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Ep.07 | 아루감베이 피넛 보이 (1)

12살 피넛 보이의 정체

by 꽃보라 꽃목수

점심을 먹으러 한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 주인이 우리에게 ‘마을 아이들을 위해 학교 운영하는 코인트리 직원들이죠?’라고 물었다. 맞다고 했더니 그는 ‘아루감베이 피넛 보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스리랑카 동쪽 끝, 바닷가에 위치한 아루감베이 마을 해변가를 돌아다니며 땅콩을 파는 소년이 있다고 했다. 10살 남짓 돼 보이는데, 파도가 좋아 세계 3대 서핑 포인트로 통하는 아루감베이에 온 외국인 관광객에게 다가가 땅콩을 판다고 했다. 식당 주인은 우리에게 ‘코인트리 학교는 누구나 갈 수 있죠? 그 피넛 보이도 학교에 다녔으면 좋겠어요.’라고 했다. 이후 해변가를 지날 때마다 피넛 보이를 찾아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몇 달 후 다시 간 스리랑카 현장에서 저녁을 먹으러 간 날이었다. 아루감베이 식당 대부분은 해변가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우리도 바다가 보이는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빼빼 마른 소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저 돈 좀 주세요. 원래 땅콩을 파는데 오늘은 땅콩을 못 가져왔어요. 다음에 만나면 드릴 테니 20달러만 주실 수 있나요? 제가 돈을 가져가야 오늘 우리 가족이 밥을 먹을 수 있어요.”


아, 꼭 만나고 싶었던 피넛 보이구나! 또래 아이들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유창한 영어 실력이었다. 자신은 12살이고 동생은 세 명이며 엄마아빠 대신 자기가 돈을 번다고 했다. 학교는 안 다닌 지 오래됐다고 했다. 앙상한 팔을 휘저으며 아이는 과장된 손짓과 슬픈 눈빛으로 연신 돈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심지어 나에게 몇 시냐고 계속 물으며 해 지기 전까지 돈을 받아야 가족들이 먹을 것을 사서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재촉했다. 20달러 기부하는 셈 치고 아이를 얼른 집에 돌려보내는 게 옳을까? 아니면 우리가 밥 먹으러 식당에 왔다는 걸 아이가 본 상황에서 돈이 없다며 안 주는 게 옳을까? 20분 정도 피넛 보이와 얘기한 후 꽃목수님과 나는 깊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현금 대신 필요한 것을 사 주기로.

피넛보이가 자신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하는 중

꽃목수님과 나는 신중하게 판단해야 했다. 아루감베이와 포투빌에는 무작정 다가와 돈을 달라고 하는 아이들, 주민들이 있다. 우리는 코인트리 스리랑카 지부 예산(후원금)은 물론 사비로도 절대 돈을 건네지 않는다. 이유는 첫째, 현금을 주면 아이들, 주민들이 그 돈으로 필요한 것을 사지 않고 어디에 쓸지 모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술 먹고 가정 폭력을 일삼는 부모와 함께 사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지는 관심 없다. 오로지 아이들이 거리에 나가 돈을 받아오기만을 기다린다. 어른보다 아이가 돈을 달라고 할 때 외국인이나 현지인이나 지갑을 선뜻 열기 때문에 아이들을 거리로 내보낸다. 아이들은 하루 종일 구걸해 온 돈을 고스란히 부모에게 준다. 맞는 것이 무서워서, 부모에게 동전 한 닢까지 탈탈 털어 준다. 그 돈은 부모의 술값으로 쓰인다. 술을 먹으면 또 아이들을 때린다. 정작 아이들의 삶을 바꾸는 데 우리가 선의로 준 돈이 전혀 도움 되지 않는 거다. 그래서 스리랑카 외에도 볼리비아, 멕시코 지부의 코인트리 전 직원, 선생님은 가정 방문을 다니며 아이들과 가족에게 필요한 것을 직접 파악하고, 상담하고, 가정마다 문제가 없는지 확인해서 ‘물품’으로 전달한다.

가정 방문을 다니며 필요한 물품을 직접 전달하는 코인트리 꽃부자 한영준 대표님. (사진은 코인트리 멕시코 현장)

둘째, 돈을 주면 마을 사람들에게 소문이 퍼져 우리 직원들, 선생님들이 곤란해질 우려가 있다. 누구네는 돈을 받았다는데 우리도 형편이 어려우니 돈을 달라, 우리는 왜 지원하지 않냐, 차별하는 거냐 등의 비난을 받을 수 있다. 우리 현장을 주도적으로 운영하고 책임지는 현지 직원, 선생님들이 선한 일, 필요한 일을 하고도 마을 사람들에게 볼멘소리를 듣게 해선 안 된다.


깊은 고민 없는 현금 지원은 현장 사업 운영을 어렵게 만들고 그 효과마저 떨어뜨린다. 아이들을 잘 먹이거나 학교에 보내지 않아도, 아픈 아이를 진료소에 보내지 않아도 비영리기관이 우리 마을에서 활동한다는 이유로 현금을 지원받는다면? 누군가가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며 후원금을 보낸 후원자분들의 마음이 잘 전달된다고 할 수 있을까? 현장으로 간 후원금이 정말 아이들, 주민들에게 더 나은 삶을 선물한다고 할 수 있을까?


코인트리 전 직원은 가정 방문을 다니며 필요한 지원은 ‘물품’으로 하는데, 아이들과 같이 사는 보호자의 의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방임하거나 아픈 아이들을 진료소에 데려오지 않으면 지원을 중단한다. 물론 그전에 10번 넘게 부모를 찾아가 설득하고 상담하고 교육시켜 의지를 심어주며 아이들을 직접 지원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끝까지 찾아낸다.

코인트리 볼리비아 직원, 선생님들은 매년 3회 학교 인근 오지 마을 20곳을 다니며 학용품, 생필품, 식량을 전한다.

셋째, 돈을 주면 아이들과 주민들을 후원금에만 의존하는 존재로 만든다. 자립하고자 하는 의지, 스스로 더 나은 삶을 만들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지 않게 하는 거다. 코인트리가 현장에서 가장 경계하는 일이자, 우리가 학교와 진료소를 짓고 운영하는 이유다. 코인트리는 교육과 의료 지원으로 'HELP PEOPLE HELP THEMSELVES', 즉 스스로 돕고자 하는 사람들을 돕는다.


처음 스리랑카 현장에 갔을 때 겪은 일이다. 마을에서 가장 큰 슈퍼 앞에 앉아 아이와 함께 구걸하는 엄마를 만났다. 하루는 아이 엄마가 세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과 바닥에 앉아 슈퍼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이는 40도 정도 되는 무더위에 갈증이 났는지 건물 외벽에 끊어진 파이프로 다가가 졸졸 떨어지는 물을 폐플라스틱 통에 담았다. 그 모습을 보고 꽃목수님과 나는 슈퍼로 들어가서 깨끗한 물과 아이가 먹을 우유, 간식, 약간의 식량을 사 와 아이 엄마에게 건넸다. 일시적인 도움이지만, 아이에게 당장 깨끗한 물을 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스리랑카 현장 직원들에게 통역을 부탁해 엄마에게 얘기했다.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세요, 아이들을 깨끗한 물로 씻기세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세요, 코인트리 학교는 누구나 올 수 있어요.”

“아이들에게 깨끗한 물을 먹이세요, 아이들을 깨끗한 물로 씻기세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세요, 코인트리 학교는 누구나 올 수 있어요.”

다음 날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나눠 줄 간식을 사러 다시 그 슈퍼에 갔다. 똑같은 자리에, 엄마는 어제 온 아이보다 더 어린 갓난아이를 안고 슈퍼 앞에 앉아 구걸하고 있었다. 다른 날은 10살쯤 되는 여자 아이와 함께 앉아 있었다. 항상 같은 표정으로 우리와 눈을 마주치며 손을 내밀었다. 나중에 직원들에게 들은 얘기인데, 직원들도 볼 때마다 종종 사비로 소액의 현금을 건넸다고 한다. 그런데 엄마는 매번 아이들을 번갈아 데려오며 같은 장소에서 구걸을 한다고 했다. 왜 하필 마을에서 가장 큰 슈퍼 앞인지 이유도 있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이 부르는 말로 ‘화이트 피플’, 즉 아루감베이와 인근 지역에 오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드나드는 슈퍼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매번 슈퍼 앞에 앉아 있는 엄마와 아이들을 본다. 마음을 다잡아도 지나치진 못하고 새로운 아이와 엄마를 발견하면 깨끗한 물, 우유, 간식 정도만 사비로 사서 건넨다.



피넛 보이를 데리고 슈퍼 가는 길

우리는 피넛 보이를 데리고 가까운 슈퍼에 갔다.


"지금 너에게 50달러가 있다고 생각하고 필요한 것을 고르렴. 대신 가족들에게 필요한 것 외에 네게 필요한 것, 네가 먹고 싶은 것을 반드시 하나 포함해야 해."


피넛 보이는 신이 나서 쌀 5kg 한 포대, 각종 통조림과 말린 국수, 간식, 비누와 샴푸와 같은 생필품을 바구니에 담았다. 바구니를 든 우리의 눈치를 살피며 아이는 ‘이건 동생이 좋아하는 간식이에요’, ‘이건 엄마 줄 샴푸예요.’, ‘이 쌀 한 포대면 저희 가족들이 당분간 밥을 먹을 수 있어요.’라며 설명을 덧붙였다. 우리가 ‘너에게 필요한 건? 네가 먹고 싶은 건 샀니?'라고 물어보자 그제야 피넛 보이는 쭈뼛거리며 초콜릿 과자 하나를 바구니에 넣었다.

신나게 음식과 생필품을 고르는 피넛 보이.

꽃목수님과 내 사비를 털어 50달러치 음식과 생필품을 샀다. 우린 슈퍼 주인에게 ‘이만큼 많이 샀으니 할인을 해달라고 하고 싶어요. 하지만 할인 대신 식료품을 몇 개 더 넣어주세요’라고 부탁했다. 다 사고 보니 아이 혼자 들 수 없는 많은 양이었다. 쌀포대 등은 잠시 슈퍼에 맡겨 두고, 피넛 보이는 식료품이 든 봉지 몇 개만 챙겨 먼저 집에 다녀오겠다고 했다.


하루종일 굶어 힘이 없다고 했는데, 그 무거운 봉지는 앙상한 팔로 어찌나 힘껏 드는지. 눈물이 그렁그렁한 큰 눈으로 우리에게 ‘두 분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인사하며 그는 양손 가득 봉지를 들고 저 멀리 걸어갔다.

양손 가득 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피넛 보이. 우리는 아이가 걸어가는 모습을 한참 바라봤다.



그날 저녁, 코인트리 스리랑카의 올리스 지부장, 마파스 사무국장과 회의가 있어 만났다. 우리를 보자마자 올리스가 물었다.


"마을에 소문이 났어. 피넛 보이에게 식량이랑 생필품을 엄청 많이 사줬다고. 사실이야?"


맞다고 했더니 올리스가 탄식했다.


아…
피넛 보이는
쬐끄만 사기꾼 녀석인데!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우리에게 얘기했다. "두 분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정말 감사해요."라고...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