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루감베이의 아이들을 만나러 가기 위한 콜롬보에서의 최종 임무: 야간버스
스리랑카의 수도이자 공항이 있는 콜롬보에서 우리 학교가 있는 아루감베이로 가는 방법에는 야간버스도 있다. 이름 그대로 밤에 자면서 가는 버스다. 시간은 '빠르면' 8시간 걸린다. 스리랑카 국가 부도사태 당시에는 나라에 기름이 없어서 고속도로를 타지 못 하는 일도 있었는데, 꼬불꼬불 국도를 타고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참고로 콜롬보에서 아루감베이까지는 직선거리가 200km를 조금 넘는다. 서울-부산의 2/3 수준이다.
야간버스를 타고 가는 여정은 시작부터가 도전이었다. 야간에 타러 가야 하기 때문에 밤에 길을 찾아야 했다. 어두운 골목을 몇 번 헤맸더니 길 잃은 자의 냄새를 맡은 개들이 따라붙었다. 더운 나라라 그런지 녀석들의 고간이 축 늘어져 있었다. 그걸 묵직하게 흔들며 걸어오는 모습이 왠지 모를 긴장감을 더했다.
콜롬보의 도로를 건너는 것은 그다음 난관이었다. 꽤 큰 도로에도 신호등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밤이라서 차가 많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속도가 빨랐다. 건널만하면 쌩하고 달려오는 차들 때문에 한동안 넋을 잃은 채 서있었다. 특히 덤프트럭류는 영원히 달릴 것처럼 돌진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는 아루감베이로 가기 위해서 우리는 그 길을 건너야 했다. 운전자와 눈치게임을 하며 한발 한발 건너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웬만한 차는 멈춰주었지만 건너편 인도에 닿을 때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에 신중을 기한 선택이었다.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이라 했던가. 야간버스를 타러 가는 길이 삶의 축소판처럼 보이기도 했다.
어두운 골목과 신호등 없는 도로 너머에도 난관은 또 있었다. 버스 승강장 표시가 없어서 정확히 어디서 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버스 출발 시간은 다가오고 온몸에 땀은 줄줄 흘러내렸다. 그 와중에도 개들이 털레털레 따라붙었다. 아까 그 녀석들은 아닌 것 같았다. 개들마다 담당구역이 다를 터. 새로운 무리가 정찰을 나온 것인가란 쓸데없는 생각이나 들었다.
또 한 번 넋 나간 얼굴로 개들을 바라보며 서있는데, 한쪽에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곧이어 누가 봐도 장거리를 갈 것 같은 우람한 버스 한 대가 나타났다. 나는 말벌아저씨처럼 그쪽으로 후다닥 가서 여기가 맞냐고 물었다. 이방인의 조급한 질문에 사람들은 익숙하다는 듯 여유롭게 맞다고 대답해 주었다.
야간버스가 출발하는 시간은 밤 7시. 우리는 6시 반이 되어서야 버스를 찾았다. 기쁜 마음에 바로 버스에 올라탔다. 내일 새벽에 아루감베이에 내려서 일정을 이어가려면 잠을 충분히 자야 했다. 7kg짜리 배낭 두 개를 좌석 아래에 꾸겨 넣고, 취침용 음악을 들으려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버스 엔진의 덜덜거리는 진동이 왠지 모르게 마음을 편하게 해 주었다.
긴장이 풀렸는지 살짝 잠에 들었다 깼다. 깨자마자 시계를 봤는데 9시였다. 창 밖을 보니 여전히 승강장이었다. '7시에 출발한다며?'. 무슨 문제가 있는지 버스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No problem"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아무 문제없다니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잠이 다 달아났다. 간간이 귓가를 맴도는 모기 한 마리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듯 방정을 떨었다.
버스 안이 너무 더웠는데 출발하기 전까지는 에어컨을 틀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이놈의 땀은 멈출 생각을 않는다. 바깥바람을 쐬러 버스에서 나왔다. 그런데 나오자마자 기사님이 버스 안에서 손짓했다. 이제 출발하니까 타라는 뜻이었다. 버스에 들어가 좌석에 다시 몸을 비집어 넣었다. 얼마 뒤 버스가 드디어 움직였다. 시계는 9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스리랑카 곳곳의 야경을 구경하는 것은 야간버스 여정에서 가장 안락한 즐거움이었다. 어두운 조명을 켜고 아직 영업 중인 가게, 그 안에 간간이 보이는 사람, 초를 켜 놓은 불당, 길가 모퉁이에 누운 노숙자, 밤잠 없이 돌아다니는 개, 하늘에 은은히 빛나는 은하수... 밤이 되어야 비로소 보이는 풍경은 스리랑카의 낮과는 다른 면모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버스 창밖을 내다보았다. 이 시간만큼은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야간버스는 중간에 딱 한 번, 밤 12시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승객을 내려주었다. 주변에 깜깜한 풀밭 말고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휴게소의 전등이 유난히 밝게 빛났다. 휴게소 안의 식당에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한창 식사를 하고 있었다. 대부분 스리랑카 사람들이었는데,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삼삼오오 모여 밤늦은 식사로 허기를 달래는 것이 한국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30분 정도 지났을까. 버스가 경적을 울리며 출발을 알렸다. 낮보다 선선해진 공기를 한 움큼 들이마시며 버스에 다시 올랐다. 우리는 아이들을 만나러 가는 길의 반 정도 와있었다. 이제부터 콜롬보보다 아루감베이에 더 가깝게 있다는 사실에 새삼 설레기 시작했다. 버스가 도로에 다시 오르고 나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하늘 더 가까이 은하수가 반짝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