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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5-1 | 스리랑카 바선생

그들과는 아무래도 더불어 살 수 없다

by 꽃보라 꽃목수

햇볕이 내리쬐는 오후. 몸도 식히고 목도 축일 겸 근처 카페로 들어선다. 보라님과 그늘 아래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창 밖에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자 이내 상쾌한 기분이 든다. 그 바람을 타고 어디선가 날아온 낙엽이 보라님 어깨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그런데 여기는 스리랑카가 아닌가. 1년 내내 여름인 곳에서 웬 낙엽? 게다가 떨어지는 소리가 둔탁하다. 낙엽이라 하기엔 표면이 너무 반질거린다. 나의 직감이 소리친다. '바선생'이다. 상황판단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선생의 더듬이가 보라님의 목을 향한다. 나는 눈을 부릅뜨고 다급히 보라님에게 "가만!"이라고 속삭였다. 하지만 바선생은 눈치가 빠르다. 곧바로 특유의 사사삭대는 움직임으로 좌우를 살핀다. 그러더니 갑자기 바닥으로 툭하고 떨어진다. 등으로 떨어진 몸을 뒤집고는 전속력으로 달리는데, 방향이 나와 보라님 발 사이다. 우리는 맨발이었다.


(좌) 당시 나의 표정, (우) 그걸 본 보라님의 표정

스리랑카의 바선생은 정말 거대하다. 장성한 녀석들은 참새보다 크다. 생김새에 관한 자세한 묘사는 굳이 하지 않겠다. 그런데 수가 많다. 처마 밑, 쓰레기통, 하수구, 보라님의 어깨에서까지 만날 수 있다.


바선생의 진짜 위력은 비행능력에서 나온다. 녀석들이 날개를 펼치면 답이 없다. 단지 나에게 달려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가 아루감베이에서 자주 가는 피자집이 있는데 거기 주방에서도 당당히 비행하는 것을 봤다. 밤에 봤는데 처음엔 박쥐로 착각했다. 나에게 달려들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이곳의 주택의 특징은 문지방이 없다는 것이다. 현관문도 바닥으로부터 5~10mm 정도 떠있는데, 때문에 집 밖에서 바선생이 들어오는 걸 막기가 힘들다. 잠잘 때는 수건 등으로 틈을 막는 것으로 대비한다. 그럼에도 들어온다면 내 침상으로 올라오지 않길 바랄 뿐이다.


새벽에 일어나 화장실에 간다면 십중팔구 그날의 첫인사를 바선생과 나누게 된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면서 화장실의 바닥, 천장, 환풍기, 하수구를 살피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 되었다. 혹시라도 녀석들이 눈에 띄지 않았다면 화장실을 나갈 때까지 그러길 바랄 뿐이다.


한편 나는 스리랑카 아이들이 나보다는 바선생에 대한 저항력이 높을 것이란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이곳의 아이들은 자연과 더불어 살기에 바선생을 대하는 태도가 아무래도 나와 다를 것이란 기대였다.


어느 날 한 가정집을 방문했다. 우리가 도착하자 아이 엄마가 의자를 내왔다.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것 같은 플라스틱 의자였다. 그런데 그 위에는 이미 누군가 앉아있었다. 엄지 손가락만 한 바선생이 거의 열 마리가. 하지만 기겁하는 모습을 보이면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해 아이 쪽으로 급히 시선을 돌렸다.

네 살 된 그 집 꼬마도 바선생 무리를 발견했다. 그런데 잠시 뒤, 눈은 바선생에게 고정한 채 스쿼트 자세로 서서히 앉더니 바닥에서 막대기를 주워 드는 게 아닌가! 애가 막대기를 잡으면 무슨 일을 할지는 뻔할 터. 순간 나는 등골을 따라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막대기가 바선생의 등딱지를 내려치는 소리가 났다. 녀석들은 배를 까뒤집거나 파르르 거리며 격렬히 반응했다. 그 꼴을 본 꼬마는 "으으~"하는 소리를 내며 심하게 얼굴을 찌푸렸다. 결국엔 막대기를 떨구고는 뒤로 물러섰다.

꼬마는 한 걸음 더 뒤로 물러나더니, 바선생 의자와 나를 번갈아 보았다. 나 보고 치워달라는 뜻이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의자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바닥에 탈탈 털며 생각했다. 누구도 바선생과는 더불어 살 수 없다고.


그 꼬마 '다르니카'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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