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키코모리가 루마니아어를 독학해서 루마니아소설가가 되었다고?? '뭐든 하다보면 뭐가 되긴 해'라는 사이토 데초의 책 소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소설보다도 더 드라마티한 이야기일 것 같아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더구나 나는 10년넘게 독일어라는, 루마니아어보다는 아니지만, 비인기언어를 지지부진하게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나름의 언어공부 마니아아닌가. 어떤 계기로 루마니아어를 접했고, 어떻게 배웠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언어로 작가가 되었는지 알아보고 싶었다.
책을 읽다보니 지은이를 묘사하는 일본어단어는 히키코모리보다는 오타쿠가 어울린다고 생각이 든다. 그는 보통 생각하는 대인기피증을 가지고 방에서만 생활하는 히키코모리의 이미지와는 달리 외출도 하고, 온라인과 오프라인 상에서 사람을 만나고 대화도 나누고, 사실 그가 루마니어라는 접하기 어려운 언어를 배울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사람과의 온오프라인상에서의 소통으로 가능했기 때문이다. 책속에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넓은 의미에서의 히키코모리라고 여러번 변명같은 설명을 늘어놓기는 했지만 말이다.
뭐 히키코모리든 아니든 그게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앞서 오타쿠라고 묘사했듯이 이 책을 보면 지은이가 어떻게 한 언어에 빠져서 그 언어로 소설가까지 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는데, 그게 이 책의 매력이다. 말하자면 크게 가지에 주목해서 읽어볼 수 있는데, 첫번째가 어떻게 하면 하나의 언어를 마스터할 수 있는가이고 두번째는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을까, 세번째로는 하나의 주제로 묶기 어려운 작가의 루마니아 언어와 문학 그리고 그외의 것들에 대한 생각들이다.
지은이가 어떻게 루마니아어를 배우게 됐는가 하면, 그는 영화광이었다. 여러 영화를 접하다가 루마니아 영화를 접하고, 그에 매료되어 언어까지 배우게 된 것인데, 원래는 독서광에서 건강상태가 안좋아지면서 영화쪽으로 관심이 옮겨갔다고 한다(내 기억이 맞다면 말이다.) 영화광이라는 데서 반가움이 일었다. 나도 책보다는 영화를 보는데 20대의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내가 한창 영화를 보던 시기에 필름포럼이라는 마이너한 영화들을 상영하는 극장에서 보았던 아마도 루마니아 영화인듯한 영화 두편이 떠올랐는데, 그중 하나가 이 책의 말미에 소개되어 있는걸보니 내 기억이 맞는 모양이다. 바로 '라자레스쿠씨의 죽음'이다. 다른 한편은 '그때 거기 있었습니까'라는 블랙코미디영화인데, 이 영화는 소개가 안되어 있는게 아쉽다. 필름포럼에서 아무도 없는 영화관에서 그야말로 '나 혼자'보았기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영화로 남았는데 말이다.
나는 좀 더 시각적인데 매료되는 편이어서인지 언어에까지 주목하지는 못했는데, 저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마도 루마니아어가 일본어와 매우 다른 언어였기에 더 끌렸을지도 모르겠다. 나도 서양언어를 보면 다르기에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적이 있으니 말이다.
여튼 그렇게 저자가 관심을 갖게된 루마니아어인데, 주목해볼점은 어떻게 집밖에 나가지 않고 그 언어를 마스터했는지이다. 그것은 요즘세상이어서 가능했던 일 같기는 한데, 바로 페이스북과 넷플릭스를 이용하는 방법이다. 맨 처음에는 일본에서 파는 루마니아어 교재를 사서 공부를 하고 기본적인 것을 배웠을 테고, 그 다음에는 페이스북에서 루마니아 사람들 5000명 가량에게 친구신청을 하고 말을 걸었다고 한다. 사실 이건 크게 대단한 방법인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것을 쭉 이끌어가는 것은 끊임없는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요새는 페이스북이 아니어도 원어민을 만나 대화할 수 있는 창구는 많이 있다고 생각이 든다. 나도 텐덤이나 헬로우톡과 같은 언어교환어플을 통해서 독일원어민과 대화를 해본적이 있는데, SNS와 친하지 않은 나는 대화에 시간을 쏟는 일이 상당히 피곤하게 느껴져서 관계가 좀 형성된다 싶을 무렵 그만두게되었다. 사실 그렇게 목표언어로 대화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고 즐거움이 되어야하는데, 나는 잘 안되었다.
작가가 루마니아어로 소설가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페이스북의 인연 덕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를 알리고 인연을 쌓아가다보면 내가 하고자하는 것에 닿을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 같다. 목표언어로 글을 쓰고, 그것을 SNS올리고, 그것에 대해 원어민들에게 피드백을 받고, 그러다보면 글도 늘고 내용이 좋으면 잡지에 실리기도 하고, 글이 모이면 책으로도 내고.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물론 실행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만은 않은 일일테지만 말이다.
이 책의 절반의 분량동안 나온 내용이다. 나머지 절반동안은 루마니아 언어에 대해서, 문학에 대해서, 그리고 저자의 이런저런 생각들에 대해서 자유로운 에세이가 이어진다. 흥미로운 내용도 있었지만 솔직히 좀 두서가 없다고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았고, 종종 너무 디테일에 몰두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선입견을 갖는 것은 좋지 않지만 그런점이 일본인 답다고도 느껴졌다. 한 언어에 깊이 빠져본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고민으로 느껴지기는 했다.
또한 그는 루마니아 뿐아니라 왠지 소외된듯한 동유럽의 언어와 문학에 대해서 안타까움과 애정을 드러냈는데, 공감이 되었다. 현재에 서유럽국가들이 선진국이라고 해서 더 우월한 문화를 가졌다고 볼 수도 없을 것이고, 그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 또한 다분히 우연의 산물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동유럽에는 (그외의 지역에도 마찬가지고) 소외된 많은 나라들, 문화들이 있을 것이고 많은이들이 주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의 문화가 점점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다양성이 사라지는 것은 슬픈일이고, 좋은일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많은 영화를 봐오면서 그나라의 색을 담아 내게 새로운 충격을 주었던 다양한 영화들이 떠오른다.
동유럽의 정서는 주로 폴란드 감독인 크쥐시토프 키에슬롭스키의 영화에서 받았다. 전쟁과 집시의 삶에 대해 다룬 영화를 만든 유고슬라비아의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절절한 영화들. 고요하고 따뜻한 영화들의 스페인 감독 빅토르 에리세, 적막한 어둠속의 희망의 등불같던 벨기에 감독의 바베트의 만찬. 투박하지만 강인한 사유의 힘을 자랑하고 요구했던 러시아의 영화들. 또한 공간과 더불어 다양한 시간의 스펙트럼이 영화속에서 더욱더 다양하고 입체적인 세상을 만들어냈던 것이 내가 영화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던 점이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물론 영화에 대한 책은 아니었지만, 오랜만에 나는 무엇에 매료되어 그토록 영화를 보았던가 생각해보게 되었다.
책에 대한 총평은, 수다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추천할만한 책이다. 물론 앞서 여러번 이야기했듯, 하나의 외국어를 마스터하고 그 언어로 작가가 되는 방법을 알아내기에 이보다도 더 좋은 책은 없을 것 같다. 다만 후반부 절반에는 나처럼 작가의 맥락없는 다양한 지적호기심에 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좀 지루할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제목이 나는 좀 비문같이 느껴지긴 했다. '뭐든 하다보면 뭔가 되긴 해'라고 해야 맞는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