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쉬운 일도 또 어려운 일도 아닌 작은 일에 대한 지극한 성취감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고자 글을 쓰고 신청을 넣었을 때 나는 아주 보기 좋게 탈락을 했었다. 글이 짧은 편도 아니었건만 내가 생각해도 너무나 마음대로 적어내려간 일기같은 글이었던 것 같다. 소재 또한 다른 사람이 쉽게 관심을 가지기 어려울 법한 나만의 취향을 반영한 것이었고, 글의 내용 또한 지극히 개인적인 사견으로 점철되어 누구에게라도 공감을 주기 어려운 글이었다. 어쨌거나 적잖이 시간을 들여서 작성한 글이기에 '다음 기회에 모시겠습니다'라는 답변을 받았을 때에는 상당히 허탈했었다.
그 뒤로 브런치 작가 신청은 마음 한켠으로 접어두고 글을 읽기만 했다. 서운해서 그런 것도 뒤끝이 남아 그런 것도 아닌, 단지 귀찮아서였다. 다시 그 만큼의 노력 투자와 며칠간의 기다림, 마음쓰임, 이런 것들을 감당할 여유가 당시에 없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몇 년이 훌쩍 지나갔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깨달은 것은 나처럼 인스타그램 글쓰듯이 아무렇게나 막쓰는 작가는 브런치에 없다는 것이었다. 모두 자신의 전문분야 또는 자신이 처한 특수한 환경에 관한 나름의 성찰을 적어놓는 것이었고, 다른 사람의 공감을 얻고자하는 목적성이 분명했다. 한마디로 아무렇게나 '싸지른다'고 해서 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후 우연한 계기에 영문학을 늦깍이로 공부하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영시를 읽고 느끼는 바가 조금 있었다. 더불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점점 커져가는 때여서 먹어가는 나이와 함께 그런 것들에 대한 감상이 극에 달하는 무렵, 브런치 작가에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용기가 생겼다. 쌓여가는 감성들과 낙엽처럼 바스래지는 기억을 어딘가에라도 저장하고 싶은 간절함이 글에 대한 열망을 다시 불러일으켰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타올라서 한줌 재가 된다 한들, 의미도 흔적도 없이 그냥 스러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거라는 생각이 한 해 한 해 지나갈 수록 더욱 절실해졌으니까.
감사하게도, 브런치 팀은 나의 손을 들어주어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정식 작가로 문단에 등단한 것 만큼이나 기쁘기도 했고, 처음 등록한 날은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로도 힘이 되었다.(한동안 글을 쓰지 않는 지금은 거의 없지만) 그렇게 계속 보이지 않는 작가로라도 살아가고 싶다는 소망도 잠시, 일상에 치이다보니 글은 매번 뒷전이고, 새로이 등장하는 소셜미디어에 밀려 브런치 접속 횟수도 일주일에 한 두번이 고작일 만큼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최근 사용하게 된 쓰레드에는 글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이 어찌나 넘실대던지 그 물결이 다시 나를 브런치로 물밀듯 밀어넣은 것 같다. 소소하게 올라오는 쓰레드 글 중에는 '브런치 작가되는 법'이란 내용도 왕왕 눈에 띄었는데, 나보다 더 여러차례 고배를 마신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브런치 작가라는 것, 자부심을 가져도 될 만한 일이구나 라는 것을 새삼 느끼고 그동안 소홀하게 대했던 나의 계정에 새삼 미안한 감정이 들었다.
올 한해 유난히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다. 가을로 가을로 단풍이 산을 덮고 은행잎이 우수수 떨어지던 곳으로 나도 한 장 나뭇잎이 되어 바람 부는대로 흩날리며 다녔다. 특히나 이번 가을엔 전국의 유명한 사찰들의 운치를 많이 경험하였던 시간이었다. 그 좋은 추억들을 더 글로 남겨두었으면 좋았을 것을, 게으른 손가락이 나를 겨우 몇 장의 사진과 한 두마디 짧은 문장으로만 그 시간을 갈무리하게 한다. 브런치로 다시 돌아와서, 내가 하고싶은, 그리고 내가 얘기해도 되는 나만의 이 공간에서 다시 그 사진과 추억들을 꺼내어보고 싶다. 아주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