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에 오면 야생 동물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 원숭이는 여기저기 자유롭게 뛰어다니고, 공작은 한국의 비둘기만큼 흔하다. 길 가다 뱀을 밟을 뻔한 적도 있고, 한밤중 퇴근하다 야생 코끼리를 만나 숨죽여 피한 적도 있다. 마을 곳곳에 있는 늪과 강엔 악어(무려 엘리게이터 Elligator, 크로커다일 Crocodile 모두 있다)가 산다.
거리를 활보하는 소와 염소는 툭툭보다 많고, 숨은 그림 찾기 하듯 각양각색의 도마뱀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모이는 ‘아루감베이’와 현지 주민들이 모여 사는 ‘포투빌’을 잇는 다리 근처에는 ‘라군(석호)’, 드넓은 초원과 늪이 있는데 해 질 녘이면 석양을 배경으로 검은 물소 떼가 목욕하는 절경을 볼 수 있다.
처음 스리랑카 현장에 갔을 때다. 숙소 방에 들어가자마자 벽지처럼 붙어 있는 젤리 도마뱀과 바닥 한구석에 모여 있는 개미 떼를 봤다. ‘방에 웬 도마뱀과 개미가…’라는 생각은 인간의 대단한 오만이었다. 우리는 그저 잠시 묵어가는 게스트일 뿐, 진짜 호스트는 젤리 도마뱀과 개미인데!
현장 숙소에 젤리 도마뱀, 개미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해야 하는데 여전히 프로답지 못한 모습을 보인다. 이를테면 식비를 아끼기 위해 오늘 저녁 먹다 남은 피자를 내일 또 먹으려고 그대로 둔다든지(다음날 피자 박스를 열면 이미 개미 떼가 만찬을 즐기고 있다),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잽싸게 이동하는 젤리 도마뱀을 발견하고 (항상 문 뒤에 도마뱀은 물론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깜빡 잊는다) 소스라치게 놀란다든지 하는 실수를 한다.
하루는 우리 직원(코인트리 스리랑카 사무국장) ‘마파스’와 긴급 식량을 전달하러 가정 방문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이미 해가 진 깜깜한 밤이었는데, 하필 마을 전체에 전기가 끊겼다. 툭툭이 비추는 희미한 헤드라이트만 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툭툭을 운전하던 마파스가 갑자기 길 한가운데서 운전을 멈추고 내렸다. 무슨 일이 났나 싶어 따라 내렸더니, 마파스가 툭툭 앞에서 시커먼 물체를 들어 우리에게 보이며 해맑게 웃었다.
큼직한 자라였다. 마파스는 자라를 두 손으로 소중하게 들어 풀숲에 놓아주고, 다시 툭툭을 탔다. 자라가 길 위에 있으면 밤에 툭툭이 못 보고 칠 수도 있으니, 안전한 곳에 놔줘야 한다고 했다. (마파스는 정말 다정하고 멋진 어른이다. 도로에 깨진 유리병이나 유리 조각을 발견하면 바로 주워 버린다. 맨발로 다니는 아이들이 밟으면 크게 다치기 때문이라고 했다.)
숙소는 물론 식당, 가게에 따로 환기 시설이 없고 자연스러운 통풍을 추구하다 보니 뻥 뚫린 공간으로 다양한 벌레, 최소 진돗개만 한 들개, 길고양이가 마음대로 드나든다. 조금 난이도가 있는 친구들도 온다. 박쥐나 전갈이다. 성인 손가락 2개를 합친 것만 한 특대 사이즈 바선생(바퀴벌레)은 상당히 자주 보이고, 두더지인 줄 알았으나 쥐가 들어올 때도 있다.
여기서 투표 한 번 간다. 퇴근 후 숙소 와서 불을 딱 켰는데 바로 존재감 뿜뿜, 장수풍뎅이 크기의 바퀴벌레 VS 화장실 문을 딱 열었는데 변기 뒤에서 차마 긴 꼬리를 감추지 못하고 숨어 있는 쥐. 여러분의 선택은? (나는 쥐가 백배 더 낫다. 열대지방의 바퀴벌레는 사이즈가 어마어마하고, 딱 봐도 싸우면 내가 질 것처럼 생겼다.)
좀 더 와일드한 동물도 있다. 스리랑카에 서식하는 동물 중 최상위 포식자는 표범이다.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서 차로 1시간 거리, 국립공원에 가면 야생 표범을 볼 수 있다. 한 번은 우리 학교 아이들과 사파리 지프(jeep)를 타고 국립공원에 소풍 갔는데, 하필 비가 많이 온 뒤라 우리가 탄 지프가 진창에 빠지고 말았다.
앞 지프에 줄을 연결해 우리 지프를 빼낼 동안 해는 빠르게 지고 있었다. 공원 관리자, 운전기사님 지시대로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차에서 내렸는데, 차 옆에 서 있는 게 위험해 약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었다. 그때 공원 관리자와 우리 현지 직원이 ‘절대 떨어지지 말고 서로 붙어 있으라’고 무섭게 소리쳤다.
우리가 서 있는 이곳은 표범 출몰 구역이고, 표범은 해 질 녘 사냥을 하러 나오기 때문에 모여 있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했다. 지프가 진흙탕에서 나오자마자 아이들부터 허겁지겁 태우고 바로 출발했다. 깜깜한 밤 온갖 야생 동물이 자유롭게 다니는 국립공원을 빠르게 빠져나오며 ‘이건 귀가보다 탈출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한참을 달려 국립공원 출구에 이르자마자, 우리 현지 직원들은 지프 5대를 모두 세우고 아이들이 안전하게 잘 타고 있는지 괜찮은지 일일이 체크했다. 아찔했던 그날, 국립공원을 탈출해서 마을로 돌아오는 길, 우리는 해지고 활동을 시작하는 야생 코끼리를 무려 세 마리나 지나쳐 왔다. 근처엔 작은 모닥불만 펴놓고 길 위에 앉아 곡식을 훔쳐먹는 코끼리를 홀로 감시하는 한 할아버지가 있었다.
우리에게 야생 동물은 ‘관광의 대상’, ‘나와 거리 두고 사는 신기하고 낯선 존재’, ‘완벽한 타자’다. 그러나 현지 아이들, 선생님, 마을 주민에게 야생 동물은 ‘함께 사는 존재’다. 우리 직원들을 포함해 지역 주민들은 야생 동물과 공존하며 깨알 같은 삶의 지혜를 터득한다.
예를 들어 아이들에게 나눠 줄 쌀, 콩과 같은 식량을 소분해 담은 봉투는 절대 밖에 그냥 두지 않는다. 까마귀 떼가 바로 와서 뜯어먹기 때문에 항상 박스 안에 담아서 덮어 놓거나, 실내 또는 툭툭 뒷자리 깊숙이 넣어둔다. 간식 봉투도 마찬가지다. 한 번은 아이들 줄 바나나와 빵이 담긴 봉투를 봉투째 원숭이가 잽싸게 채 가서 나무 위로 올라가 버린 적이 있었다.
야생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러워서일까? 스리랑카 현장의 아이들은 다양한 동물, 곤충과 어울려 살며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을 존중하는 법을 체득한다. 집 앞에 돌아다니는 닭을 반려계(?)처럼 여기기도 하고, 새끼 길고양이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자기 간식을 나눠주기도 한다. 벌레도 함부로 죽이지 않는다. 가끔 코인트리 학교에선 아이들과 근처 바닷가로 나가 해양 쓰레기를 줍고, 폐플라스틱으로 만들기 수업을 하는데, 아이들은 거북이나 물고기를 위해 그 조그마한 손으로 바닷가에 버려진 쓰레기를 세상 열심히 줍는다.
스리랑카 현장에선 안팎의 구별도 없고, 피아의 구분도 없다. 단절 대신 연결만 있다. 울타리 너머로, 혹은 유튜브에서나 보던 야생 동물을 만나면 처음엔 신기하다. 하지만 매일 보면 동물도 친숙한 이웃, 같이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 아침엔 지붕 위를 뛰노는 다람쥐의 우당탕탕 소리와 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이 깨고, 밤엔 파도 소리와 젤리 도마뱀이 내는 뾱뾱 소리에 잠이 든다.
사람도 나도 자연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가 사는 세계를 구성하는 수많은 구성원 중
하나일 뿐이다.
현장에서 지내다 보면 이렇듯
자연과 세계는 거대하게,
사람과 나는 미미하게 여겨지는 순간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