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벨이 울린다. 다소 조용한 시내의 한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식탁위에 무심코 놓여있던 진동벨이 그와 나의 어색한 분위기를 눈치채고 용솟음치며 난리를 부려 무거운 침묵을 잠시나마 깰 수 있었다. 흰색 줄남방을 입은 키가 큰 그 남자는, 허겁지겁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를 가지러 갔다. 그의 단정한 앞머리와 안경 그리고 무광의 검은 구두는 평소 그녀가 좋아했던 ‘금융권에 다니는 안정적인 남자’의 이미지를 모두 갖춘 완벽에 가까운 이상형이었다. 그는 자신을 모 금고에 다니는 몇 년차의 무슨 직급이라 소개했으며, 나는 그가 건네는 명함을 받아들고 직급이 박힌 명함의 이름을 곱씹었다. 자신을 소개하는 그 앞에서 나는 대체 왜 그가 나를 찾아왔는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으며, 그와 나의 연결고리인 그녀에 대한 어떠한 이야기가 나올 것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추측했다. 커피를 들고 자리에 돌아온 그는 드시죠 라는 외마디 말과 함께 이후 한참동안 운을 떼지 않았다. 그러한 일련의 행동에서,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되지 않아 나를 찾은 그의 의도가 그리 긍정적인 일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닐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재촉하듯 커피를 연속해서 마시며 조금 텀을 둔 후 마침내 결단을 하듯 그래서 라고 물었다. 무슨일 때문에 저를 찾아오신거죠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1학년 OT 때였다. 대학 신입생의 파릇함과 풋풋함이 무릇 그렇듯, 대부분의 20살 혹은 1학년은 들떠있었고. 심히, 들떠있었다. 나 또한 신입생이었고 20살 이었지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할 즈음 집은 가세가 기울대로 기울어 상당히 힘들었으며, 등록금조차 마련하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다. 그래도 엄마는 요즘 대학에 못 가는 사람이 어딨냐며 부득불 우겨 입학하게 되었는데, 남들은 너무도 쉽게 가는 대학이 나에게는 등록금이라는 세글자의 마련을 위한 길이 너무 험난해 중간중간 다 때려치울까 라고 읊조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엄마와 함께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으려 했지만 그마저 쉽지 않았고, 은행 직원의 죄송합니다 고객님 이라는 말은 이후 내내 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죄송할일이면 하지 말았어야지. 세상 왜 죄송한 일은 만들어서 죄송하다고 하는 걸까. 은행을 나오면서 국밥이나 먹고 가자던 엄마를 따라 꾸역꾸역 국밥을 먹으며 우리 모녀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밥 숟가락을 뜬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삼촌에게서 전화를 받은 엄마의 네 지금 갈께요 대답에, 무언가 희망적인 내용이 오갔다는 신호를 알아채고는 그때부터 단무지고 깍두기고 다 버리고 밥만 입속으로 퍼부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큰 학교로의 진학을 위한 구차한 손벌림을 이곳저곳 떠돌아 겨우 입학을 한 내게 신입생 OT는 그저 한심하고 시시해 보였다. 없는 돈에 가진 재능을 살려 음대에 입학한 나는 어렸을 때 누구나 거쳐간다는 관문인 피아노를 배웠으며, 조금 가진 재능에 하고자 하는 열정만 가득하여 돈이 없는 가난한 부모에게 곤란함만 배가 시켰다. 아마 이러한 발단은 9살 때 피아노 학원에서 나갔던 콩쿠르에서 상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는데, 그때 피아노 학원 원장은 사탕 발림말로 대회를 나가게 시켰으며 초등부 중 어쩌다 대상을 받게 된 나는 그날 이후로 집안에서 일종의 유망주로 인식되며 너의 진로는 피아노구나가 되어버린 셈이다. 딱히 잘하거나 특출남이 없었던 나로썬, 그저 그때부터 그래 나는 피아노를 치는 피아니스트가 되어야 겠다 라고 굳게 다짐했고 지리멸렬한 숱한 세월을 지나 드디어 마지막 관문인 대학에까지 오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들떠 있는 한심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에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꼈다. 명품가방에 반짝이는 구두, 신입생인데도 30% 이상은 차를 가지고 다니는 부자집단의 음대 아이들. 그래서 그들 사이에서 기시감을 느끼는 내가 참을 수 없었다. OT라니 적당히 하고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한 찰나, 그녀가 서 있었다. 화이트 보드 가득 음계가 그려진 강의실 저 뒤편 구석에서 어색한 듯 주위를 둘러보는 그녀가. 눈이 마주치자 그녀의 동공이 아 너도 라고 말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 유치한 아이들 속 평정심을 찾으며 애써 거지같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한 사람을. 그리고 그녀가 유일한 친구가 될 것이란걸 어렴풋이 눈치챘다.
은주는 옷차림이 수수했다. 다른 아이들은 화려한 블라우스에 높은 킬힐을 신고 음대 언덕을 잘도 깡총거리고 올랐다. 그 언덕은 꽤나 경사가 심해 그냥 올라가기에도 버거웠지만, 패션을 포기할 수 없었던 대학생은 그곳을 킬힐과 조그마한 백과 오른손에 바하 혹은 베토벤과 같은 작곡가들의 악보를 끼고 오르는 것이 그들만이 지닌 음대생의 표준인 듯 했다. 은주는 킬힐대신 하얀 운동화를 신고, 단정하지만 조금은 낡고 오래된 것 같은 남방에 청바지를 입었다. 이따금씩 뒤에서 은주가 언덕을 오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묵묵히 자신의 일만 하는 느릿느릿 거북이 같기도 했는데, 나는 그녀의 어떠한 사정도 잘 몰랐지만 그녀의 걸음걸이에서 삶의 고단함 같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문득, 나 또한 나의 가난을 숨기기 위해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 산 짝퉁 명품옷과 가방, 조금은 어색한 구두가 타인에게 어떠한 비루함으로 비춰질지 혹은 분출할 대상없는 오기같은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가슴이 쎄하기도 했다. 유치하다고 뭉퉁그려 칭했던 그들과 처지가 다른 나는, 나와 같은 걱정을 가진, 그래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은주를 친구라고 포장하며 안도감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은주를 좋아했음이 틀림없다. 은주와 나는 좋아하는 음식도, 연예인도, 커피를 고르는 취향도 모두 같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갓 대학에 입학한 새내기에게 입맛에 맞는 음식과 연예인의 취향이 같은 것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들며, 그럴 수밖에 라는 명분을 공고히 만든다. 우리는 없는 돈을 쪼개어 학교앞 분식점과 커피숍을 돌며 비록 고급 스테이크와 비싼 홍차가게를 가지는 못했지만 그러한 우리가 둘이었기에 함께였기에, 그러한 시간을 세월로 함께 만들어 나갔다. 키도 비슷하고 체형도 비슷했던 우리둘에게 학내 동기들은 쟤네 쌍둥이냐며라고 이죽거리기도 했지만, 그럴때마다 우리는 그저 웃으며 깔깔거릴 뿐이었다.