버지 문제'의 내용도 흥미로웠다. 현대에는 점점 더 아버지의 공격성을 비롯해 권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내용이다. 사냥하고 채집해서 먹고 살았던 수렵채집인에서, 농민이 되고  산업화가되어 공장노동자가 되었다가 현대의 아버지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아버지'가 가진 독재적이고 카리스마 있는 리더쉽은 점점 더 필요 없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대가 더이상 남성성을 필요로하지 않는 사회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위 주제에 대해서 남편과도 종종 이야기를 나눈 바 있다. 남자들은 돈버는 기계가 되어 평생 가족들을 부양하다가 죽게된다는. 자연속에서 일부 거미나 사마귀에서와 같이 짝짓기를 하고 암컷에게 먹히거나 개미에서처럼 짝짓기를 위한 쓸모이외에는 존재의 의의가 없어보이는 수컷들처럼 인간에서도 점점 더 남성적이고 폭력적이고 위험한 것을 기피하는 사회분위기로인해 '남성적'인 남성이 설자리가 점점 없어지는게 아닌가 싶다. 나의 둘째아이도 아들인데, 더 어릴때 아주 순했던데 반해 커갈수록 산만하고 위험한 장난을 하고 개구쟁이가 되어간다. 폭력적인 순간을 접할때마다 강하게 바로잡아주려는 나의 모습을 보며, 이것이 일종의 거세욕구와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다치지 않고 안전한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공격성은 남자아이에게 있어서 본능적이기도 하다. 그런것을 계속 억누르다보면 어느 순간 터져버리지 않을까? 남성들의 억눌린 폭력성으로 전쟁과 학살 같은 것들이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가 살고 있는 모성적 세계에는, 즉 전문가나 심리 치료사의 사무실에서 구원을 찾는 세계에는, 자식들의 마음 속에 갈라진 틈이나 심연이 있슴니다. "(우리가) 아버지라는 존재를 갈구해서 독자를 찾았던 것처럼, 우리의 아버지 찾기에 독재에 대한 은밀한 향수가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오늘날 우리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를 찾게 만드는 불안은 우리를 독재자에게로 이끈 불안과 심리적 친척이다."" 93쪽



6장의 '블로그와 중개자의 소멸'에서 블로그는 소셜네트워크를 비롯해 온라인 상의 피상적인 소통과 읽기 쓰기라고 보면 될것 같고, 중개자는 확실히 의미가 와닿진 않지만, 소셜네트워크와 반대되는 쓰기와 읽기라고 볼 수 있는, 깊이를 담은 문학작품 정도로 이해를 하였다. 온라인 상에서는 쓰기도 읽기도 피상적이 되어간다. 스마트폰이 제공하는 세상은 빠르고 편리하며, 그속에서 읽는 글은 1초면 내용을 훑을 수 있는, 약자들로 넘쳐나며 깊이 생각해볼 필요도 없는 단순화된 내용들 뿐이다. 이런 상황에 대해 저자는 '성냥과 라이터가 있는 세상에서 부싯돌과 부싯깃으로 돌아갈 가능성은 전혀 없'다며 비판한다. 그 다음 페이지에서 저자가 생각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태도에 대해서 나온다.




"온라인 안전지대가 내거는 복잡하고 난해하고 힘든 사랑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적인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사랑은 행복이지만 오랫동안 수많은 사례들이 보여 주었듯이 행복은 바로 먹을 수 있는 음식처럼 다 차려진 상태로 오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아무 고통 없이 오지도 않습니다. 고통은 행복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힘겹게 고통을 이겨 내는 것이야말로 사랑이라는 관계에 필수적입니다. 고통 없는 사랑은 거짓말이고 사기입니다. 알코올 없는 맥주, 칼로리 없는 음식, 하늘에서 떨어진 동전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결코 행복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고 행복에 이르는 여러 길 중 하나이지만, 사랑이 없으면 행복은 거의 낯선 나라, 사실 상 지도에 없는 미지의 땅이 되고 맙니다." 134쪽



사랑과 행복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실상 삶의 모든 성취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뒤에 이어지는 내용에서도 비판은 이어진다. 현대로 올수록 자폐증이 늘어간다는 것, 알츠하이머도 늘어간다는 것. 이러한 것이 스마트폰과 온라인 세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 우리가 점점 더 편리한 문물에 우리 뇌가 사용될 자리를 내어줄 수록 우리의 뇌는 그만큼 쓸모가 줄어들어 무능해진다는 이야기에 아차싶었다. 내가 점점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이 출산과 육아때문이 아니라 스마트폰 때문일수도 있겠다고 말이다. 비판은 또한 소비사회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다.



"우리 사회에서 매일 매일의 경험은 개인에게 새로운 장난감과 마약의 끝없는 공급을 원하고 필요로 하도록 가르친다." 172쪽



뒤이어 트위터 문학의 시대에서 소설이 사라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한다.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앞서 언급한 문제들을 논의하면서 소설에서 그 문제점을 잘 표현한 작품들을 많이 소개하기도 하였다. 기억나(고 내가 아)는 작가들은 지난해 읽었던 '인생수정'의 작가 조너선 프랜즌이 있었고, '눈먼자들의 도시'의 주제 사라마구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혹은 이름만 듣고 읽어보지 못한 미셀 웰벡에 대한 언급도 많이 나오는데, 읽어보고 싶다.  



책의 모든 내용을 다 언급하고 넘어갈 수는 없을 것이다. 내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오간 것을 잘 기록해두고 싶어서 욕심을 냈지만, 내 언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뿐이다. 그렇더라도 읽어보면 영혼의 자양분을 얻을 책임은 분명하다. 어려워보이는 내용이지만 가독성이 아주 나쁜편은 아니다. 번역체이기도 하고, 문장이 원래 좀 복잡한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천천히 다시 읽어보고 음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나쁘지 않다.



또한 이 책은 쓰인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도 추천할만한 점이다. 동시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내가 읽고 기억하는 인문학 저서들이 대부분 20년 전후의 것들인데, 이 책은 현대인들의 문제를 지적한 만큼 최근의 저작이기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삶이 잘 반영되어 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읽을 수록 두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에 공감이 간다. 아직 스마트폰이 나오기 전인 대학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해본다. 당시에는 소위 좀 어렵다는 책들을 많이 읽기도 했고 재밌었다. 현재는 집중력이 많이 저하됨을 느낀다. 그것이 단순히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키우고 하면서 독서환경이 달라져서라고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스마트폰은 그것을 보지 않고 옆에 두기만 하더라도 집중력이 저하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한다. 성냥을 놔두고 부싯돌을 사용하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냐고 반문하는 저자들의 말처럼 스마트폰이 없는 삶이 가능하기는 할까 싶지만, 한편으로는 언젠가 도달해야할 목적지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에게 편리한 모든 것을 버릴 때라야만이 인류는 영속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불가능해보이는 만큼, 인류의 영속 또한 머나먼 길이 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생각을 감출수가 없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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