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이너에서 비즈니스 파트너로 포지셔닝 하기
시리즈 : 디자인만 하지 않는 디자이너 ③ - 커뮤니케이션 공부하는 디자이너
물론 나는 인성에 문제 없는, 정상적이고 친절한 인간이기에 다정함에도 꽤 자신 있었다. 그래서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착하게 말하기'가 아니다. 협업과 설득을 위한 커뮤니케이션을 말한다.
물어보는거에 답변을 하거나, 무언가를 부탁하거나, 일상 대화를 나눌 때는 괜찮았다. 문제는 의견을 내거나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나 상황을 정리해야 할 때였다. 그럴 때마다 말이 꼬였다. 내 기획안을 설명할때나 디자인 리뷰를 할 때면 구구절절해지고, 핵심은 사라지고, 결국 나도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면접을 봐도 마찬가지였다. 핵심을 말하지 못해 맥락이 흐트러졌다. 상대방에 내 이야기를 듣다가 다시 앞쪽으로 돌아가 무언가를 물어보게 만들었다. 그것도 계속. 이러니 상대방을 설득하기는 커녕 나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정리되지 않은 생각과 인사이트 뭉치가 서로 섞여 실체도, 경계도, 크기도 알 수 없어 머릿속이 복잡했다.
'아는데 모르는 상태' 그게 내 상태였다. 나도 내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몰랐다.
그러니 말도 장황해지고, 글도 장황해지며 다 핵심인 것처럼 보이는 말을 늘어놓았다. 디자인 실력과 상관없이 일이 꼬였고, 오해가 쌓였고, 능력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데이터도 볼 줄 알고, 사용자 경험 설계의 근거도 탄탄히 만들줄 알게 되었는데도 자꾸 위축됐다. 점점 자신감이 사라졌다.
안 되겠다 싶어 또 공부했다. 어릴 때 이렇게 공부했다면 서울대를 갔었지 싶다.
커뮤니케이션 책을 보고, 강의를 듣고 찾아봤다.
'결론부터 말하기', '핵심 키워드 세 개로 요약하기', '내가 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상대가 알아야 할 걸 말하기' 등등... 다들 주로 이런걸 말하는데 문제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의 결론이 뭔지도 모르겠고, 핵심 키워드도 세 가지도 모르겠고, 가장 중요한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도 모르겠다는 점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이건 말하기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 정리의 문제구나.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으니 입에서도 정리가 안 되는 거구나.
그래서 생각을 구조화하는 법을 파기 시작했다. 일기도 써보고, 회고도 써보고, 기록 책, 생각 정리 책도 보며 머릿속을 정리정돈 하려 노력했다. 처음엔 전혀 늘지 않았다. 나는 오늘 당장 회사에서 대표님을 설득해야 하는데, 팀원에게 기획안 리뷰를 해야 하는데, PO에게 기능을 제안해야 하는데 변화는 느리기만 했다.
답답했다. 그래도 계속했다. 포기한다고 내 문제를 누가 대신 해결해주는게 아니니 별 수 없이 어쩔 수 없이 계속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내 성장이 확 체감되었다. 마치 땅 속 깊은데서부터 올라오느라 계속 어두웠던 시야가 땅을 뚫고 올라와서 확 밝아진 느낌이었다.
아, 나 보이지 않게 계속 성장하고 있었구나…
신기했다.
하지만 이건 느려도 너무 느렸다. 특히 혼자 고군분투하는 디자이너라면, 커리어 점프를 하든 이직을 하든 하여튼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 혼자 계속 노력하는 디자이너라면 이 속도로는 지쳐서 모든걸 포기해버리기 딱 좋았다.
그래서 그 경험을 토대로 지금 나는 란란클래스 고객님들에게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게 돕는 프레임워크’를 만들어 알려주고 있다.
그때의 나처럼 머릿속이 복잡한 디자이너들이 여전히 많다. 너무 많은 정보가 갑자기 들어오는데 그 정보를 하나로 꿰어줄 실과 바늘이 없어서 그렇다. 회사에는 그런걸 알려줄 사수도 없고 그런걸 배운다고 지체할 시간도 없다. 그래서인지 수업을 듣고 나면 많은 분들이 이렇게 말한다.
"머리가 환해지는 느낌이에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아요." "이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명확히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마 나의 괴로움이 컸던 만큼 그 프레임워크도 진심이 많이 담겨서일 것이다.
나는 상담할 때 고객님들에게 자신의 고민을 두서없이 쏟아내시라고 말한다. 그걸 내가 잘 주워 담아 핵심을 정리하여 해당 고민에 대한 답과 내 의견을 드리면 고객님들은 종종 놀란다. 자기도 몰랐던 고민의 실체를 명확한 언어로 마주한 순간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생긴다. 변화는 그때부터 일어난다. 그게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이었다.
디자인은 컴퓨터 안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다. 누군가와 협업하고, 세상과 연결되어야 하는 일이다.
그럴려면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한다.
이제 나는 디자인만 하지 않는다.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공부하고 있다.
나를 위해서. 그리고 내 고객님들을 위해서.
'란란클래스'에서 고민을 털어놔보세요. 때로는 나의 고민을, 자신과 같은 고민을 한 번 푼 사람에게 말하기만 해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기도 하니까요.
이 글은 '디디디님이 운영하는 My Threads Insight - 월간 스레드 3호'에 올라간 글입니다.
https://mythreadsinsight.com/monthly-threads/202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