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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06 | 국가부도 한 달 전, 우린 그곳에 있었다

스리랑카 국가부도를 직접 겪은 나날들

by 꽃보라 꽃목수
1..jpeg 뉴욕타임스 갈무리 (2022년 3월 25일 보도 / 이미지 ⓒAtul Loke for The New York Times)

2022년 4월, 스리랑카가 국가부도를 선언했다. 스리랑카 GDP의 15%를 차지하는 관광업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큰 타격을 입었고, 해외 취업으로 본국에 외화를 송금하던 스리랑카 노동자는 일자리를 구하지도 고국으로 돌아오지도 못했다. 바닥난 외환보유고에 오랫동안 쌓인 족벌정치, 부정부패, 막장인 경제정책, 내전 후 사회적 갈등, 분열과 차별이 불을 지폈다. 결국 스리랑카는 빚더미에 앉았고 대외 부채를 상환할 능력이 없어 ‘디폴트’를 선언했다.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48년 독립한 이래 약 70년 만에 발생한 최악의 경제 위기였다. 당시 스리랑카의 빚은 약 63조였다.

2.jpg 2022년 스리랑카 수도 '콜롬보'에서 촬영한 주유소 모습. 약간의 기름이라도 얻으려는 툭툭, 오토바이, 차가 몰려와 수백 미터 넘게 줄을 섰다.

국가부도를 선언할 정도로 나라에 돈이 없다는 건 정말 무서운 일이었다. 외화가 없어 기름을 수입하지 못해 주유소에 기름이 없었다. 주유소마다 툭툭, 화물 트럭, 자동차가 기름을 얻기 위해 도로를 점령하다시피 길게 줄을 섰다. 이어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기름통을 들고 주유소로 몰려왔다. 스리랑카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콜롬보'조차 이런 상황이니, 인프라가 훨씬 안 좋은 오지 마을 상황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3.jpg 코인트리 스리랑카 학교가 위치한 '포투빌' 마을의 주유소 모습. (우리 직원들이 기름을 얻기 위해 줄 서며 직접 촬영한 사진)

코인트리 직원들도 구호 활동에 필요한 툭툭 기름을 얻느라 밤만 되면 기름통을 들고나가 주유소 앞에서 무작정 기다렸다. 4시간쯤 기다려 약간의 기름을 받는 날도 있었고, 빈손으로 오는 날도 있었다.

4.jpg 전기가 끊긴 밤. 국가부도 사태의 스리랑카 현지 상황을 멕시코 현장에 계신 대표님&부대표님에게 보고하는 중

매일 7~8시간 전기가 끊겼다. 12시간 이상 끊길 때도 있었다. 물도 더 자주 끊겼다. 물이 언제 끊길지 몰라 샤워도 초고속으로 해야 했다. 전기가 안 들어오니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무더위에 선풍기조차 틀 수 없었다. 비상 상황을 대비해 현지 직원들과 연락하고 긴급구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휴대폰과 랩탑 배터리를 극도로 아꼈다. 국가부도로 전기가 끊긴다는 것은 불편함을 넘어 두려움을 느끼게 했다. 단전으로 빛, 물 등 사는 데 꼭 필요한 것 없이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밤에 전기가 끊길 때를 대비해 코인트리 현지 직원들은 며칠 간격으로 귀한 양초와 성냥을 구해다 주었다. 퇴근 후 급히 랩탑을 켜고 일해야 할 땐 휴대폰에 있는 플래시 기능이 그렇게 반갑고 감사했다.

5.jpg 전기가 끊겼지만 긴급구호가 필요한 상황. 모든 직원이 휴대폰 플래시를 켜고 멕시코 현장에 계신 대표님&부대표님과 긴급 예산 편성에 대한 화상회의 중

숙소에서 30여 분 떨어진 마을에서 일을 마치고 귀가하던 날이었다. 하필 전기가 끊겼었는데, 간간히 있던 가로등과 가정집의 모든 불빛이 나가자 우리는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어둠 속에 내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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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전 → 툭툭 헤드라이트 빼면 아무것도 안 보임 → 야생 코끼리 갑툭튀 → 숨 죽이고 기다림

얼마쯤 달렸을까, 우리가 탄 툭툭 앞으로 거대한 야생 코끼리가 길을 막고 서 있었다. 1차선 도로 한가운데 서 있던 코끼리를 발견하자마자 툭툭을 운전하던 코인트리 사무국장 ‘마파스'는 다급히 시동을 껐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도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작은 소리라도 내면 코끼리가 돌진해 크게 다치고 말 거라는 두려움이 생겼다. 삼륜 오토바이인 툭툭쯤이야... 코끼리가 코 한 번 휘두르면 저 멀리 들판으로 내동댕이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눈앞에서 마주한 야생 코끼리의 위용과 거대함이 저절로 몸을 얼게 했다. 코끼리가 슬슬 도로 옆 풀숲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자, 때마침 뒤에서 화물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마파스는 기막힌 타이밍으로 툭툭 시동을 걸어 잽싸게 화물 트럭 뒤에 바짝 붙어 길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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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안 들어오고 선풍기조차 틀 수 없는 더운 날. 교실 밖에 돗자리를 펴고 앉아 수업하는 날도 많았다. (왼쪽) 아... 교실 지붕에 구멍이 나서 벽에 빛이 비친다.

코인트리 학교 아이들의 아버지는 주로 어부, 툭툭 기사 일로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간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 가장의 생업도 끊기고 말았다. 배는 고기를 잡으러 바다에 나가지 못했고, 툭툭은 승객을 태우러 다닐 수 없었다. 식료품, 생필품, 의약품을 나르는 트럭은 수도 콜롬보에서 400km 떨어진 스리랑카 동쪽 끝, 우리 아이들이 사는 마을까지 오지 못했다. 장거리를 이동할 기름이 없었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는 고속도로도 잘 없거니와 도로 사정이 매우 좋지 않아 원래도 물류가 원활하지 않다(스리랑카 아루감베이에서 가장 가까운 큰 도시, 바티칼로아까지는 약 100km 거리인데 차로 가면 4시간 이상 걸린다). 그런데 나라에 기름까지 없으니 2주 이상 외부에서 들어오는 모든 물류가 차단되고 말았다. 곧 마을에서 식료품과 의약품은 품귀 현상을 빚었고, 쌀, 콩, 설탕과 소금은 전보다 2배 이상 값을 치러야 겨우 구할 수 있었다.

10.png 로이터 갈무리 (2022년 7월 14일 보도 / 이미지 ⓒAdnan Abidi for REUTERS)

이즈음 콜롬보에서는 국가부도를 선언한 대통령이 (온갖 부정부패를 저지른 후) 해외로 빤스런했다. 성난 시민들은 시위를 하며 대통령궁을 점거하고 총리 사저에 불을 질렀다. 무장한 경찰과 군인은 전국에 통금과 휴교령을 내렸다. 우리 아이들이 사는 마을에도 AK 소총 찬 군인들이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엄격한 통금과 휴교령을 시행했다. 휴교령이 있는 날이면, 코인트리 직원과 선생님은 (기름이 없어 운행하지 못하는 툭툭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식량, 생필품과 같은 구호 물품을 어렵게 구해 아이들에게 전달했다. 그해 스리랑카 전역의 아이들은 종이와 잉크가 부족해 진급 시험을 못 치렀고, 학제가 꼬이면서 우리 학교 아이들도 반년에서 일 년가량 모두 유급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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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가 끊긴 교실(원래 선생님 집 창고), 아이들이 공부하기에 너무 어두워 플래시를 벽에 매달았다.

기름이 없고 전기가 없는 상황에서도 코인트리 학교 세 곳 - 아루감베이 아카데미(사설학교), 특수(장애)아동 아카데미, 우라니 아카데미 - 은 계속 운영됐다. 선생님들은 교실 벽에 플래시를 매달거나 교실 밖 모래 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수업을 이어갔다. 아이들은 평소처럼 신나게 등교했고, 몇몇은 원래 집에 전기나 수도 시설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 경제가 파탄난 상황을 크게 실감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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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인트리 스리랑카 학교 아이들에게 가족과 함께 나눠 먹을 식량을 지원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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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꽃주주(후원자)님들 덕분에 3개 학교 113명 아이들에게 2번씩 식량을 지원할 수 있었다.

코인트리 꽃주주(후원자)님, 꽃받침(결연 후원자)님 덕분에 학교 아이들에게 긴급 식량과 생필품을 나눠주기 시작하자, 더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등록했다. 코인트리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 113명은 가족과 함께 나눠 먹을 쌀 5kg 한 포대, 콩, 소금, 설탕 500g씩과 우유 등 간식을 지원받았다. 스리랑카 국가부도 소식을 듣자마자 아이들을 걱정하며 수많은 후원자님께서 따뜻한 마음을 보내주신 덕분에 코인트리는 학교 아이들과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긴급 식량을 2번이나 지원(총 600인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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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가 나도 아이들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이때 아루감베이 학교에 학생 수가 크게 늘어나며 새 교실을 지었다.

이 시기 5평 남짓한 공간에서 40명 아이들이 공부하던 코인트리 아루감베이 아카데미(사설학교)는 바로 옆 공터에 좀 더 큰 교실을 지었고, 구멍 난 양철지붕 때문에 비만 오면 공책이 젖던 코인트리 우라니 아카데미는 지붕을 교체했다. 인근 4~5곳 마을에 사는 청각언어장애 아이들은 코인트리 특수(장애)아동 아카데미에 꾸준히 통학할 수 있도록 자전거를 선물 받았다. 국가부도 사태로 긴급 식량을 나눠주면서 장애아동과 가족들의 영양 상태가 호전되고 출석률이 높아진다는 점을 확인하고, 특수(장애)아동 아카데미 아이들에게는 고정적으로 간식과 급식을 지원하게 되었다.

15.png 가족과 함께 먹을 식량을 지원받는 코인트리 특수(장애)아동 학교의 아이들

내가 지원하고 애정을 쏟는 아이들이 국가부도 상황에서도 끼니를 챙겨 먹고 학업을 이어가길 바라는 코인트리 꽃주주(후원자)님의 참여와 행동으로 가능했던 일이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국가부도 탓에 현지 화폐(스리랑카루피) 가치가 반토막 나면서 코인트리는 이 모든 일을 원래 필요했던 예산의 50% 수준의 예산으로 이뤄냈다.


스리랑카 국가부도 한 달 전,
그곳에 우리가 있었다.

최악의 경제 위기에도
코인트리 꽃주주(후원자)님 덕분에
우리는 아이들 곁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었다.

희망에 집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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